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의 동부전선의 몰락 (4) - 데미얀스크(Demyansk)

데미얀스크(Demyansk)

레닌그라드에서 남쪽으로 약 230km 정도 떨어진, 일멘(Ilmen) 호수와 셀리게르(Seliger) 호수 사이에는 버섯모양으로 길게 뻗은 이상한 형태의 전선을 독일군이 유지하고 있었다. 데미얀스크를 중심으로 러시아군 전선 안으로 길게 들어가 폭이 11km 밖에 안되는 버섯의 줄기부분은 독일 제2 군 군단의 작전지역으로 12개 사단, 약 100,000명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이상한 형태의 전선이 만들어진 것일까?

데미얀스크 일대의 전선은, 1941년 독일 2군 군단(II Army Corps, 군 휘하의 몇 개 사단으로 구성)이 발다이(Valday) 고지까지 진출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사이의 철로를 끊으면서 만들어졌다. 다시 모스크바로 진격하기에 좋은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그 동안 이런 기형적인 형태가 계속 유지된 것이다.

그림 설명: 데미얀스크의 버섯모양의 전선은 러시아 영토 깊숙이 뻗어있습니다. 히틀러는 르제프 공격에 나설 때에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하고 이 전선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러시아 최고사령부는 데미얀스크 전선이 모스크바를 대놓고 노리는 전선이었기 때문에 1941-42 겨울 대공세에서 발다이 고지에 북부전력의 모든 것을 투입했었다. 러시아군은 레닌그라드 해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멘(Ilmen) 호수와 셀리게르(Seliger) 호수 사이의 독일 수비선을 돌파하려고 시도했다.

독일군은 무지막지한 러시아군의 대공세를 막아냈지만 1942년 2월 8일, 결국 포위당해 공군의 공수에 의존해왔으며, 세계 역사상 최초로 독일 공군은 14,500 회에 이르는 대규모 공수작전을 성공시켰다.

그림 설명: 공수투하된 보급품을 회수하는 독일군입니다. 여기서는 썰매까지 동원해서 즐거운 작업으로 보입니다만, 수송기들이 대공포 망에 노출되어 있어서 정확한 지점에 떨어뜨리지 못해 많은 양이 적의 손에 넘어가기 쉽고, 회수작업을 노리는 저격수가 당연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쟁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이던, 중간지역에 떨어진 보급품을 목숨걸고 찾아오다가 저격수에 죽는 그런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렇게 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포위망을 뚫은 후에 본국의 국민들을 위해 연출된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1942년 말, 외부에서의 구원과 내부에서의 반격이 성공해 로바트(Lovat) 강의 독일군 본대와 다시 연결된다. 강 위에 다리가 놓여져 버섯 모양의 전선이 만들어졌지만 파이프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후방과 연결된 통로는 너무 좁고 길었다. 그래도 2군 군단은 버텨내며 두 호수 사이를 돌파하려는 5개 군 규모의 러시아군의 공세를 막아냈다. 만약 러시아군이 파이프를 관통한다면 100,000명에 이르는 독일군이 전멸위기에 몰리게 된다.

 

