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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1차대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에서의 생활

by uesgi2003 2023. 12. 31.

 

요즘은 동영상도 몇 초 단위로만 즐기는 시대라 긴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지 않았는데,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하나를 정리해봅니다. 

 

BBC 자료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에서의 생활
피터 하트Peter Hart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복무했던 병사들의 경험에 대해 설명한다.

피터 하트는 런던 대영제국 전쟁박물관의 구술 역사가이자 『웃거나 울거나: 서부 전선의 영국군, Laugh or Cry: The British Soldier on the Western Front 1914-1918』(펜 앤 소드 밀리터리, 2022)의 공동저자다.

 



참호란 정확히 무엇일까?
참호는 오늘날까지 다양한 분쟁에서 사용되어 온 방어용 구조물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투를 바로 떠올리게 된다.

1914~18년 전쟁에 사용된 영국의 가장 단순한 참호는 깊이 1.8m, 폭 1m 정도였다. 참호에는 병사들이 서서 적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는 약 45×45cm 크기의 사격대가 있었다. 참호 앞에는 병사들을 총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높이 90cm, 너비 1.8m 정도의 방벽이 있었다. 참호 뒤에는 파라도스Parados(흙더미)라는 비슷한 구조물이 있었다. 참호에는 나무와 철조망을 리벳으로 연결한 A-프레임을 설치해 붕괴를 막기도 했다. 

 


참호는 위치와 상황에 따라 디자인과 구조가 매우 다양했다. 어떤 참호는 단순한 도랑이었지만 어떤 참호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모든 참호는 병사들이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제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는 어디까지 뻗어 있었나?
참호는 북해에서 스위스까지 약 764km에 걸쳐 뻗어 있었다. 이것도 최전선에 불과하며 최전선에서 후방으로 뻗은 통신 참호, 지원선, 전선도 있었는데, 대략 2,400km 이상의 길이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수천 km에 이르는 다른 참호, 때로는 여러 개의 참호로 이루어진 참호도 많이 있었다. 참호를 파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모두 군인들이 직접 만들어야 했다.

동부전선의 참호전은 서부전선의 참호전과 어떻게 달랐나?
두 전선은 여러 면에서 비슷했지만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우선 동부전선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러시아군이 3~4년 동안 훨씬 더 넓은 지역에서 서로 싸웠다. 동부전선의 참호는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기까지 1,300km~2,400km에 이르는 거리에 걸쳐 있었다.

동부전선의 전투는 서부전선 못지않게 잔인했고, 실제로 사상자 수도 서부전선보다 더 많았다. 참호 자체는 비슷했지만, 참호의 정교함은 해당 지형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어, 참호[가슴 높이로 급하게 건설한 요새]는 습지대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동부전선이 서부전선보다 겨울철에 훨씬 더 추웠다는 점이다. 시베리아 바람이 이 지역을 가로지르며 병사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서부전선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동부전선도 똑같이 열악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참호에는 누가 주둔했나?
여군을 제외한 모든 군인, 그리고 전투부대에 소속된 모든 병사가 한 번쯤은 참호에 배치되었다. 영국군은 대대를 지속적으로 순환배치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최장 2~3일 동안 최전방에 있다가 지원 또는 예비전선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했다. 사기를 유지하고 병사들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었다.

독일군과 프랑스군에는 그런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종종 최전선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전투대대 뒤에는 식량과 보급품, 포병, 수용소와 철도에서 일하는, 다른 지원부대가 있었다.

대영제국군은 최전선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군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에서 온 군인들로 구성된 인도군은 병력 면에서 가장 큰 공헌을 했다. 많은 인도 군인들이 서부전선에서 복무했으며, 1914년 10월에는 영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약 3만~5만 명으로 구성된 2개 군단이 도착했다. 그들은 훌륭한 전투원이었고 실전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그들의 공헌은 엄청났고, 더 많은 병사들이 참전했다.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로 파견되어 군의 핵심전력이 되었는데, 두 전역 모두 성공적이었다.

