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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타

믿거나 말거나 토막전사 (9부)

by uesgi2003 2020. 12. 28.

 


영광은 다음 기회에 

젊은 군장교는 어릴 때부터 영광을 꿈꿔왔다. 웨스트 포인트 졸업 후,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룰 기회에 목말라 했다. 
그런데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렸다. 스톡홀름으로 가서 미국대표로 1912년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는 근대 5종경기에서 승마술, 펜싱, 달리기, 수영과 사격으로 승부를 냈다. 

젊은 중의는 모든 경기에서 탁월한 성적을 기록했고 이제 자신의 최고 장기인 권총사격이 남았다. 대부분의 총탄은 정중앙을 관통했지만 2발이 사라졌고 심판은 타겟을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판정했다. 장교는 정중앙으로 계속 관통해서 사라졌다고 믿었다. 

총탄과 함께 금메달이 그렇게 사라졌다. 그는 5위를 기록했고 영광을 향한 도전은 실현되지 않았다. 

운동선수였다면 그대로 끝났을 꿈이었겠지만 그에는 30년 후에 훨씬 큰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프랑스의 거대한 평원을 달리며 미3군으로 독일의 방어선을 산산조각냈다. 그 젊은 장교는 조지 패튼George Patton으로 평생을 기다려온 명성과 영광을 모두 차지했다. 

1912년 올림픽 4년 후에, 조지 패튼은 전세계를 뒤흔든 신무기로 자신의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전차였다. 

 


패튼(오른쪽)은 펜싱에서 3위였지만 프랑스군 우승자에게 이겼다. 

 


권총사격에서는 미국식으로 채점했다면 정중앙 10점, 그 다음 원은 9점 식으로 합산해서 2발이 빗나갔다고 해도 3위였고 근대5종에서 금메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스웨덴식은 타겟에만 맞으면 모두 같은 점수여서 정중앙 명중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세계 최초의 공중전

1913년 11월의 어느 날 아침, 나무와 천으로 만든 원시적인 복엽기가 서로에게 접근했다. 조종사는 권총을 마구 쏜 후에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정확한 기록은 아니지만 세계 최초의 공중전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미국인용병으로 멕시코 혁명에서 서로 반대편에 고용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신문기자 출신의 필 레이더Phil Rader는 우에르따Huerta장군에게, 전문용병 딘 램Den Lamb은 까란싸Carranza장군에게 고용되었다. 레이더는 까란싸군에게 폭탄을 던졌고 램이 그를 쫓아 올라갔다. 

몇 년 후, 램은 두 비행기의 조우를 회상하면서, 레이더가 먼저 총을 쏘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레이더는 일부러 빗나가게 쏘아서 자신도 허공에 총을 쏘았다. 그런데 명중시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요동치는 비행기에서 권총으로 상대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조종사는 권총을 다 비우고 재장전하고 다시 지나가면서 서로에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1차대전 당시, 두 사람은 만났을 때에 웃으며 농담했다. 

시간이 갈수록 공중전이 살벌해졌지만, 이 당시만 해도 낭만적인 공중전이었다. 

딘 이반 램은 파나마운하에서 일했고, 영국왕립비행군단에 복무했고, 온두라스Honduras공군을 창설했고, 다양한 남미혁명에 참전했고, 보석강도로 기소되었고,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의 정보장교로 복무했고, 앨저 히스Alger Hiss 간첩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섰다. 총 13개의 군에서 복무했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다. 
램이 몰았던 Curtis Model D Pusher로 권총으로 서로를 노릴 만도 했다. 권총을 재장전하려면 무릎 사이에 총을 씨우고 한 손으로 조종간을 잡은 상태에서 다른 한 손으로 총알을 넣어야 했다. 

 

1차대전 초반만 해도 상당히 안전한 공중폭격이 가능했습니다. 던질 수 있는 모든 폭탄을 던졌는데,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마구 뿌리기도 했습니다. 아래로 내려 꽂히기때문에 무척 공포스러운 무기였다고 합니다. 



조명! 카메라! 액션이 아니라 전쟁!

1914년 1월, 멕시코혁명가 빤초 비야Pancho Villa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는데 전투나 연설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영화계약 기사였다. 

비야는 뮤추얼Mutual영화사와 25,000달러의 계약을 맺고 부대를 촬영할 독점권을 주었다. 조건에 따르면, 다른 카메라맨은 비야의 작전을 촬영할 수 없고 비야는 수익의 일정부분을 추가로 보장받았다. 
대행사없이 맺은 계약이었다. 

카메라맨 4명이 비야군에 합류했다. 비야는 그들이 합류할 때까지 오히나가Ojinaga마을을 공격하지 않았고 실제 전투에서 적당한 장면이 안 만들어지면 다시 공격하겠다고 약속했다. 