러시아 최고사령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1942년 겨울 대공세의 목표 중 하나로 데미얀스크 전선을 선택했다. 스탈린그라드가 독일군의 남부전선에 큰 구멍을 낸 것처럼, 데미얀스크도 북부집단군을 한 번에 밀어낼 최고의 작전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엄청난 피해를 무릅쓰고 볼가 강을 돌파해 독일 제6 군(약 240,0000명)을 포위해 전멸시켰지만 발다이 고지에서는 러시아군이 계획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티모센코(Timoshenko) 원수는 3개 군을 동원해 제11, 27군은 일멘 호수 북부에서, 제1 강습군은 남쪽에서 데미얀스크 전선의 파이프를 끊으려고 했다. 티모센코는 북쪽의 독일군 3개 사단(제8 엽병Jager사단, 제81과 290 보병사단)에 대해 13개 소총사단, 9개 소총여단과 400대의 전차를 동원했고, 남쪽의 단 1개 사단(라인랜드 베스트팔리아 제126 보병사단)에 대해 7개 소총사단, 4개 소총여단과 150대의 전차를 동원했기 때문에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북과 남 양방향에서 5km씩만 전진해주면 파이프는 절단되고 100,000명이라는 엄청난 전과가 자루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대공세는, 11월 28일에 엄청난 포격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다음에는 융단폭격이 이어져 저공비행 폭격기들이 독일군 진지 위를 날아다녔다. 데미얀스크 전선에서는 러시아 공군이 제공권을 장악해 독일공군의 방해 없이 마음대로 출격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독일군은 기갑부대가 전혀 없었다. 제8 기갑사단이 비테브스크(Vitebsk)로 전출간 후에는, 제16 군은 제203 기갑연대의 돌격포와 몇 개의 전차중대만 있었고 그나마 남부의 스트라야 루사(Staraya Russa) 전투를 지원하고 있어서 550대의 러시아 전차를 막을 장애물이라고는 전차호, 철조망과 지뢰가 전부였다.

연기와 흙먼지, 화염과 섬광 속에서 T-34가 접근해왔다. 그 옆에는 보병이 “우라(Urra)”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독일놈들에게 돌격! 참호 몇 개만 점령하면 이 전투는 끝난다” 정치위원이 러시아군 중대를 내몰았다. 공격 시작 몇 시간 동안은 북부전선 몇 군데가 러시아군에게 점령당했고 티멘센코는 예비군을 그 틈으로 전개시켰다.

파이프 안의 전선을 책임지고 있던 횐(Hohne) 소장은 공병, 연락병 심지어 운전병까지 투입해 러시아군을 막았고 제203 기갑연대가 스타라야 루소에서 중대 단위로 급하게 투입되어 구멍 난 곳을 막았지만 결정적으로 러시아군의 전력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데미얀스크의 제2 군단도 병으로 자리를 비운 군단장을 대신해 라욱스(Laux) 소장이 마지막 예비병력까지 긁어 모아 파이프 방어에 나섰다. 공장과 보급창고의 인원까지 모두 동원했지만 전력이 너무 약해 도움이 거의 안되었다.

결국 부근의 10군단으로 구원요청이 이어졌지만 10군단도 스타라야 루소 전투에 전병력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시 제16 군으로 구원 임무가 전달되었다. 16 군 중장 부쉬(Busch)는 라욱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금 전선에서 단 한 개의 대대도 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네”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집단군(Army Group)은? 집단군도 예비군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라도가 호수의 첫 번째 위기를 구원하기 위해 잠시 동원되었던 만슈타인(Manstein)의 제17 군은 이미 남부로 되돌아 간 상태였다.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17 군의 마지막 병사까지 모조리 전출시킨 것이다. 이처럼 모든 전선이 불타고 있었다.

 

발다이 고지를 지키던 사단은 자신의 힘만으로 방어해야 했다. 대대 병력이 사단급 공격을 막아야 할 정도로 전력의 차이가 심한데다가 대규모 포격과 폭격으로 거의 모든 기관총 참호가 파괴되고 단 한 문의 대전차포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독일군이 아무리 뛰어난 용기와 정신력을 자랑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티멘센코는 압도적인 화력을 이용해 하루에 최대 1km까지 전선을 안으로 밀어붙였다.

발다이 수비군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북부집단군은 모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12월이 되자, 퀼러(Kuchler) 원수는 라도가 호수를 따라 얕게 전개되어 있던 제18 군의 3개 사단을 데미얀스크 전선 안으로 투입한다. 그는 핀란드로 보내 제20 산악군에 합류시킬 예정이었던 제28  엽병사단의 전출도 취소시킨다.

