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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사상최대의 전차전 - 쿠르스크와 프로호로프카 (4부)

by uesgi2003 2013. 5. 17.


처음에는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자며 시작했던 쿠르스크 이야기인데 벌써 4부이군요. 그런데 아직도 전투는 시작도 못했습니다. 

동부전선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을 위해 무기 이야기도 정리하다보니 그림자료도 많이 사용하게 되고, 욕심에 흔하지 않은 자료를 찾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 자랑을 하자면... 영어 독해에 (어떤) 어려움도 없기 때문에 그나마 정확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다 정리하려면 20부까지도 가겠군요... 좀 건너뛰어야겠습니다. 이런 소리를 하면서도 다시 또 배경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쿠르스크에서는 소련군의 탄막에 중장갑 독일군이 뛰어드는 헤비급 인파이트 권투시합이라 양 선수의 엄청난 배경을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상최대의 전차전 - 쿠르스크와 프로호로프카 (4부)


소련의 화력지원 


1941년 궤멸되어 존재가 없었던 포병, 항공기, 보병지원 전차, 공병 등의 독립부대는 1943년 독립 전차군처럼 별도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76.2mm, 152mm, 122mm 외에 소련을 구한 3대 무기 중 하나인 다연장로켓발사기 (Katyusha, 독일군은 스탈린의 오르간)가 본격적으로 배치되었다. 카츄샤는 M-30(중로켓)과 M-13(경로켓) 두 버전으로 사용되었고 일제포격의 공포를 견딜 수 있는 병사가 없었다. 보통 8대가 한 부대를 이루었다. 




대전차 화기는 적군이 해결하지 못한 약점이었다. 1943년 여름까지도 57mm 대전차포가 고작이었고 그 이전에는 45mm 포가 주력으로 거의 소용이 없었다. 구시대의 유물이 된 PTRD 14.5mm 대전차총은 경장갑 차량에 효과가 있었다. 개를 훈련시켜 전차 밑으로 들어가 폭파하게 했지만 소련군 전차로 뛰어드는 개도 많았다. 




소련군 보병(소총)사단은 9,000명의 병력편제였고 근위보병사단은 10,000명 이상의 병력으로 구성되었다. 1943년 당시 거의 대부분의 사단이 이 정도 수준을 유지했지만 기록에 따르면 신병이나 부상병이 동원된 경우가 많았다. 


"보로네즈 전선군의 27%는 해방된 지역에서 징집한 병력이었고 9%는 부상병, 33%는 후방 지원부대를 해체해서 동원한 병력이어서 31%만이 정상적으로 보충된 병력이었다."


소련은 쿠르스크 일대에 전력을 집중시키는 것말고도 대공사를 위해 300,000명의 시민을 동원했다. 여성과 아이까지 동원해 매일 대전차호와 벙커를 만들어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어망은 실로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대전차 거점에는 대전차총으로 무장한 중대나 대대, 폭발물 공병 소대, 6문의 대전차포와 2~3대의 자주포 전차 중대가 배치되었다. 독일의 중전차를 대비해 85mm 대공포, 122mm와 152mm 곡사포가 배치되었다. 심지어 T-34가 참호에 포탑만 드러내고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취약하다고 판단된 부분에는 지뢰밭을 만들었다. 

이런 대전차 거점 3~4곳이 협동해서 하나의 대전차 구역을 형성하고 독일군의 공격 축 하나를 완전히 맡았다. 수천 킬로미터의 참호가 대전차 거점을 연결했고 여기에는 보병이 배치되었다. 


"보로네즈 전선군 하나에만 4월 1일부터 7월 1일까지 4,200km 이상의 참호와 호를 만들었다. 그리고 500km 이상의 대전차 장애물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3개군 방어라인은 서로 연결되었다. 방어가 가장 취약한 곳은 중앙 전선군과 보로네즈 전선군의 연결지점이었다. 다른 방어라인은 깊이가 60km 정도인 반면에 이곳은 15~20km가 고작이었다."


자연환경도 소련편이었다. 여러 개의 강이 방어라인과 잘 연결되었는데 너비가 130m, 깊이가 3m 밖에 안되더라도 미끄러운 강둑은 상당한 방어시설이었다. 북부 지역의 고지대는 해발 290m나 되었고 40~70m 깊이의 계곡이 연이어져서 독일군의 진격을 붙잡았다. 