뮤추얼은 비야의 일생에 대한 영화를 기획했고 비야는 자신이 주연을 맡겠다고 합의했다. 그것도 전쟁 중에 군대를 지휘하면서! 영화사는 비야의 후줄근한 구식 복장이 화면에 적잡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말끔한 새 군복을 선물했다. 제작자는 새벽처형을 촬영하기 힘들다고 불평하자 비야는 처형을 환한 오후로 미뤘다. 로케이션 관리자에게는 꿈만 같은 주연배우였다. 

한 기자는 “영화를 만들려고 벌인 전쟁”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비야는 혁명자금을 이렇게 모았고 상당한 홍보효과도 거뒀다. 영화에서 비야는 영웅으로 묘사되었지만 1916년에 미국국경을 넘어 침공한 후에는 1급 악당이 되었다. 
쇼비즈니스의 세계니까. 

비야는 1916년에 뉴멕시코, 콜럼비아 마을을 공격해 17명을 죽이면서, 많은 지지자가 등을 돌렸다. 그는 미국을 자극시켜 멕시코를 침공하면 멕시코국민이 분노해 자신에게 의지할 것으로 믿었다. 

 


“사람을 죽이는 남자와 파트너가 되면 기분이 어떻겠소?”
영화계약에 대한 인터뷰에서, 영화사 해리 에이켄


빤초 비야군의 영화장면 중 하나다. 비야계약 직후에, 또 다른 반란군 지휘관이 독점 촬영계약을 맺었다. 영화사업이야 말로 전쟁보다 더 지옥같다.

 

 




고급 여객선 전쟁

해전 역사상 이런 일이 없었다. 최고급 여객선이 대결을 벌였다. 그것도 서로 위장한 상태에서.
영국여객선 카마니아Carmania와 독일여객선 트라팔가르Cap Trafalgar였다. 

1차대전 초기, 두 여객선은 정부에 수용되어 무장상선순양함으로 개조되었다. 보강장갑으로 모래주머니를 쌓았고 갑판에 대포를 설치했다. 전쟁 2주 후, 두 배는 군작전에 투입될 준비를 마쳤다. 

카마니아가 리버풀에서 첫번째 항해에 나섰고 트라팔가르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출발했다. 두 선장은 무장상선으로는 중무장전함의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상대편의 여객선으로 위장해서 전함의 공격을 피하려고 했다. 

하필이면 양쪽이 서로를 위장하기로 하면서 기이한 운명이 결정되었다. 더구나 작전목적지까지 겹치면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두 무장상선은 캐리비안해의 트리니다드Trinidad 앞바다에서 마주쳤고 자신을 위장한 상대를 바로 알아봤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무장상선은 한 시간 동안 포격전을 벌였고 카마니아가 트라팔가르를 격침시켰다. 
이렇게 고급여객선의 맞대결이 끝났다. 

 

두 무장상선의 배수량은 비슷했지만 카마니아가 4.7인치 포 8문인 반면에 트라팔가르는 4.1인치 2문이어서 상당히 불리했습니다. 


재미있게도 1914년 9월 14일… 외국의 표기로는 9/14/1914에 벌어졌다. 

카마니아는 연동이 2개였는데 트라팔가르로 위장하려고 가짜 연통을 하나 더 달았다. 반대로 트라팔가르는 연통 하나를 떼어내고 나머지 연통은 카마니아와 같은 색으로 도색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1914년 크리스마스, 유럽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참호선에서 수백만명의 젊은이가 몇 백미터 떨어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1차대전 발발 이후 수 많은 목숨이 세상을 떠났다. 

이날은 기적이 벌어졌다. 

영국군과 독일군이 명령을 어기고 참호에서 기어 올라와 휴전깃발을 흔들며 중간지역으로 걸어나왔다. 단 하루만이라도 전쟁의 공포를 잊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며 노래를 불렀다. 암배와 음식을 교환하고 축배를 들었다. 한 영국군병사는 일기에 “지금까지 보낸 크리스마스 중에 가장 이상했다. 앞으로도 이런 날은 없을 것 같다”고 썼다. 

 


독일군이 스코틀랜드 하이랜더와 노닥거리고 있을 때에 한 병사가 축구공을 가져왔다. 몇 분 후, 중립지대의 얼어붙은 들판에서 축구경기가 벌어졌다. 하루 전에는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던 병사들이 한 시간 이상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독일군중위 요하네스 니에만Johannes Niemann은 집에 편지를 보냈다. “거친 바람이 불어와 스코틀랜드 애들 킬트치마를 걷어 올렸는데 속옷이 없어서 많이 웃었습니다. 프리츠Fritz과 토미Tommy를 3:2로 이겼습니다.”

이튿날, 임시휴전은 갑자기 찾아왔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함께 축하했던 병사들은 이제 서로를 죽이는 위치로 되돌아갔다. 

물론 축구경기는 심판이 없었다. 그렇지만 양쪽 모두 규칙을 엄격하게 따르며 자존심을 지켰다. 

웰시Welsh연대는 반대편 독일군에게서 맥주 한통을 크리스마스선물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