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역대급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 탁신 시위대인데요, 근 이십년간 태국은 탁신 때문에 시끄러웠습니다. 오늘은 이 기회에 탁신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DP분들께 설명해볼려고 합니다.
탁신은 간단히 말해 태국판 이명박입니다. 아주 성공한 이명박이죠. 탁신은 태국을 거의 사유화하는 데 성공하여 왔고, 태국 국왕과 지식인, 도시 중산층이 저항하고 있는 상황인데, 태국에도 묻지마 농촌 지지표가 있어서 십몇년째 투표만 하면 탁신이 이기고 있어서 이대로 계속 간다면 탁신이 태국을 삼키는 데 성공할 것 같습니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22t1872n10
탁신 친나왓은 본래 경찰 출신입니다. 중국계 태국인인 탁신은 태국 왕립경찰대학을 나와서 근무하다가 중령으로 예편하였습니다. 80년대에 컴퓨터 부품 사업을 하다가, 90년대에 들어서 휴대폰이 도입될 시기에 자신의 경찰 인맥을 총동원, 태국의 이동통신 사업 독점권을 얻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태국안에서 유일한 휴대폰 사업자!. 재벌로 급부상한 탁신은 여세를 몰아 컴퓨터 사업과 케이블TV사업도 석권하고 태국내 최대 재벌이 됩니다. 불과 십몇년만에 재벌로 등극한 빛나는 성공이었습니다.
1994년 탁신은 기존 정당의 영입제안을 받아 외무장관으로 들어간 후, 부총리도 해보더니, 급기야 자신을 위한 정당을 창당합니다. 타이 라크타이당(TRT-태국은 태국을 사랑한다 당)입니다. 그리고는 2001년 선심성 공약을 내걸어 태국 총선을 휩쓸고(하원 500석 중 264석 차지) 태국 총리가 됩니다. 이때부터 문제는 시작됩니다. 타이 말아먹는 ‘탁신 주식회사’(한겨레21) -2002년 기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0364정치인으로서 탁신을 비유하라면, 이명박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탁신은 자신이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펴겠다고 말합니다. 마을당 3천만원(100만바트) 지원, 전국민 의료보험 혜택(9백원(30바트)만 내면 의료혜택 받을 수 있다) 등의 공약을 내걸어 하원의석의 과반수(500석 중 264석)을 차지한 후, 중소 정당들을 흡수해 340석까지 몸을 부풀리고 탁신은 언론 장악을 시작합니다. 태클을 걸만한 독립언론사를 사들이고, 뉴스 편집의 자율권을 주장하는 언론인들은 해고합니다. (해고된 언론인들은 법원에서 해고무효 소송에 승리하지만, 탁신은 무시했습니다). 말안듣는 편집장 및 언론인 14명을 불법사찰하였습니다. 탁신을 비판한 외국계 언론사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는 특파원이 추방되었으며, 런던발 '이코노미스트'지는 판매금지가 되었습니다. 오직 탁신을 칭찬하는 기사들만이 나갑니다.
언론 장악 다음에는, 정부 장악과 군부 장악입니다. "'내가 한 10년은 총리를 더 하겠네 ' 라고 발언할 정도로 간이 커진 탁신은, 듣보잡 충성파를 장관으로 앉히고, 사업할 때 파트너였던 사람을 장관으로 앉힙니다. 언론과 지식인, 중산층 들은 국가가 사유화 되고 있다, 내각 구성이 그래서는 안된다며 반발하지만, 절대다수 농민들은 탁신의 선심 공약에 취해서 탁신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지지율 88%). 탁신은 군 인사에도 개입합니다. 임기가 남아있던 참모총장과 군 장성들을 잘라버리는 데, 통상적으로 태국 군 인사는 선임자가 후임자를 추천해놓고 떠나는 게 관행이었는 데, 선임자의 추천, 능력, 기수 등을 무시하고 자기에게 줄댄 사람들로 갈아치워 버렸습니다.
