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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영국

바이킹 (3부) - 바이킹 롱십의 숨겨진 비밀 5가지

by uesgi2003 2021. 7. 8.

넷플릭스 사극 라스트 킹덤과 바이킹스를 보다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서 간단한 자료를 정리 중입니다. 
오슬로 문명사박물관의 바이킹 배 컬렉션 큐레이터이자 바이킹시대 고고학자 얀빌Jan Bill과 BBC 자료를 인용했는데, 언제나 반대 시각과 자료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이킹에 대한 제 지식이 부족하기때문에 용어와 설명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재미로만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바이킹이 탐험, 교역과 정복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밀 중 하나는 조선술이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육상통행보다 피오르드fjord와 강을 항해하는 편이 더 쉬웠기 때문에 항해는 일상생활이 되었다. 바이킹세계는 수로를 중심으로 발전했고 배를 타고 해안을 따라, 강을 거슬러, 바다를 건넜다. 
바이킹선박은 작은 고기잡이배부터 넓은 수송선까지 다양했지만 주로 롱보트 또는 롱십(랑스킵)이라는 배를 사용했고 중세시대 가장 정교한 배를 타고 약탈, 교역과 탐험에 나섰다. 

 



바이킹 롱십은 얼마나 길었을까?
바이킹 롱십은 보통 2~30m 길이였다. 

클링커 이음Clinker Built이었다. 
나무판을 겹쳐서 선체를 만드는 방식으로, 나무판 사이는 타르, 털과 이끼를 섞은 동물성 지방으로 메웠다. 

 


인력과 풍력을 사용했다. 
노꾼이 최대 60명까지 탑승했고 양모로 짠 사각형 돛을 하나 달았다. 선미에 측면타Side rudder를달아서 방향을 조절했다. 

 


평균 속도는?
바람을 받으면서 노를 저었을 때에 약 10노트(약 시속 18.5km)였다. 

흘수선이 얕았다.
그래서 해안에 더 다가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기습약탈하고 바로 퇴각할 수 있었다. 

 


선수상figurehead도 있었다.
선수에 용이나 뱀과 같은 괴수의 조각을 달았는데 적에게 공포를 주려는 목적보다는 바다의 불운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최근에 노르웨이 오슬로피오르드Oslofjord, 젤레스타드Gjellestad에서 바이킹 배무덤이 발굴되고 있다. 2018년에 지면투과 레이더로 발견했고 2020년 9월에 발굴작업을 시작해서 12월까지 계속되었다.
얀빌Jan Bill이 발굴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그는 바이킹 배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 5가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 바이킹배는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다.
바이킹배는 오랜 세월을 이어온 전통의 산물로 1050년에 건조된 배는 800년에 건조된 배와 다른 점이 많다. 
바이킹배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빠른 유물은 에스토니아Estonia, 살메Salme에서 발굴되었고 약 7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타깝게도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서 배형태로 철제 못이 지면에 놓여 있었다. 
약탈이나 다른 목적으로 발트해에 나가던 바이킹전사의 사체가 많이 나와서 바이킹 배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사아레마Saaarema섬에서 운명을 다했고 배와 함께 매장되었다.

 

 

유골 41구와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고 사아레마 박물관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박물관자체가 유적으로 보입니다. 에스토니아도 강대국의 전쟁터였는데, 대포의 발달과 함께 성도 이런 방어진을 개발했습니다. 

 


2. 바이킹배는 모두 똑같지 않았다. 
배는 다양한 목적으로 건조되었다. 고기잡이용은 매우 작았고 이동용은 당연히 더 컸다. 당시 스칸디나비아는 도로가 열악했고 가파른 산맥과 숲이 울창해서 수로가 가장 큰 교통수단이었다. 그래서 롱십을 만들었고 주로 전쟁에 사용했다. 
바이킹시대 말기에 가까워지면서, 가능한 한 재화를 경제적으로 운송하는 전용 화물선이 건조되었다. 이런 화물선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건조할 수 있었다. 나무, 철과 지식만 있으면 건조할 수 있었다.

3. 대형 바이킹배는 권력을 의미했다.
큰 배는 부유하고 강력한 사람이 소유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바이킹배를 발굴연구한 결론이다.
큰 배를 건조하는데 들어간 재료의 양과 인시Work Hour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큰 그림만 알고 있을 뿐이다. 굉장한 비용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대형배의 돛 하나를 만드는데 양 60마리가 필요했고 나무 판 모두에 지름 1m의 큰 오크나무 15그루가 들어갔다. 철 수백 kg에 타르와 로프도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대형배는 정말로 대규모 투자였고 아주 신중하게 건조되었다. 조선공은 품질에 대해 아주 경험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미적감각도 뛰어났다. 

 

오슬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 바이킹 롱십입니다. 


4. 바이킹배는 가볍고 유연했다.
당시의 다른 배보다 뛰어난 점이었다. 스칸디나비아배는 몇 백 년의 전통으로 건조되었다. 초기에는 주로 노로만 항해했기 때문에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했다. 
북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과 비교하면, 바이킹배는 매우 가볍고 빠른 속도를 내도록 건조되었다. 해안에 올리기도 쉬웠고 선착장이 필요없었다. 강을 거스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육상으로도 운반할 수 있었다. 워낙 가벼웠기 때문에 바이킹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고증과는 담을 쌓은 기록판화에는 이렇게 운반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운반했겠죠.

 



5. 바이킹배는 불편했다.
바이킹배는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북해는 악천후로 유명하고 아이슬란드나 그린란드로 가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배에 오르면 악취부터 만나야 했을 것이다. 나무와 리깅(밧줄연결)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곳에 타를 칠했다. 새로 타르를 칠했다면 사방이 끈적거렸고 옷이나 피부에도 달라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강풍에 돛을 보호하려고 칠한 동물지방이 썩으면서 악취를 더해주었을 것이다. 
24시간 내내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다. 비가 오면 그대로 맞고 뜨거운 태양을 피할 곳이 없었다. 건조비용이 워낙 많이 들었고 전투함의 경우에는 한 번에 최대 인원을 태워야 했기 때문에 사람으로 가득찼다 . 비좁고, 춥고, 악취나는 항해였다. 

 

아마 이런 식으로 잠을 잤겠죠. 큰 덩어리는 옆에 엉덩이를 내밀고 위태롭게 처리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