독일군 전차의 예상 진격로나 엄폐지역에는 지뢰를 집중해서 매설했다. 제6 근위군 지역의 경우, 1.5km마다 2,400개의 대전차와 2,700개의 대인지뢰를 묻어서 첫 번째 방어라인에만 총 130,000개가 넘는 지뢰밭이 준비되었다. 첫 번째 라인 뒤부터는 지뢰의 양이 크게 줄어들지만 보로네즈 전선군 지역은 60,000개가 묻혔다. 

전투 후의 분석을 보면, 최전방에서는 독일군 전차 하나를 주저 앉히는데 350~400개의 지뢰가 필요했지만 후방에서는 120~150개만으로 충분했다고 한다. 

최전방의 방어라인은 8개 라인으로 총 450km 길이에 190km의 깊이로 준비되었다. 쿠르스크 돌출부의 목 (독일군의 협공목표)에는 또 다른 방어라인이 돈 강을 따라 준비되었다. 20,000문이 넘는 포와 박격포, 6,000 정의 대전차총과 수 백대의 카츄샤가 배치되었다. 


많은 병사들이 신병이었기 때문에 2일에 한 번씩 방어훈련을 했다. 하루는 방어진지 구축작업을 하고 하루는 대전차총,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전차와 보병을 떼어놓고 보병만 사냥하는 훈련을 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가스 공격을 대비해 하루에 최대 8시간 동안 가스 마스크를 쓰고 훈련했다. 

독일의 작전 예상일이 다가올수록 최고사령부는 선제공격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주코프는 방어전략을 고집했다. 히틀러가 신무기와 전력보강을 위해 일정을 미룰수록 소련은 더 많은 병력과 물자를 집중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소련은 위장과 기만전술(Maskirovka)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가짜 무기를 엉뚱한 곳에 배치시켜 독일의 정찰을 속인 것이었다. 특히 보로네즈 전선군의 엄청난 규모의 기만전술은 놀라웠다. 

 


"특수 공병부대는 883대의 모형전차와 220대의 모형비행기를 만들었고 3곳에 가짜 전차집결소를 만들고 95대씩 전시했다. 그리고 13곳에 가짜 비행장을 만들고 모형을 전시했다."


땅위에는 지상군이 집결하는 동안, 적군 공군도 쿠르스크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루신 IL-2 쉬투르모빅(Shturmovik) 기상공격기가 대거 배치되었고 독일 전투기를 상대할 La 5FN과 Yak 9 전투기도 이동했다. 숫자로는 루프트바페를 압도했지만 독일군 조종사의 능력과 레이더(Freya) 성능에서 아직 상대가 안되었다. 그래도 이전과 달리 쿠르스크 하늘은 독일공군만의 것이 아니었다. 


소련의 지상공격기로 너무나 유명한 일루신입니다. 전투기가 부족한 곳에서는 전투기로도 사용되었는데 (당연히) 상대는 폭격기나 수송기였습니다. 워낙 장갑이 두터워서 스투카의 기관총으로는 격추시키기 힘들었습니다.

지상공격기이다 보니 전쟁기간 동안 10,762대(일루신 전체 기종)가 격추되었습니다. 



1942년에 투입된 신형 전투기 라보치킨(Lavochikin) La 5입니다.

이 비행기를 노획한 독일군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주력전투기 Bf-109나 FW-190와 비슷한 성능을 가졌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많았다고 합니다. 

비행 중에 조작해야 할 장치가 너무 많아서 조종사가 전투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환기기능이 동작하지 않아서 명령을 어기고 캐노피를 열고 비행했습니다. 

점차 성능이 개선되면서 소련 조종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소련군 신형 전투기로서는 2,591대 격추라는 최대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 하나의 소련 걸작 전투기 야크입니다. 속도와 기동성을 중시한 전투기로 독일 전투기와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림의 야크기는 아마도 자유 프랑스군이 가졌던 기체로 보입니다. 

소련군 최초로 Me-262를 격추시킨 전적도 있었고 북한이 남침할 때에 사용했던 주력 전투기라 우리에게는 좋은 기억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