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해가 있을까봐 설명하면, 저는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워낙 복잡한 상황을 짧은 상영시간 내에 우겨 넣느라고, 미국인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느라고 미드웨이가 아닌 진주만부터 시작하느라고, 보실 분이 무척 헷갈릴 것 같아서 배경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제정치, 인물, 지리, 무기, 전력과 전술 등을 모두 제대로 설명하자면 두터운 책 5~6권이 될 분량입니다. 겨우 몇 편의 짧은 이야기로 설명하려면 많은 생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름 조심했지만 그래도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까 재미를 위한 참조자료 정도로만 보시기 바랍니다.
이왕 2차대전으로 시간과 무대를 옮겼기 때문에 당분간은 2차대전 이야기를 계속 정리할 생각입니다. 전에도 밝혔듯이 저는 공부하는 재미가 있는 고대사가 훨씬 좋습니다만...
먼저 12월 7일의 진주만공격입니다. 모든 배경, 진행, 결과는 아래 그림 하나로 설명이 됩니다.
겐다 미노루, 야마구치 다몬(이후 항모 히류 총지휘관) 등이 3차 폭격을 맹렬하게 주장했지만 항공함대사령관 나구모가 거절합니다. 1/2차 공습으로 엄청난 전과를 올린데다가 항공기 손실은 겨우 29기에 불과했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만,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던 그는 항공대의 야간착륙, 미항모의 반격, 진주만항공기와 대공화기의 공격, 연료부족, 미태평양함대궤멸 목적달성이라는 이유를 들어 배를 돌립니다.
위의 그림을 잘 확인하면 유류저장소와 도크시설은 온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니미츠제독은 유류저장소를 폭격했다면 전쟁은 2년 더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도크시설을 제대로 파괴했다면 요크타운이 3일만에 수리를 받고 미드웨이해전의 기적을 만드는 일도 없었을 수 있습니다.
겐다 미노루는 열렬한 해군항공대와 항모주의로 전함거포주의에 반대한 엘리트였습니다. 그는 유럽전선에서 영국과 독일의 항공전을 경험했고 전함을 항모로 개장, 진주만 3차폭격, 하와이점령 등을 주장했습니다만 다행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종전 후에는 대장까지 진급했고 극우정치인으로 온갖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염려했던 것과 비교도 안되는 가벼운 피해만으로 미태평양함대 궤멸의 최우선 목표를 달성해 대성공한 작전처럼 보입니다만 다시 한 번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태평양함대의 핵인 항모가 온전했고, 침몰하거나 파손된 함선도 구형인데다가 그나마도 아리조나, 오클라호마를 제외한 나머지가 전열에 복귀했습니다. 어쨌든 지상에서 파괴된 항공기까지 포함해서 1년 이상의 여유시간을 확보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였겠죠. 미국은 미드웨이해전의 대승으로 1년 이상의 시간을 단축시켰습니다.
전함
아리조나Arizona : 폭탄 4발 적중. 침몰. 1,177명 전사.
오클라호마Oklahoma: 어뢰 5발 적중. 전복. 429명 전사.
웨스트 버지니아West Virginia: 폭탄 2발, 어뢰 7발 적중. 침몰. 106명 전사. 1944년 7월 복귀.
캘리포니아California: 폭탄 2발, 어뢰 2발 적중. 침몰. 100명 전사. 1944년 1월 복귀.
네바다Nevada: 폭탄 6발, 어뢰 1발 적중. 좌초. 60명 전사. 1942년 10월 복귀.
펜실바니아Pennsylvania: 드라이도크에서 폭탄 1발 적중. 9명 전사. 수리 후 복귀.
테네시Tennessee: 폭탄 2발 적중. 5명 전사. 1942년 2월 복귀.
메릴랜드Maryland: 폭탄 2발 적중. 4명 전사. 1942년 2월 복귀.
유타Utah(훈련용 전함): 어뢰 2발 적중. 전복. 64명 전사.
순양함
헬레나Helena: 어뢰 1발 적중. 20명 전사. 1942년 1월 복귀.
롤리Raleigh: 어뢰 1발 적중. 1942년 2월 복귀.
호놀룰루Honolulu: 근접탄으로 바로 복귀.
구축함
캐신Cassin: 드라이도크에서 폭탄 1발 적중. 1944년 2월 복귀.
다운스Downes: 드라이도크에서 캐신의 화염으로 화재발생. 1943년 11월 복귀.
