요청하신 분이 있어서 한 편만 더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참혹한 할베 포위망 탈출 6부
적군의 반격 징후는 없었고 왼쪽 방향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적군이 일부러 서쪽을 열어주고 우리가 몰려 나오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함정이라고 해도 갈 수 밖에 없다. 아직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포위망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폭발과 화염이 전부인 어둠 속에서 차량 사고가 나면 파손된 차의 기름을 챙기려 모두 달려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 훨씬 가치가 있었다. 몇 명의 국방군이 피난민 마차를 습격해서 말을 몰고 달아나는 일도 있었고 차가 망가진 공군고급장교가 야전부엌field kitchen을 권총으로 위협하며 말을 끌고 가려다가 지나가던 병사들에게 제압되어 피난민 사이로 도망치는 광경도 목격했다.
부근의 집은 대부분 비어 있었지만 일부는 문밖으로 나와 우리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부근에는 새로 만든 무덤이 있었는데 러시아군이 전날 지나면서 죽인 사람들의 무덤이라고 들었다.
멀리 전방에서는 섬광과 발광탄이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SS 킹 타이거가 서쪽 통로를 뚫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장에 가까워질수록 피난민 대열의 속도가 떨어졌다. 많은 보병이 피난민 사이에 숨어 전투에 끼려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가만히 엎드려 있거나 다른 병사가 돌파구를 뚫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심지어 팔짱을 끼고 그대로 상황은 관망하는 장교도 많이 보였다. 한 여성은 그런 장교를 비난했는데 실제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헬맷을 쓰고 소총이나 기관단총을 무장한 여성이 많았다.
내 판터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과 상관없이 대열의 앞으로 나아갔다. 카포의 판터가 내 앞에 있었고 우리는 도랑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야크트티게르Jagdtiger(난감하군요. 독영혼용이라 다른 전차는 킹 타이거라고 부르고) 한 대가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멈춰 있었고 승무원은 남은 연료를 빼내고 있었다. 우리를 본 승무원은 경례를 하지 않았다. 이미 계급따위는 무너진 지가 오래되었다. 그리고 본대와 파견대의 차이도 사라졌다.
지금은 가리지 말고 하나라도 더 합쳐서 돌파를 해야 할 때였다.
지상의 순양함이라고 부르는 야크트티게르입니다. 전면장갑 150mm와 128mm 주포를 무장한 지상의 최강전차로 셔먼은 약 3km 밖에서도 격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71톤의 무게와 야지에서의 운행거리 80km의 한계때문에 방어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이미 제공권을 빼앗긴 1944년 7월부터 겨우 88대 정도만 생산되어 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물었다. “전차 두 대인가요? 꽤 도움이 되겠군요. 철로가 앞에 있지만 봉쇄되어 있습니다. 철로만 넘으면 서쪽으로 직진할 수 있습니다. 20군이 분명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전령이 오갔으니까요. 여기에 그대로 있다 가는 날이 밝으면 모두 죽을 겁니다.”
카포가 “왜 우회하지 않고 봉쇄를 돌파하지?”라고 물었다.
“남북 방향 모두 대전차 참호와 운하가 있습니다. 아군이 러시아군을 막으려고 파놓았는데 이제는 그놈들이 이용하고 있죠. 여기 저기에 적군 전차가 숨어 있습니다. 헤매면 우회로를 발견하겠지만 몇 시간 더 있어야 할 텐데 그 때면 해가 떠올랐을 겁니다. 날이 밝으면 적군 전폭기가 우리를 박살내겠죠. 봉쇄막은 소련군이 지난 며칠 동안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날림일 겁니다. 지금 돌파해야 합니다.”
야크트타이거는 폭약으로 터트렸고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갔다. 판터 2대를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강철괴물이 도로 옆에서 무기력하게 불타고 있었다.
철로돌파는 판터 2대, 킹 타이거 1대, 돌격포와 20mm 대공전차가 맡았다. 비르벨빈트Wirbelwind 는 4호전차 차체에 20mm 4문을 올린 것으로 대공뿐만 아니라 지상목표물을 상대로도 무척 강력한 무기였다.
비르벨빈트는 믿음직스러웠지만 주변의 보병은 그렇지 않았다.
비르벨빈트의 4연장 20mm는 분당 최대 1,800발, 실제 800발을 발사할 수 있어서 지상목표물에는 무척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전폭기를 상대로는 20mm 위력이 부족해서 37mm 한 문을 장착한 오스트빈트Ostwind를 개발했습니다.