3개 사단(제58, 225 보병사단과 라인랜드-베스트팔리아 제245 보병사단)을 데미얀스크 전선에 투입한 것은 가장 필요로 할 때에 내려진 올바른 결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5주 후에 있을 러시아군의 라도가 호수 2차 공격에서 이 정도의 병력은 전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42년 가을부터는 모든 전선에서 “너무 적은 병력으로 그나마도 뒤늦게(Too little, Too late)”라는 미봉책이 이어지면서 동부전선은 궤멸되기 시작하는데도, 히틀러는 점령한 땅은 단 한치라도 내주지 않겠다는 자신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있었다. 그는 미래에 있을 반격에 도움이 되는 최전선은 어떻게 해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오판을 하고 있었다. 

급하게 투입된 3개 사단의 대대와 연대는 도착하는 대로 트럭이나 도보로 전선으로 들어갔다. 가장 큰 압박을 받고 있던 횐 사단의 북쪽 전선은 제8 엽병사단과 실렌시아 제81 보병사단이 지키고 있었는데, 두 사단은 포위와 탈출을 거듭하면서 남쪽으로 이동했다. 12월 17일이 되자, 81 보병사단의 제161과 174 척탄병연대는 겨우 310명의 병사만 살아남아 있었을 정도였지만, 대전차포도 없던 두 사단은 170대의 러시아군 전차를 파괴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81 보병사단은 17일 제225 보병사단의 구원을 받았고 제376 척탄병연대는 18대의 전차를 사냥했다.

그림 설명: 1942년 11월 28일부터 1943년 2월 중순까지, 러시아 티멘센코 원수는 데미얀스크의 좁은 회랑을 절단하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합니다.  

데미얀스크 남쪽 전선에서는 북쪽과 달리 러시아군이 너무 머뭇거린 덕분에 전선이 크게 위협받지 않고 있었다. 위기에 몰릴 때마다 독일군은 전선을 축소해 병력을 집중시키는 전술로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남쪽 전선이 안정화되면서 북쪽 전선에 예비 병력을 모두 투입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군의 첫 번째 공세는 실패하게 된다. 12월 4일, 남쪽 전선에 북서독일 제58 보병사단의 209 척탄병연대와 정찰대대가 증원되어 다시 한 번 러시아 전차공격이 실패한다. 제58 사단과 126 보병사단은 공격해온 러시아군을 완전히 밀어내고 전선을 다시 정렬해 남쪽의 상황을 모두 정리한다.

화가 난 티멘센코는 전차와 보병을 동원해 로시노(Rosino)를 공격하지만 치열한 전투 끝에 물러나면서 일차 공세가 끝난다. 기적과도 같은 전투였다. 러시아군이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선택한 몇 개의 지점에 집중시켰는데도 독일군을 포위하기는 커녕 전선을 밀어내지도 못했다. 독일군이 용맹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독일군의 진격이 멈춰있는 동안, 진지는 독일 특유의 과학과 기술로 요새화되었고, 크게 부족했던 대공포, 전차엽병, 야포, 돌격포를 매우 효과적으로 운용했다. 장교, 하사관과 일반병의 협력도 그 어느 때보다 조화를 이뤘다. 그리고 사령관 라욱스와 횐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면서도 단호한 결정을 내렸기에 이런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비교도 안 되는 전력으로 독일군이 어떤 전투를 벌였는지 로시노 부근에서 활약한 돌격포 두 대의 일화를 한 번 보도록 하자. 단포신의 3호 돌격포는 21살의 나우만(Naumann) 하사가, 장포신의 돌격포는 리스(Riss) 하사가 지휘를 하며 도로 양쪽으로 나란히 주행하고 있던 오전 9시 30분, 간헐적인 박격포 포격을 빼고는 아주 조용한 아침이었다. 러시아군은 10시부터 규칙적으로 공격을 해왔기 때문에 잠시 후면 엄청난 포화가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해치를 잠궈”

 

그림 설명: 여기의 전황과는 거리가 먼 장면이지만 3호전차와 T-34의 대결이 잘 그려진 만화라 옮겨봅니다. 

클릭하면 자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개전초기의 3호전차는 37mm의 빈약한 무장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가 50mm와 철갑탄으로 무장을 크게 강화했습니다만, T-34의 전면장갑을 뚫으려면 무리해서 근거리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 만화에서처럼 어설픈 거리에서는 거꾸로 T-34에게 당하기 쉽상이었는데, 독일 전차병의 경험과 자질, 그리고 팀플레이로 그나마 균형있는 전투를 벌일 수 있었습니다. 