헬름Helm: 근접탄 2발. 간단한 수리 후 1942년 1월 복귀.
쇼Shaw: 폭탄 3발 적중; 1942년 6월 복귀.
지원함
오글랄라Oglala (기뢰부설함): 순양함 헬레나의 어뢰에 간접피해. 전복. 1944년 2월 복귀.
베스탈Vestal (수리정비함): 폭탄 2발 적중. 좌초. 1942년 8월 복귀.
커티스Curtiss (수상비행기함): 폭탄 1발 적중. 일본항공기 자폭. 19명 전사. 1942년 1월 복귀.
소토요모Sotoyomo (항구견인함): 구축함 쇼의 화재에 간접피해. 침몰. 1942년 8월 복귀.
YFD-2 (수상도크): 폭탄 1발 적중. 침몰. 1942년 1월 복귀.
일본은 진주만기습이후 무인지경으로 동남아로 전선을 확대했습니다.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항모 3척을 이리 저리 돌리며 일본에게 강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전에 설명했듯이 일본은 레이더가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항모항공대의 공습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야마모토는 반드시 미국항모함대를 잡아야 한다고 벼르던 차에 1942년 4월 18일, 호넷에서 경폭격기 B-25 16기를 띄워 도쿄를 폭격한 둘리틀Doolittle작전으로 일본사령부는 물론이고 야마모토가 다음 작전을 서두르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을 앞으로 약간만 돌려 야마모토는 하와이지상군 점령을 주장했었지만 일본해군과 육군의 사이가 워낙 안좋아 육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해군도 하와이는 너무 위험하고 늦었다고 반대합니다. 일본해군, 육군과 야마모토 사이에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의견이 갈리다가 절충안으로 미드웨이점령에 합의합니다.
야마모토는 일본연합함대사령관직을 사임하겠다고 협박한 끝에 합의를 받아냈지만 대신에 5월의 포트 모레즈비Port Moresby 점령과 6월 알류샨Aleutian열도 (미드웨이와 동시진행) 작전에 항모 일부를 지원하는 결정적인 오판을 저질렀습니다.
지도의 붉은 표시가 미드웨이섬입니다. 오른쪽 바로 아래가 하와이이고, 포트 모레즈비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파푸아뉴기니 수도입니다.
일본해군은 남태평양방어선을 강화시키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연결선을 끊기 위해 파푸아뉴기니 일대를 점령하려고 했고 암호를 해독한 미국은 급히 오스트레일리아함대와 함께 방어에 나섰습니다.
5월 4일~8일, 포트 모레즈비상륙부대를 호위하던 일본항모 3척(정규항모 쇼카쿠, 즈이카쿠, 쇼호)와 미국항모 2척(요크타운, 렉싱턴) 사이에 역사상 최초로 항모전이 벌어집니다.
양측의 미숙한 정찰과 대응으로 난전이 벌어졌고 미국은 항모 렉싱턴을 잃고 일본은 경항모 쇼호를 잃고 쇼카쿠가 중파되어 전투 자체는 일본의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항모 한척이 간절했던 미국입장에서는 렉싱턴 손실은 엄청난 피해였습니다. 그리고 요크타운도 폭탄을 맞아 장기간 수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는 전과와 달리, 미국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한 전투였습니다. 먼저 일본의 남태평양진출을 막았고, 쇼카쿠를 전력에서 이탈시켰고 즈이카쿠도 항공대 40%를 잃어 미드웨이해전에 참전하지 못했습니다.
'승자의 병'에 걸린 일본은 산호해해전부터 심각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전과를 엄청나게 부풀려 자신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미해군을 압도해서 미국은 수세로 몰렸다고 최고지휘부부터 일반사병까지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산호해해전 전과를 이렇게 발표했을 정도입니다. 대국민 기만홍보였다면 모를까, 실제 전과가 이 정도라고 일본해군까지 믿었기 때문에 미드웨이작전에 심각한 오판을 하게 됩니다.
산호해해전의 확실한 결과: 전투함 5척 격침. 33,000톤 미 캘리포니아급 전함, 33,000톤 미 사라토가급 항공모함, 19,900톤 미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미 A급 순양함 2척 침몰. 전투함 2척 대파. 30,600톤 영 워스파이트Warspite급 전함, 9,050톤 미 루이스빌형Louisville A급 순양함.