탁신은 또한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강력한 야당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라며, 일당독재를 선호하는 발언을 하고, 태국 남부 무슬림들이 경찰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유혈진압되어 85명 사망한 것에 대해 유감 표명은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습니다(완전 가카 판박이.)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운동가, 학자, 종교인, 민족주의자 등이 탁신 반대파가 되자, 탁신은 자신의 지지계층을 지식인으로부터 민중으로 바꿉니다. 판자촌 철거 연기, 농사용 가축 무상 지급, 농가부채 탕감, 낮은 세금 등을 내세웠고, 빈민과 저소득 농민들은 탁신에게 열광하였습니다. (탁신에게 진정성은 없을지라도) 일단 뭐 하나라도 던져주는 건 탁신밖에 없다 라고 농민과 도시 빈민 머릿속에 확고하게 박힌 것입니다. 탁신은 2005년 총선에서 하원 500석 중에서 377석을 휩씁니다.. 탁신, 부패 정치인인가 민중의 영웅인가http://news.mk.co.kr/v3/view.php?year=2010&no=573586그러고는 쿠데타로 쫓겨납니다.
탁신이 쫓겨난 데에는, 그의 부패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탁신은 자신을 재벌로 만들어준 국내 독점 이동통신회사를 외국에 팔아넘겼습니다. 친 코퍼레이션 주식 49.6%를 2006년 싱가포르의 투자회사 테마섹 홀딩스에게 팔았는 데, 매각대금 18억 달러를 받으면서 세금을 한푼도 안냈습니다. (본래 외국계 회사가 태국 통신회사의 25%이상 주식을 가질 수 없는 데, 법을 개정하여서 팔아버렸습니다). 또한 땅 개발 정보를 빼돌려, 국유지를 아내 명의로 사서 두배이상 시세차익을 챙겼고, 국영 복권사업에서 자금을 빼돌렸습니다. 조세도피처 버진 아일랜드에 유령회사도 설립해놓았습니다. 이런 탁신의 부패 스캔들로 태국내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청백리로 유명한 잠롱 전 태국시장도 반탁신 시위에 참여합니다. 시위대가 10만명을 넘어서자, 탁신은 의회를 조기해산, 총선을 실시합니다. 이 총선은 야당들이 참여를 거부한 상태에서, 탁신의 정당만 참여하여 혼자 득표하고, 혼자서 다시 총리가 됩니다. 상당히 뻔뻔한 놈이지요. -- 이에 국왕은 투표로는 탁신을 못밀어내겠다 는 판단하에 친위쿠데타를 일으킵니다.탁신 부패·사회혼란에 지배층‘폭발’http://www.chosun.com/international/news/200609/200609200644.html태국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국왕의 실질 파워가 매우 강합니다. 서구 열강들이 아시아를 침략할 당시, 태국이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국왕 일가의 절묘한 줄타기 외교 덕분이었다며, 국왕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태국 왕가는 막대한 재산과 권위를 확보하고 있으며-국왕모독죄는 15년, 태국내에서 국왕 비판은 금기사항, 총리도 국왕을 알현할 때는 무릎꿇고 알현-, 정치가 맘대로 안흘러가면 주기적(?)으로 국왕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싹쓸이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이 쿠데타가 17번째였습니다. 벼라별 일이 많은 태국 정치에서도, 탁신 정도로 나라를 통채로 먹어삼키는 데 성공한 케이스는 드물었기에 국왕이 이러다 탁신 일가에게 권력이 넘어갈 수도 있다 라고 위기감을 느낀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 국왕 푸미폰은 고령이고(85세), 왕세자는 한량으로 유명합니다.;;해외 순방중에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은, 그러나 빼돌린 재산으로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시티를 사서 구단주로 취임하여 취미생활을 즐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태국내에 남아있는 일가친척들을 동원하여 태국 복귀를 꿈꿉니다. 