정예 공수부대Fallschirmjager 수십명을 빼고는 대부분이 국민병Volkssturm과 소년병이었다. 판저파우스트와 소총으로 무장했지만 너무 어리거나 늙었고 훈련도 받지 않았다. 무장경찰, 전차를 잃은 전차병, 포병과 대공포병도 다수 섞여 있었다.
정규 국방군도 있었는데 공병장교가 즉결처분을 명령하며 50명 정도를 더 데려왔다. 그 장교 주변에는 헌병Kettenhund, 무장친위대, 공병이 있었다. 무장강도 같은 무리도 러시아군 함정만큼은 빠져 나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18살 정도의 병사를 끌고 와서는 머리에 총을 쏴 처형했다. 그러자 나머지가 마지못해 전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징병에 적합하지 않은 16~60세의 남성을 총동원한 국민돌격병입니다. 패망직전에는 여성까지 무장시키기도 했습니다.
무장은 판저파우스트가 기본이었고 기본 군사훈련도 받지 못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국민돌격병 초기라 그래도 외모가 괜찮은 편입니다.
한 시간 후면 동이 트고 적군 전폭기가 날아들 것이다. 우리 뒤에는 1~2만 명이 탈출구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최소한 25%는 민간인이거나 경상자일 것이다. 날이 밝으면 포위망 안에서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학살이 일어날 것이다.
계획이고 준비고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철로를 방어하는 봉쇄막을 무조건 뚫어야 했기 때문에 킹 타이거, 판터, 돌격포, 보병과 비르벨빈트 순서로 돌격하기로 했다.
불타는 차량덕분에 어렴풋이 보이는 봉쇄막은 흙더미, 통나무와 모래자루를 쌓아 올린 것이었다. 봉쇄막 이후가 가장 위험했다. 그대로 타고 넘어가면 차체 밑이 대전차포에 몇 초 동안은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철로너머의 하늘이 잿빛으로 바뀌었다. 벌써 새벽이 온 것일까? 빛이 점점 밝아지면서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소련군이 대공탐조등을 일제히 켠 것이다.
“세상에. 저 놈들은 아직도 루프트바페를 두려워 하나?” 장전수가 잠망경으로 그 광경을 보고 중얼거렸다. “루프트바페를 언제 봤어? 크리스마스인가? 그 이전인가?” 4호 전차장이 올려다보며 말했다.
적군이 탐조등을 하나씩 차례로 켜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공군이 남아 있을 리가 없는데… 적의 방어진지는 탐조등빛 아래에 철저하게 감춰져 있었다. 500m 정도 다가가서야 그 이유가 저절로 밝혀졌다.
하늘을 환하게 밝히던 탐조등 불빛이 우리 전차를 향해 내려왔다. 웃음이 순식간에 신음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탐조등 불빛 정도가 아니라 훨씬 강했다. 전방에 빛의 벽이 생겼고 거리나 방향은 고사하고 코 앞도 보이지 않았다.
자석 나침반을 보고 방향을 정했는데 다른 차량도 그랬을 것이다. 심장이 멎을 듯한 공포가 배속에서 올라와서 손이 마구 떨렸다. 우리는 마치 서커스 한 가운데에 올라온 동물 꼴이 되었다.
어떤 차량인지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측면을 부딪친 후에 멀어졌다. 그리고는 기관포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비르벨빈트가 전면에 나서 탐조등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대공탐조등을 지상목표물에 사용한 기발한 발상이었습니다. 초대형 탐조등을 사용했던 모양입니다.
독일군도 탐조등을 장갑차와 전차에 장착했습니다만 야간전투를 위한 적외선 탐조등이었습니다.
대혼란이었다. 대전차포탄이 전면장갑을 때려 변속기가 비명을 질렀다. 대전차포를 요격하고 싶어도 빛 때문에 찾아낼 수 없었다.
운전병에게 우측으로 벗어나 비르벨빈트 뒤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포탑에 다시 2발을 맞아 잠망경 유리조각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제는 전방만 보이는 장님이 되었다. 몇 백 미터 떨어진 봉쇄막에서 계속 포탄과 기관총탄이 날아들었다.
비르벨빈트의 4연장 20mm 기관포가 봉쇄막 너머를 때렸고 탐조등 한 개가 환한 마지막을 빛을 낸 후에 침묵을 지켰다.
다른 탐조등은 우리를 훑으며 여전히 괴롭혔다. 봉쇄막에 포격하기 위해 포신을 낮춘 킹 타이거의 포탄에 맞을 뻔 했다. 어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큐폴라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보병과 차량이 적의 방어진지로 달려들다가 쓰러지고 불탔다. 돌격포 2대가 파괴되었고 밖으로 빠져나온 승무원은 빛을 피해 엎드렸다. 그렇지만 봉쇄막 너머의 기관총이 한 명씩 놓치지 않고 죽였다.