요크타운까지 확실하게 격침시켰고 사라토가Saratoga는 잠수함공격으로 반파시켰기 때문에 이제 남은 항모는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정도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반파된 쇼카쿠는 어쩔 수 없었지만, 미드웨이해전에 반드시 투입했어야 할 즈이카쿠도 항공대재편을 위해 본토에 그대로 둡니다.
진주만으로 간신히 돌아온 요크타운은 무려 1,400명이 달라붙어 3일만에 응급수리를 마치고 다시 미드웨이로 출발합니다. 항모와 항공대를 한몸으로 여겨 다른 항공대를 사용하지 않은 일본해군과 달리, 미해군은 수리 중인 사라토가 항공대를 요크타운에 실었습니다.
플레처제독은 요크타운 수리에 2개월 이상 걸린다는 보고에 무조건 수리하라고 다구쳤지만 자신도 2주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겨우 3일만에 진주만을 떠나는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행운으로 미드웨이해전의 승패가 갈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운은 그냥 작은 요소일 뿐이고 이미 산호해해전부터 미해군의 준비와 의지가 일본해군을 이기고 있었습니다.
결전을 각오하고 모든 전력을 쥐어짜내 암호해독으로 알아낸 정확한 위치에서 미리 일본항모를 기다린 반면, 일본해군은 전력을 분산시키고 자만하다 못해 방심하고 지리멸렬했고 위기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우유부단했습니다.
니미츠와 정보분석관 레이톤Layton은 미드웨이해전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측했습니다. 일본해군의 암호를 해독해 전함 2~4척, 항모 4~5척, 중순양함 8~9척, 경순양함 4~5척, 구축함 16~24척, 잠수함 최소 25척이 미드웨이에 투입된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니미츠가 “적과 언제 어디에서 조우할 것으로 예측하는가?”라고 묻자 “미드웨이시간으로 미드웨이에서 발진한 정찰기가 6월 4일 0600시에 북서쪽 325도 방향 280km 지점에서 첫번째로 조우할겁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렇지만 워싱턴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이미 진주만기습으로 크게 놀란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군이 둘리틀작전을 흉내내서 샌디에고San Diego를 기습한 후에 멕시코로 달아나거나 아예 하와이를 점령하거나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할 수 있다고 염려했습니다.
해군정보부는 일본군 통신에서 AF와 AH가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미드웨이와 본토는 태평양해저통신선이 설치되어서 일본군이 감청할 수 없었는데, 일부러 미드웨이 정수소가 고장났다는 통신을 보냈고 일본군통신에서 AF는 미드웨이, AH는 하와이, 그리고 미드웨이가 목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태평양통신선 기념우편엽서입니다. 1903년에 호놀룰루와 마닐라 사이에 태평양통신선을 설치했고 미드웨이는 그 중계점 중 하나였습니다.
반면에 일본해군은 적의 무선교신을 감청해서 얻는 정보가 전부였고, 기함 야마토의 사령탑이 아카기보다 훨씬 높아서 감청에 유리하니 투입해달라는 요청을 야마모토가 거절했습니다.
배수량 73,000톤, 길이 263m, 승무원 2,800명, 460mm포 9문으로 당시 최대전함 야마토입니다. 일본연합함대의 기함으로 야마모토가 애지중지했지만 미드웨이해전에서 무기력하게 기름만 축냈고 그 이후에도 별다른 전과없이 도망다니다가 1945년 4월 7일에 침몰했습니다.
일본해군의 미드웨이점령작전(MI)을 이렇게 진행합니다.
알류샨작전(AL) - 알류샨열도를 점령하고 미군의 북부침투경로를 차단. 미국함대를 유인하거나 미함대가 허겁지겁 미드웨이로 출동할 경우 남하해서 나구모항모함대를 지원
미드웨이작전(MI) - 나구모 항모항공대 항모 6척, 전함 2척,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11척(진주만기습과 동일한 전력)으로 북서쪽에서 미드웨이를 대대적으로 공습. 별도로 출발한 콘도점령군이 미드웨이를 점령해 진주만의 미해군을 유인.
나구모는 북동쪽 800km까지 진출해서 미태평양함대를 격멸.
그런데 일본해군, 정확하게는 야마모토의 계획에는 처음부터 심각한 오류가 있었고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 진행합니다.