간단하게 대사를 요약하면

만화 1: 조용하네.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가 안되었어.

경보. 놈들의 무전통신이 빗발칩니다. 

만화 2: 잡았다! 어라? 뭐야?(포탄이 전부 튕겨나가서)

전부 후퇴합시다.

병신같은 놈. 좀 더 접근한다.

만화 3: 제1 소대 숨어있는 대전차포 사냥하고, 제2/3 소대는 돌려서 적전차 공격한다.

600m까지 접근한다. 돌격!

만화 4: 임마 정신차려. 이 거리에서는 전면장갑 기관총구를 노려야 해!

만화 5: 만세! 

후속전차 없음

마지막 대사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한 시간 동안은 전차 안에서 기다리면서 직격탄이 맞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전부였다. 전차 부근에 포탄이 떨어지면서 돌 조각들이 튀어 장갑에 맞는 소리가 대단했다. 갑자기 정적이 이어졌다. 나우만은 포탑 해

치를 열고 밖을 내다봤는데 아직 남아있는 포연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21살이지만 경험이 풍부한 

그는 직감으로 수 백 미터 앞의 숲에 뭔가가 있다는 위험을 느꼈다. 아마도 러시아군이 공격에 나선다면 거기로 나올 것으로 생각되었다.

두 대의 돌격포는 사냥꾼처럼 노리고 있었다. 이미 15대의 전차를 사냥했던 나우만에게는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오늘은 몇 대의 전차를 제물로 삼을 수 있을까?

포연이 사라지면서 포신 오른쪽 저 멀리에서 전차 포탑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측 목표물! 전차닷!” 나우만이 소리쳤다. 포수는 이미 T-34를 조준하고 있었기 때문에 첫 탄은 순식간에 발사되었다.

“직격탄 명중!”

포수와 장전수는 마치 신들린 것처럼 움직였고 포신에서는 빠른 속도로 포탄이 연달아 뿜어져 나갔다.

탄을 맞은 첫 번째 T-34의 승무원들이 해치를 열고 탈출하려고 했지만 참호에게 대기하고 있던 보병들이 수류탄과 기관단총으로 처리했

다. 두 번째 T-34가 나타났지만 네 발을 맞고 불타올랐다. 두 대가 더 나타났다. 첫 탄의 거리가 짧았지만 한 대에 두 발씩 정확하게 맞춰 불태웠다. 겨우 1분의 교전에 4대의 전차를 부수는 전과를 올렸다.

“이제 언덕으로 올라간다”

언덕 정상에 채 가기도 전에 또 한 대의 T-34가 보였다.

“다른 놈이다. 발사!”

서부의 총잡이처럼 벌어진 대결에서 훈련과 경험차이가 너무 컸다. 두 대의 전차가 더 불탄 후에야 러시아군은 포병의 지원을 받아 포탄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만하자. 리스?”

나우만은 기사십자 훈장을 받은 첫 번째 하사관이 되었으며 그의 전과는 데미얀스크에 대한 최고사령부 보도자료에 세 번이나 인용되었다.

 

(우에스기 왈: 단포신 3호 돌격포와 T-34의 스펙만 놓고 본다면 맞대결에서는 T-34의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T-34에게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죠. 작은 포탑에 장포신을 장착하느라 포탑에는 한 명만 수용할 수 있어서 전차장이 장전수 역할까지 해야 했습니다. 급조된 승무원은 당연히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을 테고 발사속도까지 늦으니 첫 탄은 3호 돌격포가 훨씬 빨랐습니다.

그리고 포탑이 없는 돌격포의 낮은 실루엣 때문에 은폐해서 선제공격한다면 반격을 받기 전까지 서너 발의 포탄을 더 쏠 수 있었습니다. 단포신의 낮은 파괴력과 T-34의 경사장갑 때문에 첫 탄을 명중시켜도 별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서 두 세발의 포탄을 연거퍼 발사했던 것입니다. 그 후에는 빠른 속도로 선회하며 공격하는 전술을 펼쳤습니다.) 