비르벨빈트 2대는 탐조등으로 포탄을 연달아 날리자 탐조등의 불빛이 위로 향했다. 그 틈을 노려 보병이 봉쇄막으로 올라갔다.
포수에게 고폭탄으로 봉쇄막의 모래자루와 흙무더기를 파내라고 명령했다. 목재와 흙조각이 하늘로 날아가면서 뒤에 숨어있던 소련군도 함께 날아갔다. 대전차포 한 문이 우리를 노려 내 바로 밑의 전면장갑을 때렸지만 카포의 판터가 앞으로 나가 영거리 사격을 하고 차체로 봉쇄막을 들이받았다.
판터의 궤도가 흙더미를 미친듯이 할퀴며 올라가다가 내가 파 놓은 구덩이에 미끄러졌다. 옆에 있던 킹 타이거가 포신을 낮춰 구멍이 생긴 곳에 다시 포격을 정확하게 한 발씩 쏘았다.
나도 봉쇄막을 들이받으라고 명령했는데 그 순간에 양쪽에서 기관총탄이 날아들었다. 운전병은 능숙하게 회전하며 기관총 진지를 모두 뭉갠 후에 봉쇄막에 올라탔다.
마지막 탐조등이 우리를 향했다. T-34 차체에 올린 탐조등이었는데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큰 반사등이었다. 완전히 불빛을 밝히기 전에 돌격해서 차체를 들이받아 밀어냈다. 차체가 반대편으로 미끄러지면서 서쪽의 소련군을 향해 빛을 쏘았다. 덕분에 우리를 노리던 포탄이 크게 빗나갔다.
탐조등 전차는 불타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렌즈가 폭발하고 완전히 죽었다. 우리는 철로로 내려갔다. 잠망경이 박살났기 때문에 주변에 무엇이 우리를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철로로 내려왔기 때문에 대전차포의 저격에서 벗어났다.
큐폴라로 머리를 내밀자 적군 보병이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멀리 서쪽에는 폭발화염이 새벽빛보다 환하게 터졌다. 12군이 있는 곳이었다. 저 지점까지만 가면 우리는 엘베강에서 미영 연합군에게 항복할 수 있다.
나머지 차량과 보병이 철로로 내려왔다. 돌격포는 한 대도 살아남지 못했고 비르벨빈트는 한 대가 위가 모두 날아갔지만 2대 모두 도착했다. 킹 타이거는 엔진룸에서 화염이 올라오더니 부르르 떤 후에 멈춰 섰다. 승무원이 서둘러 내려 불을 껐다.
보병은 약 40% 정도만 남았다. 공수부대는 한 두 명씩 철로로 내려와 몸의 먼지를 털었다. 국민병은 판저파우스트를 질질 끌며 다가왔고 소년병은 노인병을 부축했다. 국방군은 이제 분대단위로 줄어들었고 그들을 몰아 세우던 헌병도 2명이 고작이었다.
이 만신창이의 병력으로 마지막 방어진지를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카포가 보이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철로 너머로 달려가 그를 찾았다. 카포의 판터는 동쪽 경사로에 처박혀 있었다. 궤도는 날아가고 변속기는 불탔다. 5분 만에 연료와 탄약을 내 판터로 옮겨 실었다. 카포의 판터를 폭파했다.
나는 카포 일행을 판터에 태우고 서쪽으로 향하는 킹 타이거 뒤를 따랐다. 불타는 카포 판터 주변은 피난민으로 가득 찼다. 우리 뒤에는 오토바이, 차와 장갑차가 전속력으로 따라붙었고 피난민과 보병도 거의 뛰다시피 서쪽으로 향했다. 아마 4~5천 명은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 뒤에 아직 알 수 없는 숫자가 남아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에게도 마지막 탈출구가 열렸다.
새벽 동이 트자 동쪽은 검붉은 화염천지로 변했다. 카츄샤 로켓포격이 시작되었다. 철로로 향하던 피난민이 미친듯이 뛰었고 병사는 부상병과 총을 버리고 피난민을 밀치며 달려왔다.
그 뒤의 화염장벽을 뚫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온 몸에 불을 뒤집어 쓴 채로 뛰어나온 말이 마지막이었다. 철로를 건넌 수천명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갔다. 언제라도 우리가 그 화염속에 갇힐 수 있었다.
9군이 연속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이전에 20군으로 잘못 정리한 기억이 있는데 구원에 나선 것은 12군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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