1. 사전에 검토한 워게임에서 일본항모 3척이 침몰하는 참담한 결과가 나오자 미함대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리가 없다며 워게임 결과를 뒤집습니다. 다시 벌인 워게임에서도 아카기가 9발을 맞고 격침되자 이번에도 그럴 리가 없다며 3발, 중파 정도로 무마하고 워게임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2. 치밀한 계획을 입안할 때에는 정규항모 6척, 지원항모 5척(정규항모 3척전력), 세계최대전함 야마토를 포함한 전투지원함 140척 이상으로 미함대가 온갖 도발과 유인에도 진주만에만 틀어박혀 있을까봐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산호해해전에서 정규항모 2척과 지원항모 1척이 제외되었고, 엄청난 전력의 야마모토 전함함대는 후방 500km에 떨어져 있다가 그렇게 바라던 미함대와의 결전을 중계방송으로 듣고 끝났습니다. 해군내에서도 전함함대가 전투와 무관한 거리 밖에서 대기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빈정댔었습니다.
반면에 니미츠는 처음부터 태평양함대의 전함 7척이 필요없다고 결정했습니다. 느린 전함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이들을 호위할 항공전력은 낭비라며 모두 샌프란시스코에 정박시켰습니다.
그리고 알류샨과 미드웨이점령군에게도 지원항모 2척씩을 떼주어서 스스로 미해군에게 해볼만한 전장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미해군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력차이였지만, 항모 4:3의 전투였기 때문에 누가 먼저 발견해서 한방 먹이느냐의 전투였습니다.
일본의 작전을 모두 파악한 니미츠는 미드웨이를 육상항공모함으로 만들어서 항공전력은 미해군이 오히려 압도했습니다.
일본항모는 1/3 정도의 예비기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실제 일본항공전력은 미해군과 100대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아무리 미드웨이에 배치된 전투기와 폭격기가 노후된 기종으로 일본기에 상대가 안되었다고 해도 일본은 미드웨이를 폭격하다가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3. 일본해군이 나름 치밀하게 준비했던 경계작전은 제대로 진행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진주만에 미항모가 그대로 있는지를 알기 위해, 5월 31일에 대형 수상정찰기가 진주만 상공을 정찰할 예정(작전명 K)이었습니다. 유조잠수함이 미드웨이와 하와이 중간의 프렌치 프리깃 숄French Frigate Shoals에서 재급유해주기로 했는데, 이미 비슷한 작전을 두번이나 벌였었고 암호를 해독한 미해군이 구축함을 보내 경계했기 때문에 재급유를 받지 못해 취소되었습니다.
연합군이 에밀리라고 불렀던 카와니시 H8K 대형정찰기입니다. 1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무려 7,200km를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잠수함 25척을 투입해 미태평양함대의 이동을 탐지하기로 했지만 투입된 잠수함이 구형으로 유지보수문제가 심각해서 미항모가 미드웨이에 대기하고 있던 6월 3일에야 전개됩니다. 그리고 제대로 전개되었어도 그 넓은 지역을 겨우 25척으로 경계한다는 것이 무리였습니다.
그래도 미드웨이 부근의 일본잠수함이 교신급증을 수상하게 여기고 해군사령부에 알렸고, 일본해군참모부는 야마모토에게 미드웨이 동쪽지역에 미항모대가 이동 중이거나 매복하고 있을 수 있다고 알립니다. 그리고 참조로 나구모의 제1항공대에게도 알렸습니다만 이게 제대로 전달이 안되었습니다.
야마모토는 혹시 모르니까 자신을 발신자로 나구모에게 전달하라고 말했지만 참모는 "제1항공대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나구모에게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무선교신을 금지했기 때문에 지켜야 합니다”라고 답변합니다.
당연히 나구모는 미드웨이 부근에 미함대는 아예 없는 것으로 알고 미드웨이폭격에만 집중합니다. 일본해군의 도착일까지 알고 있던 미해군은 쉴새없이 정찰기를 띄운 반면에 나구모함대는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미함대를 찾아) 겨우 8대의 정찰기만 띄웁니다. 그나마도 지연되거나 항로를 마음대로 수정해서 정찰했습니다.
4. 항모전에 미숙하고 우유부단한 나구모는 처음부터 이중명령을 받아서 두 명령이 상충될 경우 위기를 자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구모의 수석참모장교 토마츠 오이시Tomatsu Oishi는 “연합함대작전명령에 따르면 적군궤멸이 최우선… 그렇지만 6월 5일 미드웨이공습이라는 구체적인 명령도 있다”며 난처해했습니다.