 

그 후 14일 동안 티멘센코는 보병과 전차를 동원해 북쪽 수비선을 뚫어보려고 계속 시도했지만 200대 이상의 전차만 잃고 말았다. 남쪽 전선에서는 1월 2일에 러시아 제1 강습군이 다시 한 번 더 총력전을 펼쳤고 거의 빈사상태였던 제126 보병사단의 몇 개 연대, 제58과 225 보병사단의 몇 개 대대가 이 공격을 받아냈다. 동쪽을 한 번 더 찔러본 티멘센코는 결국 포기하고 만다. 11월 28일부터 1월 12일까지 이어진 46일간의 전투에서 러시아는 10,000명 이상의 병사와 423대의 전차를 잃었다.

사진 설명: 37mm 문 두드리는 놈(너무 빈약한 파괴력)이 러시아군의 장갑차량을 저지하는 한 장면입니다. 아무래도 연출사진으로 보입니다. 이 대전차포로는 Soft-skin(경장갑) 차량이나 경전차 사냥이 고작이었으니까요. 클릭하면 멋진 모습 보실 수 있습니다. 

3개 군의 공격을 막아낸 독일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아서 17,767명의 병사가 사상하거나 실종되었다. 독일군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훈련과 사기가 높았던 숙련병이고 보충도 거의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러시아에 비해 훨씬 큰 피해였다.

러시아가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었다. 다음 번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또 하나의 스탈린그라드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부족한 병력으로 이상한 형태의 전선을 유지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었을까? 전선의 지휘관들은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히틀러의 사령부에 있던 자이틀러(Zeitzler) 상급대장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발다이 고지에서 군대를 물릴 것을 히틀러에게 종용했지만 히틀러는 완강히 버텼다. 히틀러는 여전히 모스크바를 점령해 러시아를 항복시킨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943년 1월 중순 이후, 스탈린그라드에서 제 때에 빠져 나오지 못한 제6 군이 전멸할 것이 분명해지자, 자이틀러는 다시 한 번 12개 사단, 100,000명의 병력을 전멸위기에서 구하지 못하면 북부전선도 무너진다는 것을 히틀러에게 강하게 주장했다.

히틀러는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흔들리고 있었다. 1월 30일 기록에 따르면

"어제 총통은 데미얀스크의 보급에 대한 보고서를 보고 후퇴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총통은 무의식 중에 레닌그라드 함락도 중요하지만 전선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오스타쉬코프(Ostashkov) 작전도 생각하고 있어서 후퇴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

데미얀스크에서 르제프(Rzhev) 지역으로 공격을 한다니... 얼마나 황당한 생각인가! 히틀러는 데미얀스크에서 거꾸로 공격에 나서 북부와 중앙집단군 사이의 공백을 막겠다는 생각이었다. 거기에 레닌그라드까지 함락시키겠다니!

정확하게 12일 전에 러시아군은 레닌그라드 포위망을 열어젖혔고 독일군은 신야비노 고지에서 압도적인 러시아군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던 중이었다.

히틀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교조주의의 환상에 빠져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스탈린그라드에서 240,000명의 병력이 전멸하는 덕분에, 그리고 폰 로젠탈(Rosenthal)이라는 소령덕분에 발다이 고지의 100,000명은 잠시나마 살아남게 된다.

 

 

 

1월 31일 스탈린그라드의 비극을 들은 히틀러는 자이틀러의 강경한 주장을 받아들이게 된다. 2월 1일, 자이틀러는 제16 군에게 2군단을 후방으로 이동시켜도 좋다는 명령을 내린다. 도로도 없는 지역을 단 한 명의 병사나 군수물자도 남기지 않고 조금씩 물러나는 후퇴였다.

