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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남북전쟁

세계사를 바꾼 미국 남북전쟁 (9) - 와일더니스 (2부)

by uesgi2003 2013. 2. 8.

고대로 이야기를 옮겨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와일더니스까지만 정리하고 고대 이야기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는 일본 전국시대 최대의 격전 중 하나인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하려고 했는데 그건 좀 더 뒤로 미룰 수 밖에 없군요.

다시 또 강추위입니다. 이제 그만 추워야 할텐데요. 없는 사람들 힘들고, 유기동물들도 죽어갈테고... 이번 겨울은 너무 잔인한 겨울입니다. 

세계사를 바꾼 미국 남북전쟁 (8) - 와일더니스 (2부)


제임스 워즈워쓰(Wadsworth) 사단이 남군을 밀어냈지만 울창한 숲에서 고립되었다가 조금씩 후퇴했고 몇 시간 만에 워렌(Warren)의 공격은 무산되었다. 

오후 3시, 세지윅(Sedgwick) 군단의 호라티오 라이트(Wright) 사단이 남군 기병대의 견제를 뚫고 이웰의 북쪽을 공격했지만 지형을 잘 이용한 남군은 쉽게 막아냈고 이웰 군단의 남쪽 3km 지점인 오렌지 플랭크(Orange Plank) 도로에서는 두 번째 전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리의 상당한 병력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안 미드(Meade)는 게티에게 6군단의 3개 여단을 주고 오렌지 플랭크 도로와 브록(Brock)도로 교차점을 지키게 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한 게티는 힐(Hill)의 전진을 막고 핸콕(Hancock) 선봉대가 보강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오후 4시 30분, 게티와 핸콕 2개 사단은 힐 군단의 헨리 헤쓰(Heth) 사단을 공격했고, 힐이 캐드머스 윌콕스(Wilcox) 사단을 투입하자 핸콕도 군단의 나머지 병력을 모두 투입했다. 미드는 턴파이크에서 4개 여단을 빼내 힐의 왼쪽 옆구리로 투입했지만 남군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힌데다가 어둠이 내려 그것으로 첫 날 전투가 끝났다. 


힐 군단은 계획대로 북군을 제자리에 잡아뒀지만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대열은 완전히 엉망이었고 연대와 여단은 숲 속에서 이리 저리 엉킨 상태였다. 

힐의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안 리는 롱스트리트에게 행군을 서두르라는 전령을 보냈다. 새벽까지는 그가 와주어야 북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랜트는 다음 날 전투에서는 전력을 오렌지 플랭크 도로에 있는 힐의 3군단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다른 군단의 병력을 지원받은 핸콕의 2구단이 힐의 정면과 북쪽 측면을 공격해서 밀어내고 번사이드의 9군단이 이웰과 힐의 틈을 파고든 후에 힐의 배후를 포위한다는 계획이었다. 

롱스트리트는 서두른다고 지름길을 택했는데, 그만 길을 잃어버렸고 북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힐에게 퍼부어질 때까지도 도착하지 못했다. 

힐의 중앙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리는 플랭크 도로에 포대를 설치했고 잠시동안 북군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포대가 유린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절대절명의 순간에 뒤에서 갑자기 우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누군인지 묻자 "텍사스 여단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롱스트리트가 도착한 것이었다. 

리는 모자를 흔들며 "텍사스 만세. 텍사스인은 항상 최고였다"라고 외쳤고 텍사스 여단은 사랑하는 사령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뒤로 가십시오. 리 장군님. 뒤로 물러나세요!" 롱스트리트의 간곡한 만류로 그는 결국 안전한 후방으로 이동했다. 


핸콕의 북군도 전진하는 도중에 대열이 뒤엉켰고 롱스트리트의 병력이 달려들자마자 황급히 등을 돌려 달아났다. 1시간도 채 안되어서 남군은 플랭크 도로를 다시 1km 가까이 되찾았고 공사가 중단된 철길을 따라 북군을 계속 밀어붙였다.

핸콕이 나중에 인정했듯이 북군은 '젖은 담요'처럼 말려올라갔다. 워즈월쓰(Wadsworth)는 오렌지 플랭크 도로 북쪽에서 반격에 나섰다가 심각한 부상을 당했고 혼정 중에 일부 버지니아 병사들이 롱스트리트 일행을 북군으로 오인하고 공격해서 미카 젠킨스(Jenkins) 장군을 포함한 여러 명이 죽고 롱스트리트도 심각한 부상을 당해 몇 개월 동안 병상에 있어야 했다. 

플랭크 도로에서 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번사이드는 남군의 왼쪽 뒤를 파고드는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 9군단은 겨우 1개 여단에 막혀 틈을 벌리지 못한데다가 하루종일 제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남군의 상황이 호전된 것도 아니었다. 롱스트리트가 부상을 당하면서 조율된 공격이 어려워졌고 전열을 다듬느라 몇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핸콕은 브록 도로를 따라 강력한 방어선을 만들 수 있었고 뒤늦게 여기를 공격한 남군은 많은 피해를 입고 그날 하루의 전투를 마감했다. 

거의 같은 시간, 이웰은 턴파이크 북쪽에서 공격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 정찰에서, 반대편 적의 측면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고 존 고든(Gordon)은 공격명령을 내려달라고 주발 얼리(Early)에게 요청했지만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었다. 얼리는 번사이드가 근처에 집결해 있다고 오판했었던 것인데, 날이 어두워 질 무렵에 이웰은 고든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 번 공격해보기로 했다. 어둠이 내리기 직전에 3개 여단이 세지윅의 전열 가장 윗부분에 달려들었다. 

고든의 공격은 북군 2개 여단을 밀어내며 큰 혼란을 일으켰고 당황한 지휘관이 그랜트에게 달려가 후퇴허가를 부탁했지만 면박을 당할 뿐이었다. 

완전히 어두워지면서 고든의 공격은 멈췄고 그 다음은 산불이 양쪽 부상병을 집어삼켰다. 플랭크 도로를 따라 숲에는 큰 불이 났고 미처 후송되지 못한 부상병들은 불 속에서 타죽어가면서 와일더니스 전투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아래 그림 참조). 


2일간의 전투에서, 리의 남군은 최소한 7,500명 이상을 잃었지만 북군의 더욱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랜트의 포토맥군은 17,766명을 잃었다.

그래도 그랜트를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종군기자에게 "대통령을 만나거든 그에게 말해주시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여기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와일더니스 피해

북군 피해

전사      2,246명

부상     12,073명

실종       3,347명


남군피해

전사,부상,실종     11,000명 (추정)


이 동영상은 와일더니스 전투 중 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