탁신의 둘째딸이 태국 부자순위 1위, 아내가 2위, 장남이 4위, 막내딸은 28위, 여동생은 65위... (2004년 기준) 이렇게 해먹었기 때문에 돈은 충분했습니다. (탁신은 공식 재산만 국왕 일가와 엇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었는 데, 2010년 태국 법원은 탁신 재산의 60%가량을 몰수하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탁신 총리 둘째딸이 태국 '갑부 랭킹' 1위http://news.sportsseoul.com/read/life/137499.htm?ArticleV=old태국 헌법재판소는 2006년 총선을 무효로 판결하였습니다. 탁신 정당 혼자서 입후보하여 선거 한 것은 무효라는 것입니다. 또한 탁신과 당간부 111명의 정치 참여를 5년간 금지하고, 탁신의 타이라크타이당에 정당 해산명령을 내립니다. 정당 해산명령이 내려지자, 탁신 계 정치인들은 '헤쳐모여' 끝에 피플파워(팔랑 프랑샤촌, PPP)라는 정당을 급조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총선에서 묻지마 탁신 지지표에 힘입어 승리합니다.타이 4개 정당 해산명령…정국 ‘혼미’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213167.html부패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탁신 추종세력(PPP), 총선 승리-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6557&code=117탁신은 쫓겨났지만 그가 뿌린 선심성 공약의 힘은 컸습니다. 태국 국민의 60%는 농민이고, 저소득, 저교육 농민들에게 있어서 태국 정치는 국왕과 지식인들, 군 엘리트들이 해먹는 그들만의 리그였습니다. 쿠데타가 열여섯번 일어나도 그 놈이 그 놈이고, 바뀌는 것은 없는 데 돈이라도 뿌린 탁신이 제일 괜찮았다는 것입니다 . 국민의 피 빨아먹기-독점 통신사업과 국유지 투기-로 재벌이 된 탁신을 태국 저소득층이 제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넌센스입니다.
그러나 제 버릇 누구 못준다고, 탁신의 정당 PPP는 대규모로 돈으로 유권자를 매수한 것으로 적발되어, 2008년 헌법재판소는 PPP에도 정당해산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PPP당의 부총재이자 태국 하원의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무효 시킵니다.태국 집권당(PPP) 해산 판결http://www.ytn.co.kr/_ln/0104_200812021506374454탁신은 또 이름을 바꿔 '푸어 타이당'을 출범시킵니다. 그리고 또 선거 승리합니다. =_=
탁신이 쫓겨난후 이어진 5번의 총선에서 탁신의 정당은 매번 승리했습니다. 탁신의 농촌 지지표는 콘크리트처럼 흔들릴 줄을 몰랐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태국 국민은 탁신 지지파와 탁신 반대파로 분명하게 갈렸으며, 사실 그들의 소득수준과 교육정도, 지역 기반마저도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존왕·기득권파’ 대 ‘부패·탁신파’ 갈등 최고조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325038.html
탁신을 지지하는 계층은 주로 농민과 도시빈민입니다. 이들은 노란색 국왕파와 스스로를 구별하기 위해 빨간 옷을 입기 시작했으며(레드 셔츠), 그래도 우리를 생각해주는 정치인은 탁신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국민 의료보험 & 농가부채 탕감 해준 게 컸습니다. 국왕에 대해 명시적으로 뭐라고는 못해도 반감 가지고 있던 사람들 또한 이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골때리는 것은 좌파 운동가들이 신자유주의자인 탁신을 지지한다는 점인데, 국왕과 군부 기득권을 쳐내기 위해서는 일단 탁신과 같은 배를 타겠다는 것입니다. =_=a 이들은 명분상으로는 민주주의를 주장합니다. 국왕이 뒤에서 군부를 움직여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상원을 지배하는 것은 반민주적이라며, 투표로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돈으로 시골 농민표를 매수하는 것은 아이러니... 