최고사령부의 "70일 내에 소개(Evacuation)한다"라는 명령을 받은 사단 참모들은 미소를 지었다. 라욱스와 참모들은 후퇴를 염두에 두고 작전을 펼쳤었기 때문에 훨씬 짧은 시간 내에 준비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설명: 데미얀스크 소개작전입니다. 소개가 누구입니다의 소개가 아닌 것은 아시죠? 10일 동안, 12개 사단이 전선을 조금씩 축소시키면서 뒤로 물러납니다. 

1월 중순부터, 라욱스는 16 군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이미 후퇴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225 보병사단의 작전참모인 로젠탈 소령은 후퇴작전을 지휘하고 있었다. 당연히 후퇴나 철수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으며 "쓰레기 청소작전"이라는 암호가 사용되었다. 후퇴작전을 모르고 있던 병사들은 반격작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청소작업조가 편성되고 철로가 가설되고 도로가 연결되었다. 여러 부대가 동시에 빠져나갈 수 있도록 우회도로도 준비되었다. 뒤에 남길 수 없는 수 많은 장비는 미리 철로로 옮겨졌고 군수품도 몇 군데에 집중시켰다.

로젠탈과 담당 참모들은 24시간 내내 일했다. 그들의 "지하조직"은 최고사령부에게 들키지 않고 예정된 대로 일을 마쳐나갔다. 2월 1일에 정식 후퇴명령이 내려왔을 때에는, 거의 준비작업이 끝나 있었다. 로젠탈의 계획과 노력이 없었다면, 후퇴작전이 시작되었을 2월 중순에 이미 8,000톤의 장비, 5,000대의 마차와 1,500대의 차량이 이미 철수를 마쳤고 2군 사령부에 40일 내에 후퇴작전을 마칠 수 있다는 보고를 했다.

2월 초가 되자 거대한 눈보라가 발다이 고지에 몰아쳤고 어렵게 깔아놓은 철로와 도로가 모두 눈에 파묻혔다. 제설장비를 동원해야 했지만 위장을 잘 한 덕분에 러시아군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셀리게르 호수에서 눈보라가 몰아오던 날, 제32 보병사단, 94연대 전선 전방에서 이상한 스키자국이 발견된다.

"이거 30분도 안 지난 건데? 우리가 오기 전에 누군가 저리로 건너간 모양이야."

"이반(러시아 보병)놈들은 이쪽에 대해 항상 훤하다니까. 동네주민으로 숨어있던 놈이겠지. 그 놈이 돌아가면 조만간 공격이 시작될 거야."

최전선에게 상당한 무기와 병력을 빼내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군의 공격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허위정보를 퍼뜨리기로 했다. 공군 야전사단이 전선을 보강하기 위해 증원되는 것처럼 꾸미기로 했다. 그리고 병력과 군수품 요청을 사령부로 끊임 없이 보내고 군 사령부는 대구경 포대의 구체적인 위치까지 지정하면서 반격준비를 하고 있다는 허위정보를 지역주민에게 퍼뜨렸다.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사단이 업무보고 무선교신을 일부러 누설하기도 했다.

정찰병, 파르티잔(빨치산)과 주민에게서 독일군이 반격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졌지만 러시아군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데미얀스크에서 후퇴해야 할 판에 오히려 병력을 증원시키고 있다니? 보병사단이 후방에 있던 말을 최전선으로 다시 가져오고 있는데, 이건 후퇴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일군은 후퇴에 대해 교신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허위정보이던, 교란작전이던 상관없이 러시아군 최고사령부는 데미얀스크 전선에 대해 다시 공세를 취하기로 했다. 최고사령부는 남부에서의 대규모 반격과 레닌그라드 반격으로 독일군은 예비부대를 모두 투입했기 때문에 데미얀스크의 12개 사단에게는 아무런 지원도 없을 것이라고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독일 제16 군 좌측의 제18 군은 레닌그라드만으로도 무너질 지경이었으며, 데미얀스크 남부의 비테브스크(Vitebsk)의 제59 군단은 북부집단군과 중앙집단군 사이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르제프에서는 제9 군이 2달 넘게 계속되는 러시아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훨씬 남쪽에서는 만슈타인 원수가 포포프(Popov)의 기갑군과 바투틴(Vatutin)의 군이 드니에페르(Dnieper) 강까지 넘어오지 못하게 막느라 단 한 개의 대대조차도 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6 군이 데미얀스크에서 전멸할 위기에 몰려도 아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16 군에게는 이제 예비병력은 전혀 남아있지도 않았다. 마지막 기갑부대인 제203 기갑연대를 프랑스로 이미 전출시킨 상태였다.

