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영화는 일반적인 평을 따라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리고 망하는 영화는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평이 안 좋으니 피하라고 권해 놓고는 저는 정작 내려가기 직전에 보러간 영화들이 있습니다. 폼페이, 노아, 그리고 300:제국의 부활까지...
그냥 망하는 영화는 그럴 이유가 있다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합니다. 폼페이는 화산터지는 장면에서 나왔고, 노아도 일행이 아니었으면 나왔을 겁니다. 제국의 부활은 게임영상처럼 만들어 놓은 마라톤 장면부터 나오고 싶더군요. 300은 미국 출장길에 보고 반해서 본사직원 단체관람시켰고 집에 돌아와서고 몇 차례 더 보고 블루레이까지 구입했습니다. 그러니 취향차이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장르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훨씬 재미있더군요.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공산주의와 영토를 확장하던 중에 참패를 많이도 당했는데, 폴란드에서도 그랬고 그보다 20년 뒤인 핀란드에서도 참패를 당했습니다. 나중에 숫자로 밀어붙여서 핀란드를 휴전협상에 끌어내기는 했지만, 폴란드가 무너졌었다면 공산주의와의 2차대전이 벌어졌을 것이고, 핀란드가 무너졌었다면 독일이 동부전선을 포기하고 영국을 침공했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핀란드가 보여준 분전 그리고 소련군의 황당한 전투력때문에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는 계기가 됩니다. 역사에서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만.
이번 이야기는 약소국 핀란드가 소련의 침공을 무산시킨, 겨울전투의 전설 수오무살미 전투 이야기입니다. 제가 지금 표트르 대제가 핀란드 연안을 합병하는 부분을 번역하고 있어서 생각난 김에 핀란드의 겨울전투 이야기를 골라봤습니다.
핀란드의 기적, 수오무살미Suomussalmi 전투
대부분의 전사가들은 1939년 11월 30일에 벌어진 소련의 핀란드 침공 그리고 겨울전투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상당히 유명한 저서 중 일부는 아예 겨울전투 부분을 다루지 않기도 한다.
그렇지만 작은 나라 핀란드의 분전은 기적이자 분명한 전사기록이다. 다빗이 골리앗을 쓰러트린 전쟁이었다. 핀란드군은 침략자에게 수모를 안겨주었고, 결국 국력의 차이로 물러날 때까지 적군에게 330,000명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핀란드 제 9사단 스키부대가 소련 제44 소총사단의 길목을 차단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데이빗 펜틀란트David Pentland의 Frozen Hell, Suomussalmi, Finland 1940입니다. 옆에는 격파된 T-28 다포탑 전차가 있군요.
아마 핀란드가 노획한 2대의 T-28 전차 중 한 대일 겁니다. 전면의 기관총은 철거되었군요. 당시 전차는 참호를 돌파하는 움직이는 포대역할이었기 때문에 포탑을 여러 개 장착한 다포탑 전차가 2차대전 초기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화력을 높이고 무거워진 차체의 기동력을 살려야 했기 때문에 장갑이 취약했고 더 빠른 소형 전차나 대전차포에 큰 약점을 보였습니다.
겨울전쟁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핀란드 경보병이 완전무장한 소련의 기계화사단 2개를 야전에서 궤멸시킨 수오무살미 전투일 것이다. 이 전투는 크레테나 바스토뉴 전투보다 훨씬 대단한 전투였으며 20세기 역사를 만든 주요 전투 중 하나였다.
러시아는 늘 발트해 통로를 최우선 목표로 생각했다. 1930년대 말, 유럽에 전운이 감돌았을 때에 요세프 스탈린과 볼세비키 지도자는 발트해 연안국의 움직임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의 순간에 핀란드가 어떤 판단을 할 것인지가 궁금했다. 소련과 독일 중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중립을 지킬 것인지? 스탈린은 반드시 이 의문을 해결해야 했다.
1937년부터, 핀란드와 소련은 외교협상을 벌여왔지만 두 개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소련은 핀란드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독일의 확장의지는 더욱 뚜렷해졌다. 거의 1,000년 동안 독일은 동쪽으로의 확장을 시도해왔다.
더구나 핀란드가 1918년에 공산주의자에게 승리를 거두고 독립한 20주년 기념식에 독일의 군사사절단이 참석하면서 소련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1938년부터 스탈린은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 원수를 비롯한 핀란드 지도자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중립을 표방한 핀란드는 소련과 협력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참혹한 결과를 각오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당황한 만네르하임과 내각은 외교적 해결을 원했다. 그렇지만 굶주린 늑대는 다시 고기를 원할 것이 분명했다.
1939년 여름부터 상황이 급전개되기 시작했다. 먼저 스탈린은 숙적인 나치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어서 전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히틀러는 9월 1일에 폴란드를 침공했고 몇 주 후에 스탈린은 발트해 연안국을 침공해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를 집어 삼켜서 발트해 남부연안을 확보했다. 이제 유럽은 다시 전쟁에 돌입했다.