 

 

역사를 모르는 모지리들이 인도인이 영국을 장악하고 있다느니 어쩌고 하면서 인종차별을 해대는데, 1차대전에서만 인도군 100만명 이상이 동원되었고 7만명 가까이 전사했습니다. 인도 등의 식민지 인력을 엄청나게 동원했기 때문에 지금의 영국인구 구성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인도군 외에도 제국 내 다른 국가의 군인들도 상당한 공헌을 했다. 흔히 '안작부대Anzacs'로 알려진 호주와 뉴질랜드군은 정예부대로 인정받았다. 전술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1917년과 1918년에 이르러 안작부대는 강력한 전투부대로 거듭났고, 실제로 헤이그 원수는 안작부대를 정예부대로 선발했다. 캐나다군도 훌륭했다.

이처럼 대영제국군은 다른 많은 국가의 군인들과 함께 서부전선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공헌을 했다.

참호에 있던 병사들이 실제 전투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이 실제 전투에 투입된 시간과 관련하여 역사학자 고든 코리건Gordon Corrigan은 영국군이 고지를 점령하는 시간보다 축구를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물론 축구경기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반면, 참호를 넘어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병사들은 참호에서 생활하는 동안 단 두 번만 공격하거나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참호 주둔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2~3일 참호에 머무는 동안에도 병사가 실제 전투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손실은 포격이나 저격때문이었다.

병사들이 공격을 받으면 엄청나게 긴장되고 끔찍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RC 셰리프의 연극(이후 영화로도 제작)인 '여정의 끝Journey’s End'은 1918년 독일군의 대규모 공격을 앞둔 상황을 그린 작품으로, 이런 위협에 직면한 군인들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독일군이 포격으로 자신들의 앞길을 차단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도 후유증에 시달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tLpyaLNfudY



전선에 있던 병사들은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병사들은 대부분 밤이나 병장이 와서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자유시간을 가졌다. 많은 병사들이 쉬는 시간에 차를 마시곤 했다. 실제로 영국군 병사들은 오늘날까지도 따뜻하고 달콤한 차를 많이 마시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병사들은 집에 편지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편지를 읽기도 했다. 당시에는 가족으로부터 다시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일부 병사들은 훌륭한 작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들은 둘러앉아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환상적인 식사를 상상하기도 했다. 병사들은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병사들이 여가를 즐기기에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기도 했다. 비록 최전방에 있는 시간이 2, 3일에 불과하지만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경험이었다.

병사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떻게 요리했을까?
영국군 병사들은 하루에 약 4,000칼로리가 포함된 식단을 먹었는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요구량이었다. 그러나 음식은 통조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다양성과 신선도가 부족했고 비스킷과 소금에 절인 베이컨을 튀겨서 다른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돼지기름이 있어서 맛이 너무나도 없었다.

또한 마코노치Maconochie라는 고기와 야채스튜가 있었는데, 제대로 데우지 않으면 맛이 좋지 않아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돼지고기가 거의 들어가지 않고 콩이 주를 이루는 돼지고기와 콩이 들어간 음식이 있었는데, 일부 병사들은 이 음식도 맛있다고 평가했다. 병사들은 토미 쿠커Tommy cookers라는 휴대용 스토브를 사용하여 식사를 준비했지만, 요리를 하는 것과는 다르며 음식을 약간 데우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 스튜는 가정식으로 아주 잘 만든 것입니다. 참호속에서는 죽기 싫어서 먹을 정도로 형편없었을 겁니다. 

참호 생활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무엇인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장군들이 무능했고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성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렇지만 사실과 다르다. 장군들이 종종 성(대저택)에 머물렀다고 해도 병력을 효과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통신센터의 역할을 했다. 

전쟁 중 4명의 중장(각각 약 6만 명의 군단을 지휘), 12명의 소장(각각 1만 2,000~1만 8,000명의 사단을 지휘), 81명의 준장(각각 3,000~4,000명의 병력을 지휘)이 전사했고, 146명이 부상당하거나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많은 지휘관들이 목숨을 잃었다.

또 다른 오해는 영국군 장군들이 늙고 무능한 바보였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40~50대에 불과한 장군도 많았고, 그보다 더 젊은 장군도 있었으며, 제2차 보어 전쟁(1899~1902)과 같은 이전 분쟁에서 이미 그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그들은 일생동안 쌓아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무능하다고 무시하면 안된다. 참호에서의 생활은 병력을 이끌고 전투에 임하는 장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잔인하고 치명적인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