러시아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허위정보에 그렇게 동요되지 않았다. 최고사령부는 티멘센코에게 100,000명을 포위해 섬멸하라는 명령을 다시 내린다. "돈Don 출신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그도 이번에 실패하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남은 모든 전력을 동원해 좁은 파이프 지역에 협공한다.

 

2월 15일 월요일 오전 6시, 독일군은 갑작스런 러시아군의 일제포격에 모두 깨어났다.

"젠장! 마지막 순간에 들켜버렸네!"

'위대한 조국해방전의 기록(History of the Great Fatherland War)'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작전은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된 것이었다. 3일 전인 2월 12일, 레닌그라드 전선에 대해 공세가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에 독일군 제18 군은 완전히 발목 잡혀 이번에는 거꾸로 16 군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판이었다.

르제프와 벨리키예 루키(Velikiye Luki) 일대에도 공세를 취했기 때문에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6 군은 외부의 도움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러시아군의 총공세를 막아내야만 했다.

오전 7시부터 티멘센코는 6개 소총사단과 3개의 전차연대를 동원해 데미얀스크 파이프의 북쪽을 담당하고 있는 제209, 58, 25 보병사단을 노렸다. 남쪽에서는 6개 소총사단, 3개 소총여단의 제1 강습군이 호페(Hoppe) 장군의 제126 보병사단을 밀어붙여. 6대1의 싸움을 벌였다. 거기에 50대의 전차까지 덧붙여서.

남쪽 전선에서 몇 군데 위험스런 구멍이 생기기는 했지만 티멘센코는 본격적인 돌파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군의 일선 지휘관들은 이번 공격이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데미얀스크 주변에 있는 5개 군 중에서 2개만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3개 군의 공격이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었다. 특히 파이프의 아래 쪽이 거의 무너지기 직전인 지금,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유일한 탈출구인 파이프를 유지하려면 병력이 더 필요했고 병력은 데미얀스크 전선을 줄여 마련하는 수 밖에 없었다.

2월 17일, 라욱스 장군은 16 군 사령부에서 전원 철수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낸다. 이제 세계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치열한 후퇴작전이 펼쳐지게 된다.

 

상당히 여유있게 후퇴작전을 준비했었던 덕분에 교차로, 다리, 심지어 병목지점에서도 대열은 전혀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예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 차량이 고장을 일으키면 대열 밖으로 밀어낸 다음 응급수리를 해 다시 대열로 복귀시켰다.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포성은 러시아군이 언제라도 파이프 양쪽을 절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여느 때와 같이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10km라는 좁은 통로를 지켜준 아군이 이번에도 20일이라는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데미얀스크에서 후퇴한 병력이 속속 수비전선에 합류하고 있어서 그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전투가 숫자싸움이기는 한데 몇 가지 알려지지 않은 변수가 개입되면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변수 중 하나는 러시아군의 작전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작전을 펼치게 될까? 적이 어떻게 나오던 무조건 물러나지 않고 지키면 되었지만 날씨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변수가 아니었다. 갑작스레 맹렬한 눈폭풍이 불면서 몇 시간 만에 모든 도로와 철로 위에 눈이 쌓이고 마차와 트럭이 눈에 빠지면서 심각한 정체가 벌어졌다. 지금까지 딱딱 맞아떨어지던 작전이 완전히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공황상태에 적이라는 변수가 겹쳐지면서 상황은 크게 악화된다.