이제 스탈린은 핀란드만 굴복시키면 발트해 정책을 완성하게 된다. 대단한 선전책동이 핀란드인의 눈과 귀를 괴롭혔다. 정치위원 안드레이 알렉산드로비치 즈다놉은 "레닌그라드에서 세계를 바라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모험을 감행하거나 다른 나라를 불러 들이는 작은 나라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이 두렵지 않다. 적군을 동원해서 조국을 지킬 것이다"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핀란드를 노린 협박이었다.
그 해 10월, 스탈린은 핀란드에게 전략요충지 카렐리야Karelia 지협을 북극 근처의 황폐한 툰드라 지역과 교환하자며 마지막 잠금장치를 풀었다. 최대 70km의 영토를 받아내서 레닌그라드(현 상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2의 수도)에 충분한 완충지대를 만들고 싶었다. 핀란드 헬싱키는 공포에 떨었지만 이 협박을 거부했다. 11월 중순, 소련 외무상과 스탈린은 핀란드가 고의로 충돌을 야기시키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제 전쟁만 남았다.
러시아는 원래 내륙국가였지만 표트르 대제때부터 남쪽 흑해와 북쪽 발트해 진출을 노렸고 당시 스웨덴의 영토였던 카렐리야 지협과 발트해 연안국을 합병했습니다. 상페테르부르크(지도에서는 영어식 발음)은 표트르 대제가 서유럽으로의 확장을 꿈꾸며 황무지를 개발한 도시로 모스크바 다음으로 군사, 정치, 경제와 문화 면에서 중요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11월 15일, 레닌그라드 군사구 사령관 키릴 메레츠콥Kirill Meretskov 장군은 크레믈린으로 호출되어 그 달 말까지 핀란드를 공격해서 카렐리야 지협을 확보하고 핀란드 만으로 향하는 통로를 열라는 명령을 받았다. 핀란드는 작은 나라였고 적군의 새 기갑군과 전술은 극동 아시아의 칼킨 골Khalkin Gol에서 일본군에 대승을 거뒀다. 핀란드 정도면 산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니콜라이 니콥바에비치 보로놉 포병사령관은 생각이 좀 달랐다. 그는 단지 12일 후에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3개월을 준비해도 부족할텐데..."
11월 말일, 핀란드가 전쟁을 유발시켰다고 비난하면서 소련은 1934년의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10월 30일 오전 6:50시, 적군이 국경을 넘었다. 600,000명의 보병, 2,000대의 전차와 1,000기의 전투기가 포격의 엄호를 받으며 250,000명의 핀란드군을 공격했다. 이렇게 겨울전쟁이 시작되었다.
소련의 계획은 간단했다. 남쪽에서는, 제7군이 핀란드 방어선을 일소하고 라도가Ladoga 호수와 핀란드만 사이의 만네르하임 방어선을 관통하고 핀란드 제2의 도시 비보르크Vyborg를 점령하려고 했다.
제8군은 라도가 호수 우익에서 우회한 후에 북쪽에서 카렐리야 지협을 포위하고, 훨씬 북쪽의 병력은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핀란드 예비군 투입을 가로 막기로 했다. 그리고 핀란드 영토에서 가장 폭이 좁은 중앙에서는 제9군이 직선으로 핀오울루Oulu 항까지 관통해서 핀란드를 반으로 가르기로 했다.
그리고 미하일 두카놉Mikhail Dukhnov의 기습군은 수오무살미라는 인구 4,000명의 지역으로 향했다.
어울리지 않는 핑크색 화살표가 오늘의 전장인 수오무살미입니다.
시작부터 소련의 계획은 어그러졌다. 헬싱키 폭격으로 민간인이 죽자 아직 2차대전의 총력전을 경험하지 못했던 국제사회는 소련을 맹비난했다. 그리고 핀란드 국민이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게 만들었다. 원래 계획은 핀란드 공산당이 환영깃발을 흔들며 꼭두각시 정부를 수립해서 내분을 일으키려고 했었는데 첫 날부터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헬싱키가 폭격당하자, 심지어 공산당원까지 코민테른을 버리고 핀란드 정부를 선택했다.
헬싱키 시민이 방공호에 대피해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의 폭격과 수준이 달라서 표정에 여유가 있습니다.
소련군은 카렐리야 지협의 140km 전선에서 "우라!"를 외치면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 많은 숫자가 어깨를 부딪치며 다가오자, 핀란드 병사는 심상치 않은 말을 남겼다. "소련군이 너무 많군! 저 놈들을 모두 어디에 뭍지?" 러시아군이 만네르하임 방어선에 가까워질수록 계획에는 없던 일들이 벌어졌다.
먼저 핀란드 국민은 그들을 해방자로 맞이하며 반기지 않았고 반대로 격렬한 저항을 했다. 그리고는 조금씩 물러나며 계속 소련군을 기습공격했다.
