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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1차대전

드레드노트부터 항공모함까지 - 유틀란트전투

by uesgi2003 2021. 1. 14.

아마 용어에 대해 이견이 있는 분들이 많을겁니다. 노급 전함부터 순양전함 기타 등등... 그렇지만 용어 상의 이견으로 어느 것이 맞고 틀리고가 아닙니다. 여기에서는 영어원문 그대로 전투순양함, 장갑순양함을 사용합니다. 

 

 

스터디의 포클랜드 대승으로 기쁨에 들떴던 영국은 일주일만에 차갑게 식었다. 독일군은 영국함대를 끌어내기 위해 영국 동부해안 도시를 기습하고 사라졌다. 영국해군성은 독일해군의 암호를 미리 입수했기 때문에 계획을 알고 있었지만 독일 전투순양함(순양전함) 몰트케Moltke, 블뤼허Blucher와 자이들리치Seydlitz가 1914년 12월 16일 오전에 웨스트 하틀풀West Hartlepool을, 폰 데르 탄von der Tann과 데르플링게르Derfflinger(그림 참조)가 스카보로Scarborough와 위트비Whitby를 포격해서 시민 127명을 죽이고 567을 다치게 했다. 몰트케와 블뤼허는 해안포대의 포격을 맞았지만 안개속으로 무사히 빠져나갔다. 

 


영국해군 제1과 2 전투순양함전대가 독일 습격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영국 구축함이 해안에 접근하는 독일함선을 발견했다. 새벽 4시 45분, 영국구축함들은 독일순양함 함부르크Hamburg 등과 교전을 벌였다가 HMS 하디Hardy와 링크스Linx 등이 파손되었다. 
독일 전투순양함은 성공적인 습격에서 퇴각하다가 영국 제2 전투전대와 몇 km 거리로 스쳐 지나갔다. 제2 전투전대는 바로 독일군을 추격했지만 기상악화와 교신혼선으로 따라잡지 못했다. 1915년 1월 24일에도 독일군이 남동쪽 도거뱅크Dogger Bank 습격에 나섰다. 
HMS 라이언, 프린세스 로얄, 타이거, 뉴질랜드와 인빈서블 등의 제1 전투순양함전대는 독일전투순양함 자이들리치, 몰트케와 데르플링게르, 장갑순양함 블뤼허, 경순양함 6척과 구축함 여러 척을 발견했다. 
독일전대는 영국해군을 발견하자 마자 바로 선수를 돌려 퇴각했지만 따라 잡혔고 오전 9시에 전투가 벌어졌다. HMS 라이언이 선두에 섰다가 포탄을 맞고 전열에서 이탈했다. 프린세스 로얄이 기함을 맡았다. 불뤼허가 침몰하고 데르플링게르와 자이들리치가 중파되었다. 독일전대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을 수 있었지만 잠수함의 잠망경이 보였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나머지 함선이 퇴각하도록 내버려두었다. 

1916년 5월 31일, 영국과 독일의 최대해전이 덴마크 서쪽바다에서 벌어졌다. HMS 라이언, 프린세스 로얄, 타이거, 퀸 메리, 뉴질랜드와 인디패티거블Indefatigable, 전함 HMS 바햄Barham, 워스파이트Warspite, 베일런트Vailant와 말라야Malaya가 지원했다. 
오후 2시 20분, 영국경전투함이 전투순양함 선두를 정찰하다가 동-남동쪽으로 가는 독일전대를 발견했고 비티Beatty제독에게 연락했다. 그는 함대를 남-남동쪽으로 돌려 독일전대를 요격하기로 했다. 
수상기함 엔거다인Engadine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찰용 수상기를 띄웠다. 오후 3시 31분, 비티는 독일전투순양함전대를 발견했다. 히퍼Hipper제독의 SMS 뤄초우Lutzow, 데르플링게르, 자이들리치, 몰트케와 폰 데르 탄이었다. 

 


영국전투순양함은 21km 거리에서 25노트의 속도로 거리를 좁혔고 10km 앞서 있던 제5전투전대의 전함도 빠르게 다가왔다. 오후 3시 48분, 양쪽 전투순양함이 17km 거리에서 거의 동시에 포문을 열었고 10분 만에 15km로 좁혀졌다. 
오후 4시 6분, HMS 인디패티거블이 본 데르 탄의 일제포격을 맞았다. 탄약고가 폭발했고 두번째 일제포격이 갑판을 부수자 몇 분 만에 침몰했다. 1,017명이 전사했다. 
오후 4시 8분, 영국 제5 전투전대가 18km 거리에서 전투에 합류해 정확한 포격으로 독일 경순양함전대를 동쪽으로 몰아냈다. 20분 후에 라이언급 전투순양함 퀸 메리가 데르플링게르의 직격탄을 맞고 폭발했다. 승무원 1,266명 중에 겨우 9명만 구조되었다. 
오후 4시 42분, 베티제독은 독일 셰어Sheer제독의 대양함대High Seas Fleet를 발견했다. 오후 4시 45분, 5전투전대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이 전투를 벌일 위치를 잡았고 워스파이트와 말라야가 17km 거리에서 독일 제1과 제3 대양전대와 포격전을 벌였다. 바햄이 자이들리치를 맞췄고 다시 영국구축함이 자이들리치에 어뢰를 맞췄다. 베일런트는 몰트케에게 다가갔다. 