반면에 플레처와 스프루언스제독은 위기에 몰리면 항모를 잃지말고 미드웨이를 포기하고, 계산된 위험 내에서는 알아서 판단하라는 명확한 명령을 받았습니다.
5. 알류샨작전은 무의미한 작전이었습니다. 미드웨이로 미항모대를 유인할 생각이었다면 여기에 모든 전력을 집중시켜야 했습니다. 지원항모 준요와 류조의 함재기 63기는 정규항모 1척의 전력이었고 앞에서 설명한 항공전력 격차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만약 미드웨이에서 미태평양함대를 궤멸시켰다면 알류샨열도는 저절로 손에 들어오는 목표물이었고 미드웨이에서 패한다면 알류샨열도는 지킬 수 없는 머나먼 오지였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작전이었습니다.
더구나 제로기가 불시착해서 당시 미군에게 공포의 무기였던 제로기를 고스란히 넘겨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릅니다.
이야기가 너무 늘어졌습니다. 미드웨이해전의 진행상황은 지도와 시간별설명을 참조하시면 되고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만 추가로 설명하겠습니다.
1. 항모는 초대형함선이기 때문에 겨우 250kg짜리 폭탄 몇 발을 맞는다고 침몰하지 않습니다. 미드웨이해전에서는 나구모의 우왕좌왕으로 갑판아래 격납고가 온갖 유류와 폭탄 투성이였고 치명적인 내폭을 일으켰습니다. 나구모의 기함 아카기는 겨우 한 발에 침몰했습니다.
전투경험이 미숙한 미폭격기조종사들이 목표물을 나누지 않고 모조리 카가에게만 달려드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중 편대장 한명이 뭔가 이상한데? 왜 전부 하나만 두들기고 저기 멀쩡한 놈에게는 안가지? 하면서 편대 2기를 이끌고 아카기로 기수를 돌렸습니다. 2발은 근접탄이었지만 한발이 명중탄이었고 450kg짜리 대형폭탄이었습니다.
2. 마지막으로 침몰한 히류는 살아남을 수도 있었습니다. 나구모가 달아나는 미항모를 해상전으로 잡겠다고 미폭격기 작전거리 안으로 좁혀서 마지막으로 침몰당합니다.
3. 요크타운은 침몰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히류지휘관 야마구치 다몬은 반격으로 요크타운을 격침시켜 격차를 1:2로 줄였다고 착각하고 바로 다시 반격해서 한척만 더 격침시키면 1:1로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심각한 피해를 입어 멈췄던 요크타운은 다시 25노트 정도의 속도를 회복하고 운항 중이었고 히류의 2차공격대는 요크타운을 다른 항모로 참각하고 다시 폭격합니다.
요크타운은 어뢰를 맞고 좌초했지만 다음날까지도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퇴선했던 선원들이 다시 승선해서 진주만으로 옮기던 중에 일본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결국에는 침몰합니다.
일본잠수함은 어뢰 4발을 쏘아 2발을 맞췄고 중간에서 요크타운을 구조하던 구축함 하만이 한 발을 맞고 바로 침몰했습니다.
4. 반면에 히류를 자침시키라고 투입된 구축함 타미카제는 히류를 확실하게 마무리지으려는 급강하폭격기 43기와 B-17 18기의 엄청난 공습을 받습니다. 히류는 한 시간 전에 침몰했고 귀환하기 전에 어차피 폭탄을 버려야 했기 때문에 구축함이라도 잡자고 무수한 폭탄을 떨어트렸는데... 타미카제는 모조리 피하고 겨우 5명만 죽었습니다.
항모 쇼카쿠 옆의 구축함 타미카제입니다.
5. 일본함대는 마지막까지 손발이 맞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후방 너머 후방에 있던 야마모토가 작전취소를 결정하고 콘도상륙부대에게도 취소명령을 내렸지만 순양함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상륙부대를 위한 제압포격을 위해 미드웨이 80km 지점까지 접근했습니다. 한밤중인 0230시에야 명령을 받고 선수를 돌리던 중에 미잠수함을 발견하고 급선회하던 중에 중순양함 모가미와 미쿠마가 충돌해, 모가미가 중파되어 간신히 움직이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멀쩡한 미쿠마는 미항공대의 추격을 받아 격침되고 비실거리는 모가미는 폭탄을 맞으면서도 간신히 살아돌아가 6개월 이상 수리를 받았습니다.