그리고 너무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소련군이 밀집해있었다. 폭설로 제7군의 9개 사단의 전진은 늘어지기 시작했다. 숲에서는 교통통제 요원만 먼저 저격했다. 포병부대는 보병부대와 많은 거리가 벌어졌고 장갑차량이 막힌 도로를 우회하려고 조금만 벗어나면 진흙과 얼음 속에 주저 앉았다. 후방에서는 핀란드 스키부대가 혼란을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부비트랩이 없는 곳이 없었다. 쓰러진 나무, 오무막, 다리는 거의 모두 폭발물이나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심지어 병사들이 용변을 볼만한 곳도 지뢰가 있었다. 기세좋게 시작된 전진은 속절없이 늘어졌고 그럴수록 피해는 쌓여갔다.
핀란드군이 수빌라티Suvilathi 발전소를 떠나며 폭파하는 장면입니다.
그 무엇보다 날씨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2월 수은주는 영하 30도로 내려갔고 겨울전투의 지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부상병은 피가 바로 얼어붙었기 때문에 지혈시킬 필요가 없었다. 급격한 체력저하때문에 식량배급도 2배로 늘려야했다. 몰핀주사는 얼어붙지 않도록 입에 물고 있어야 했다. 금속에 살짝만 스쳐도 피부가 벗겨졌다. 차량의 시동을 계속 걸어두지 않으면 오일도 얼었고 방아쇠울의 그리스도 얼어서 총을 쏠 수 없었다. 전차의 궤도도 땅에 얼어붙어서 전투가 벌어져도 움직일 수 없었다.
T-26 전차와 T-20 장갑트랙터가 무질서하게 늘어선 모습입니다. 위에 눈이 쌓인 것을 보니 이대로 밤을 보낸 모양입니다. 한 눈에도 소련군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핀란드군은 소련군의 전진을 '유랑 동물원'이나 '이웃사람들'이라고 담담하게 불렀다. 대열에서 낙오한 병사는 죽었고 병사들은 전투보다 보급창의 보급로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적군은 도로만 이용해서 이동했기 때문에 핀란드군은 스키를 타고 측면이나 배후에 갑자기 나타나서 기관단총을 휘두르고는 소련군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도로에 트럭 3~4대를 올려 놓고 불을 지르면, 소련군 장갑차 대열은 마치 1,930년 전에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로마군단이 그랬던 것처럼 밀집해 있었기 때문에 쉬운 목표물이 되었다.
핀란드군은 반대로 좋은 교훈을 얻었다. 소련군이 지나치게 전투교본에 집착하고 있어서 전차를 일단 보병과 분리만 시키면 너무나도 손쉬운 목표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개전 5일 만에, 후고 오스테르만Osterman 장군은 최소한 80대의 전차를 파괴했다고 보고했고, 대전차부대를 대대단위로 승격시켰다. 개전 며칠 만에 핀란드군은 훌륭한 전차사냥꾼이 되었다.
당시 T-26을 비롯한 러시아 전차는 리벳과 용접이 조악하게 처리되어서 의외로 화염병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보병의 지원이 없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전차는 화염병 세례를 받았고 전투실이나 엔진공간에 불이 옮겨붙기 쉬웠습니다. 특히 뒤편의 엔진룸은 가솔린을 사용했고 엔진룸 옆에 기름통이 있었기 때문에 화염병 공격에 취약했습니다.
국영주류회사가 전차사냥 지원에 나섰다. 첫 번째 대전차 파이프지뢰가 적중했지만 공격적인 핀란드인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들은 좀 더 공격적인 대전차 무기가 필요했다. 12월 첫 주에 화염병이 만들어졌다.
특수 대전차팀은 도로가의 개인참호를 잘 위장하고 전차의 진동을 기다렸다. 전차가 부주의하게 다가오면 화력지원팀이 보병에게 총알세례를 퍼부어서 일단 엄폐물로 도망가게 만들고 대전차팀은 알콜, 타르, 레진, 휘발류를 섞은 폭탄주 병을 전차 엔진데크에 던졌다. 소련 보병이 모두 도망갔다면, 대전차팀은 아예 전차에 올라가 해치를 열고 화염병을 전차 안에 던져넣었다.
카렐리야 일대에서 소련군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한 전차사냥꾼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매일 소련놈을 구웠다. 아주 확실하게!" 1939년 말이 되자, 핀란드군은 70,000개 이상의 신종 대전차 화염병을 만들어 보급했다.
핀란드가 만든 전쟁대작 겨울전쟁의 한 장면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핀란드 혼자서 소련을 상대하게 내버려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가장 가까운 스웨덴과 노르웨이조차 유럽 강대국의 전장이 되는 것을 우려해서 다른 국가의 병력이나 물품을 통과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왜 우리 포는 안쏘는거야?"라는 물음에 "스웨덴이 포탄을 잘못 팔았어"라는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소련군의 포격이 자멸하는 황당한 에피소드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이 동영상은 특히 당시 전차사냥꾼의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분은 좀 거북스러운 장면이 나올 수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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