2월 19일 오전, 러시아군 사령부는 데미얀스크의 최전선에 독일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러시아군은 기병과 스키부대를 동원해 바로 추격에 나섰고 날씨는 러시아편이었다. 스키부대는 눈보라를 등에 업고 독일군 최후위부대를 돌파한 다음 도로를 점령해 독일군 주력사단의 후퇴를 막으려고 했다. 제6 보병연대, 유틴(Eutin) 제1 대대는 행진 중에 총격을 가하는 러시아군과 백병전을 벌여 도로가 막히기 전에 빠져 나오는데 성공했다.  

등뒤에서는 적이 추격해오고 앞으로는 눈을 헤치고 달려야 하는 어려움 속이었지만 독일군에게 힘을 주는 것이 하나 있었다. 모든 탄약을 폭파시켜야 하는 포병이 포가 부숴질 때까지 화력지원을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2월 19-20일 데미얀스크 주변에 예정된 세 번째 수비선을 마련하고 야폰(Yavon)과 폴라(Pola) 강의 교량에 침투하려는 적을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제12, 30, 122 보병사단의 방어아래 중화기와 비전투 부대가 도시를 빠져나갔다. 척탄병연대는 데미얀스크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다음 수비선을 향해 떠났다.

러시아군에게 동선을 알려주는 표시판도 모두 제거되었기 때문에 병사들이 눈보라 속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스키병들이 계속 오가며 대열을 정비했다. 여기에서 또 한 개의 변수가 동작하고 만다.

한 부대가 데미얀스크 외곽에 있는 보급창고를 지나치게 되었는데, 창고 책임자는 어차피 폭파시켜야 할 보급품을 차라리 나눠주자고 판단하고 지나가는 부대들에게 선심을 쓰던 참이었고 거기에는 상당량의 프랑스 꼬냑도 포함되어 있었다. 병사들은 수통에 꼬냑을 가득 채우고 추운 날씨에 그만 만취한 병사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만취는 주정을 부르고 사고를 부르는 법이다. 데미얀스크의 도로 가에 있던 목조주택들에 불이 나면서 불똥이 이리 저리 옮겨 붙어 데미얀스크는 불지옥으로 변하고 거기를 빠져나오는 독일군의 실루엣이 대낮처럼 드러났다.

그리고 도시를 통과하는 경로도 엉망이 되고 말았다. 후위부대와 군단 사령부를 연결하는 전화선이 모두 녹아버렸고 부상병들을 위해 공병들이 필사적인 노력을 한 병원 건물을 빼고는 모두 잿더미로 변해버린다.

사진 설명:  데미얀스크와 상관이 없는 사진이지만, "이랬을 것입니다"라고 우기며 올립니다. 클릭하면 커집니다. 

상황을 파악한 러시아군은 본격적인 추격에 나서고 후위부대를 맹렬하게 공격한다. 폴라와 야포프 강을 건너는 교량을 둘러싸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지만 독일군은 무사히 다리를 건너 4번째와 5번째 수비선에 도착한다.

철수가 시작된 지 10일 후인 2월 27일, 데미얀스크 주변과 파이프 전선의 독일군은 모두 소개되었다. 최고사령부에서 허가했던 70일을 내부에서는 20일로 줄였고 다시 이 일정을 급박한 러시아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단 10일만에 성공해낸 기적적인 작전이었다.

심지어 러시아군도 티멘센코의 실패를 지적하며 "일선 지휘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티멘센코는 1900 평방 km가 넘는 넓은 지역을 되찾았지만 단 한 명의 포로도, 단 한 개의 대형화기나 차량도 노획하지 못했고 수백 톤의 탄약은 모두 폭파되었고, 1,500대의 고장난 차량의 엔진에는 모래가 부어졌고 700톤의 음식물도 모두 못쓰게 처리되어 있었다. 그는 10,000개의 독일군 묘지만 차지했을 뿐이었다.

 

100,000명에 이르는 12개 사단이 전멸위기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전력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북부집단군은 귀중한 예비전력을 얻게 되었다. 덕분에 부쉬 원수는 후방으로 침투하는 러시아군을 물리칠 수 있게 되고, 티멘센코는 스타라야 루사 지역에서 계속 이어지는 5번의 전투에서 참패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