탁신 본인뿐만이 아니라 탁신 정당 국회의원들이 대다수 지역 기업가 출신으로 돈으로 표를 매수하는 것이 공공연한 이야기입니다. 1인당수백 바트 쥐어주면 표로 찍어준다는..). 지역적 기반으로는 북부입니다. 탁신은 북부 출신인데, 탁신의 임기동안 가난한 태국 북부지방의 평균소득이 40% 올라갔다고 합니다. 북부는 탁신이 쫓겨난 다음에도 골수 탁신 지지층으로 남아, 선거에서 80%에 가까운 몰표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탁신이 능력있는 정치인이며, 탁신의 지도아래 경제성장률도 좋았었고, 97년 외환위기도 버텨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탁신을 싫어하는 계층은 주로 도시민들, 중산층, 지식인, 군부, 국왕파, 민족주의자들 입니다. 이들은 국왕을 상징하는 노란색(옐로 셔츠)을 즐겨 입습니다. 이들 입장에서 보면 탁신은 부패한 기업가로, 국부를 빼돌려 재산을 축재한 후, 못배운 이들에게 돈을 뿌려 표를 매수하는 정치인입니다. 선심성 정책으로 농민들을 선동하는 포퓰리스트이죠.
옐로 셔츠 시위대와 레드 셔츠 시위대는 2008, 2010년에도 붙었었는 데, 태국 헌법재판소가 탁신의 재산 14억 달러를 몰수한다고 판결하자, 친탁신 시위대 레드셔츠(UDD)가 반발 시위를 펼쳤었습니다. 그러면서 친탁신 vs 반탁신으로 시위가 맞붙었는 데, 시위장소인 수도 방콕이 도시인지라, 도시 중산층이 기반인 반탁신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러자 쪽수에서 밀린 탁신은 시골에 버스, 트럭들을 보내어 대량으로 시골 농민들을 데려와 맞불작전을 펼쳤습니다. 일당을 주고 동원했다는 뒷얘기가 있죠. (이 또한 가카를 연상케하는...)
탁신이라고 해서 두들겨 맞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탁신은 먼저 자신의 힘이 번번히 꺽이고 있는 것은 군부와 상류층 때문이라고 보고, 국회 상원을 장악할려고 시도중입니다. 상원의원은 총리가 제청하고 국왕이 임명하며, 과반수 이상이 군 장성 출신이거나 경찰 출신입니다. 국왕이 군경을 지배하던 루트이던 이것을 먹기 위하여, 상원도 임명직이 아니라 국민이 민주주의 직접 선거로 선출하도록 헌법을 개정하자고 탁신이 들고 나왔습니다. 선거로 하면, 농촌 지지표가 압도적인 자신이 상원도 장악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입니다.
자신이 상, 하원, 총리직을 장악한 채 십년이고 그 이상이고 버티면, 결국은 군 장교들도 진급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지지할 수 밖에 없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태국 총리 잉랏 친나왓(탁신의 여동생, 위에서 언급했던 태국 부자순위 65위)은 탁신이 태국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치인 사면법안을 내놓았습니다. 탁신을 포함하여 2004년 이후 정치관련범을 모두 일괄사면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지금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반탁신 시위의 원인입니다. 반탁신 시위대는 탁신 사면법안도, 헌법개정안도 무효이고, 정당해산해야 되며, 잉랏 총리도 물러나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옐로 셔츠 시위대가 아닌 사람은 무채색 셔츠를 입고 태국 국기를 들고 시위에 참가중)
이번 시위 와중에 헌법재판소는 열흘 전(20일) 탁신의 헌법개정안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습니다. 덕분에 시위대가 기세등등하였으나, 며칠전 잉랏 총리 불신임안은 국회에서 부결되어(28일), 혼란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오늘자 보도에 따르면 이번 시위로 지금까지 사망자 5명이며,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시위대는 총리 공관 점령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