6. 항모 4척과 110명 이상의 우수한 조종사 손실도 심각했지만 해군엔지니어 720명의 손실은 복구할 수 없는 피해였습니다. 당시 2,000명 정도의 조종사를 보유하고 있었고 항모도 계속 건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손실은 바로 메울 수 있었지만, 일본해군의 정비병 40%를 미드웨이전투에서 잃었고 종전때까지 복구하지 못했습니다.
6월 2일, 미항모 미드웨이 북동부에 도착
6월 3일 0843시 – 미드웨이 PBY 정찰기 기뢰제거함대 발견
0925시 – PBY, 수송함대 발견
1225시 – 미드웨이 B-17, 수송함대 공격. 전과 없음
6월 4일 0130시 – PBY, 수송함대에게 야간어뢰공격, 급유함 아케보노 침몰
0430시 – 나구모 108기로 미드웨이공습명령
0530시 – PBY, 일본항모 발견
0620시 – 미드웨이 호위전투기와 공습호위전투기 공중전
0630시 – 미드웨이 공습으로 큰 피해. 격렬한 대공포화로 일본항공기 25기 격추 또는 반파
0700시 – 엔터프라이즈, 호넷 함재기 116기 이륙
0702시 – 미드웨이 TBF 어벤저스 6기, B-26 4기 일본항모공습. 전과없음
0705시 – 미드웨이공습항공대장 나구모에게 미드웨이 2차공습 조언
0715시 – 나구모 예비항공대에게 미드웨이공습 폭장명령
0740시 – 일본정찰기, 미드웨이북동부에서 미함대발견보고
0745시 – 나구모 예비항공대의 폭장중단 명령
0800시 – 미드웨이해병 돈트리스 16기 공습. 전과없음
0820시 – B-17 14기 공습. 전과없음
0825시– 미드웨이 SB2U-3 빈디케이터 11기 전함 하루나공습. 전과없음
0830시 – 일본정찰기 이전 장소에서 미항모존재 확인보고
0905시 – 요크타운 항공대 이륙
0915시 – 호넷 뇌격기대(VT-8) 일본항모공습. 전과없고 15기 모두 격추
0918시 – 일본 미드웨이공격항공대 항모에 착륙. 1030시 미항모공격을 위해 연료와 폭장시작
0940시 – 엔터프라이즈 뇌격기대(VT-6) 공습. 전과없고 10기 격추
1002시 – 엔터프라이즈 급강하폭격기대(VB-6) 일본기동함대 발견
1003시 – 요크타운공격항공대 일본 기동함대 발견
1010–1030시 – 요크타운 뇌격기대(VT-3)와 호위전투기대 일본호위전투기대와 공중전. 일본호위전투기 대부분이 뇌격기대에 집중
1022시 – 엔터프라이즈 급강하폭격기대 카가 공습. 폭탄 4발 적중
1025시 – 요크타운 급강하폭격기대(VB-3) 소류공습. 폭탄 3발로 대형화재 발생
1026시 – 돈트리스 3기 아카기 공습. 폭탄 1발 적중
1040시 – 요크타운 뇌격기대(VT-5) 히류공습. 전과없음
1050시 – 히류 공격항공대 이륙
1209시 – 히류 급강하폭격기대 요크타운 공습. 폭탄 3발로 대형화재 발생과 운항정지
1331시 – 히류 2차 공격항공대 이륙
1443시 – 일본뇌격기항공대 요크타운공습. 어뢰 2발로 요크타운 다시 운항정지와 심각한 침수
1445시 – 요크타운 정찰기 히류 포착
1705시 – 엔터프라이즈와 요크타운 급강하폭격기대 히류공습. 폭탄 4발로 히류 화재발생
1811 – 플레처, 스프루언스에게 전술통제권 위임
1913시 – 소류 침몰
1925시 – 카가 침몰
6월 5일 0255시 – 야마모토 미드웨이작전 취소
0230시 – 미드웨이 90km 지점에서 일본순양함 모가미와 미쿠마 충돌. 모가미 중파
0520시 – 아카기 침몰
0820시 – 히류 침몰
0840시 – 미드웨이 항공대 일본순양함 공습
1636–1845시 – 급강하폭격기 43기와 B-17 18기 구축함 타니카제 공습. 전과없음
6월 6일 0945–1445시 – 항모 급강하폭격기 순양함공습. 미쿠마 침몰. 모가미 중파
1336시 – 일본잠수함 I-168 요크타운공격에 어뢰 2발 적중. 구축함 하만격침
6월 7일 0501시 – 요크타운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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