 

1차대전 최대의 해전이었던 유틀란트전투는 제대로 정리하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그림 정도로만 참조하는 것이 속편합니다. 

독일해군이 훨씬 큰 피해를 입혀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전술적 승리에 불과했습니다. 독일해군은 영국해군전대를 개별격파해서 전력차이를 줄이려고 했지만 자신도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영국해군은 구원투수가 즐비했지만 독일해군은 더 이상 공세에 나서지 못하고 잠수함에게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오후 4시, 젤리코Jellicoe제독의 주함대Main Fleet가 도착했고 전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독일전함 프리드리히 데르 그로제Fredrich der Grosse가 장갑순양함 디펜스와 893명을 바다속으로 가라앉혔고 HMS 워리어에게 피해를 주었다. 
HMS 워리어는 독일 경순양함 바이즈바덴Weisbaden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다가 공격을 받았고 5전투전대쪽으로 피신하다가 워스파이트와 항로가 엉켰다. 워스파이트가 회피기동하다가 포격을 받았고 덕분에 워리어는 침몰을 모면할 수 있었지만 이튿날에 좌초되었다. 
젤리코가 비티를 지원하기 위해 보낸 HMS 인빈서블, HMS 인플렉서블, HMS 인도미터블Indomitable이, 독일경순양함 대열과 상대하던 캔터베리Canterbury와 체스터Chester를 지원했다. 구축함 샤크Shark가 침몰했다. 

인빈서블의 후드Hood제독은 라이언을 발견하자 전투순양함 플리트Fleet보다 앞서서 8km 거리에서 독일전투순양함과 포격전을 벌였다. 오후 6시 30분, 데르플링게르 등의 집중포격을 맞은 인빈서블은 폭발하며 침몰했고 1,026명이 모두 숨졌다. 
독일전대는 영국전투함대가 본격적으로 투입되었다고 오해하고 선수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6시 31분, HMS 아이언 듀크Iron Duke가 11km 거리에서 쾨니히Konig전대의 선두함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HMS 말버러Marlborough는 6tl 17분부터 이미 12km 거리에서 카이저Kaiser급의 전투함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2분 만에 전투함대가 전부 전투에 참여했지만 이미 짙게 뿌려진 안개와 연기때문에 목표물을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다. 

독일전투순양함 전열의 선두에 있던 뤄초우가 심각한 피해를 입고 이탈했고 데르플링게르도 포격을 멈췄다. 몇 분 후, 영국함대가 남쪽으로 변침해 독일함대에 접근했다. 이제 뤄초우는 불타오르며 심하게 기울었다. 나중에 배를 포기하고 독일구축함이 침몰시켰다. 
저녁 7시, 젤리코제독은 2전투전대에게 아이언 듀크를 앞으로 나가고 제1 전투전대는 그 뒤에 대열을 갖추라고 명령했다. 이후 30분 동안, 영국전투함은 8km~13km 거리에서 계속 포탄을 날려보냈다. 
약 15분 후, 셰어제독은 주력함을 후퇴시키며 피해가 큰 전투순양함에게 적의 추격을 막으라고 명령했다. 그렇지만 유틀란트전투는 마무리 단계였고 7시 37분, 독일전투순양함은 전열을 이탈했다. 

6월 1일, 북해에 새벽이 찾아왔고 밤새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전투가 완전히 끝났다. 오후가 되자 양쪽 모두 기지로 돌아갔다. 젤리코는 대양함대로 추격해서 끝판을 내려고 했지만 부실한 정보와 일부 함장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독일해군은 영국해군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 전함 포메른Pommern(밤사이에 어뢰공격으로 침몰), 전투순양함 1척, 순양함 4척과 구축함 5척을 잃었지만 영국해군은 전투순양함 3척, 순양함 3척, 구축함 8척을 잃었다. 영국해군은 6,097명을 잃어 독일해군의 2,551명보다 피해가 컸다. 
그렇지만 영국해군은 유틀란트해전에서 전략적 승리를 가져갔다. 독일해군은 이후에 빌헬름스하펜에서 나오지 못하다가 독일이 항복한 1918년 11월에야 스카파 플로우Scapa Flow로 들어가 억류되었다.

