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역사도서를 소개하면서 노보우의 성이라는 소설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오래간만에 역사물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일본역사에 관심많은 분들은 볼 기회가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국내정서상 영화관에 걸릴 수도 없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작은 이야기라 흥행때문에라도 개봉하지 않을 겁니다.
메인 포스터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실제역사)은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에 대해서도 스포일러를 주장하는 분이라면 스킵하시기 바랍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것도 스포일러라고 용감하게 주장하는 시대라...
일본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지역 축제로 활용하는데, 노보우의 성을 지역축제로 활용한 사진입니다.
주요 인물이 전투를 벌이는 재현놀이인 셈입니다. 영화의 이미지와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 成田長親(나리타 나가치카) - 성주 대리인으로 영화의 주인공.
- 평소에는 높은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농업을 좋아했고 농민과 즐겨 어울렸지만 바보(데쿠노보우)라고 불렸습니다. 당연히 성문을 열고 항복을 해야 하지만, 강한 것에 굴복하는 삶이 싫다며 항전을 주장합니다.
- 영화에서는 대단한 전략으로 승리한 것처럼 광고하지만, 실제로는 가신과 농민들의 구심점이 되어 마지막까지 저항한 흡사 유비와 같은 성격입니다.
- 시대가 바뀌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관동지역으로 강제 이주했을 때에 고문으로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 소설에서도 바보처럼 묘사되지만 그래도 무게감이 있는 반면에 영화에서는 매우 가볍게 묘사되는 점이 아쉽습니다.
- 甲斐姫(가이희메)
- 소설이나 영화 모두 나가가치와 러브라인을 그리고 대단한 무력을 자랑하는 미인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상의 인물일 겁니다. 당시 일본의 남성체격이 워낙 왜소했기 때문에 여성 중에서 무력을 자랑하는 캐릭터가 많았고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 영화에서는 오사카 성 공방전 후에도 살아남았다고 하지만 그냥 전해지는 전설일 뿐입니다.
- 正木丹波守利英(마사키 단바노가미토시히데)
- 나가가치가 유비 성격이라면 단바는 관우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을 잘 쓰는 그 일대에서 유명했던 무장이라고 합니다. 가로(높은 가신)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나가가치 대신에 오시죠(忍城)의 성주대리를 맡아주었으면 하는 가신이 많았지만 나가가치를 끝까지 잘 보필합니다.
- 소
- 설에서 나오는 정도의 무장이라면 미쓰나리가 반드시 기용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절을 세우고 귀의합니다.
- 장비와 똑같은 캐릭터이고 활약하는 장면도 마치 장판교 모습과 같아 삼국지 오마쥬가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무력이 대단했고 맹활약을 합니다만 전투 후의 기록은 남겨지지 않고 있습니다. 창으로 적의 무장을 꿰어 들어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도저히 불가능하죠. 거의 100kg(갑옷까지)에 가까운 무게를 들어올리려면 창 자루가 못 버틸겁니다.
- 酒巻靱負 (사가미키 유키에)
- RPG에서 나오는 젊고 총명한 그런 보조 캐릭터입니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유격군을 맡아 결정적인 순간에 위기를 모면하는 정도의 활약만 나옵니다. 역시 전투 후의 기록은 전해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상대역도 살펴봐야겠죠?
중앙이 일본역사를 완전히 뒤바꿀 뻔한 이시다 미츠나리, 좌우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실한 가신 나츠카 마사이에(좌)와 오오타니 요시츠구(우)입니다.
石田三成 (이시다 미츠나리)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발탁되어 무명의 촌 소년에서 5봉행으로까지 출세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복사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의감과 재능이 워낙 뛰어났지만 히데요시의 술책이나 군사적 재능은 물려받지 못해서 무장파와 원수지간이 되었고, 히데요시의 사망 후에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의 실질적인 지휘관으로 참전하지만 패배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상을 열어주게 됩니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무장파의 은근한 견제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관동원정(호조가문 정벌)에서 아주 손쉬운(앞에만 가면 성문을 열어주는) 목표물로 전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만, 지나친 공명심때문에 오히려 전투를 벌이고 고전을 하게 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에 아주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 http://blog.daum.net/uesgi2003/3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최측근인 오봉행(관료직)에게는 영지를 거의 주지 않아서 사후에 이들이 히데요시 집안의 몰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가 225만석이었던 반면에 이시다 미츠나리의 영지는 15만 석에 불과해서 서군의 구심점이 되지 못했습니다.
大谷吉継 (오오타니 요시츠구)
소설과 영화에서 나오듯이 세 명 중 군사재능을 유일하게 갖춘 인물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맹활약을 하다가 서군의 몰락을 가져온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배반에 저주를 퍼부으며 자결했습니다. 오시죠 공략도 반대했듯이 세키가하라 전투도 반대했었지만 한센병으로 불구가 된 몸을 이끌고 그냥 친구를 위해 참전합니다. 영지는 5만 석에 불과했습니다.
- 長束正家 (나츠카 마사이에)
- 소설과 영화에서는 미츠나리보다 거만한 태도로 전투를 부른 도화선 역할을 합니다. 히데요시가 왜 중용했는 지가 의문일 정도인데, 실제로는 회계 능력이 뛰어나서 5봉행으로 중용되었고 세키가하라 전투에도 참전하려고 했지만 영지 5만 석의 병력으로는 별 도움이 안되고 전장으로 가는 길을 봉쇄당했습니다.
- 전투 후에 자결합니다.
소설과 영화의 무대가 된 오시죠(忍城) 현재 모습입니다.
당시에는 호수 중간에 있어서 떠있는 성이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호수를 모두 메웠고 지금은 성 일부와 미츠나리의 제방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오시죠는 高松城 (다카마츠죠)와 太田城 (오오타죠)과 함께 일본 전국시대 3대 수공전으로 꼽히는데, 히데요시가 오오타죠를 수공으로 공략하는 것을 지켜본 미츠나리가 오시죠도 수공으로 공략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럼 주요 장면과 특별영상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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