 


독일수상함대가 빌헬름스하펜에서 나오지 못하자, 영국해상교역로 차단은 U보트가 맡기로 했다. 1차대전이 진행되면서 독일해군 잠수함은 점점 개량되었고 1916년 말이 되자 해군의 주요 공격수단이 되었다. 
독일의 대형이며 장거리 순양 U보트는 연합군에게 악몽 수준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고 대량으로 투입되면서 바다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영국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독일은 영국해군의 해상봉쇄를 예상하고 대형의 수송용 잠수함을 개발했고 1917년에는 U-151급 U-151(사진 참조)과 U-155를 장거리 수송함으로 개조했다. 
도이치란트Deutschland는 미국이 참전하기 전에 미국을 2번 왕복했다. 미국이 참전하자 올덴부르크Oldenburg와 함께 다시 전투용으로 개조했다. 잠수순양함으로 분류하고 U-139, U-140과 U-141 등을 더 건조하기 시작했다. U-139와 U-140은 원래 수상전투함용으로 건조했기 때문에 이름이 있었다가 개존 후에 U급으로 구분했다. 독일잠수함은 U151~157 7개 급이 있었다. 

 


1917년, 독일잠수함의 위협이 점차 노골적이었고 4월에는 907,000톤이 침몰되었는데 그 중 564,019톤이 영국선적이었다. 영국은 오슈텐트Ostend와 제브뤼헤Zeebrugge의 U보트 기지를 공격해 파괴하고 영국해협을 건너는 통로에 중무장 선박을 배치하고 기뢰와 장애물을 뿌려서 도버 장벽Dover Barrage(그림 참조)를 구축했다. 장벽은 성공을 거뒀다. 1918년 1월~8월 18일, 장벽을 통과하던 독일잠수함 30척이 침몰했다. 
그렇지만 잠수함에 대한 가장 좋은 대책은 호위체계였다. 1917년, 미국이 선전포고를 하면서 미전투함이 상선호송 임무를 맡기 시작했다. 1917년 4월 13일에, 유럽해역에 6척의 구축함을 투입했고 연말에는 USS 뉴욕을 포함한 4척의 전함이 영국해역에 도착해서 제6 전투전대로 대해군에 편입되었다. 

 


항공기와 수상기함도 U보트에 대해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1917년에 해군항공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발전했다. 영국해군은 활주로 갑판을 놓아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진정한 항모를 세계최초로 운용하고 있었다. 
전쟁발발 직후에 경전투순양함 HMS 퓨어리어스Furious를 건조하기 시작했다. 1916년 8월 15일에 진수된 퓨어리어스는 비행갑판을 상판구조로 두었다가 나중에 전체를 비행갑판으로 만들고 격납고를 설치해서 Sopwith One and a Half Strutters 14대와 Sopwith Pups 2대를 수납했다. 1918년 초에 Sopwith Camels로 교체했다. 격납고에서 비행갑판으로 올리는 리프트, 원시적인 어레스터 기어(착륙용 걸이), 수리창 등도 갖췄다. 
1918년, 7월 17일, 각각 22kg 폭탄 2개를 실은 카멜 6대가 퓨어리어스에서 이륙해 톤데른Tondern의 제플린 격납고를 공습했다. 격납고 2개와 탄약더미 1개가 불탔고 제플린 L54와 L60이 파손되었다. 2대는 무사히 귀환했지만 기상악화로 3대는 덴마크에 착륙했고 다른 한 대는 바다에 불시착해 익사했다. 

 

1918년 10월에는 비슷한 장비의 HMS 케이븐디시Cavendish가 취역했다가 HMS 빈딕티브Vindictive로 이름을 변경했지만 1918~20년 북러시아와 발트해에서 연합군을 지원하는 단순한 공습작전에만 투입되었다. 
HMS 에르메스, HMS 아거스Argus, HMS 이글Eagle 신형 항모 3척은 일체형 비행갑판과 배수량 11,025톤으로 크게 발전했다. 이 중에서 HMS 아거스(사진 참조)만 종전 전에 투입되었다. 

 


1914년 8월에 전쟁발발 당시에, 독일의 전투순양함 괴벤Goeben과 순양함 브레슬라우Breslau 2척이 지중해에서 작전 중이었다. 괴벤은 독일해군의 주력인 몰트케급 2척 중 1척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두 척은 영국전투순양함 인도미터블과 인디패티거블의 추격을 받았지만 추격을 벗어나 오스만(터키)의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 피신해 오스만해군에게 억류되었다. 1914년 8월 16일, 괴벤은 야브즈 술탄 셀림Yavuz Sultan Selim로 변경되었다. 
이 전역의 초점은 다르다넬레스Dardanelles해협이었다. 오스만제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Central Powers 편을 들었고 코카서스Caucasus에서 러시아군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영-프연합군이 오스만의 공세를 늦추기 위해 나섰다. 에게해에서 마르마라로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64km 길이의 다르다넬레스해협을 장악하고 콘스탄티노플 앞에 연합군을 상륙시켜 오스만의 조기 전열이탈을 노렸다. 

 

다르다넬레스해협입니다. 저곳을 장악하면 오스만의 수도까지 해상진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