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전쟁하면 트로이목마를 떠올리게 되는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의 판단입니다.
아무리 그리스군이 사라졌다고 해도 대형목마를 조사하지 않고 성문 안으로 들여놓고 술판을 벌였다는 것은, 공포영화에서 연쇄살인범을 찾아 일부러 지하실로 내려가는 갸날픈 여성만큼이나 인위적이죠.
역사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기원전 12세기, 약 3,200년 전 사건이다 보니 실제로 존재했느냐로 설전을 벌여봐야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뭔가 있을 것 같아서 정리를 시작했더니... 원자료의 저자도 횡설수설로 끝내고 마는군요.
신화냐, 학자의 분석이냐는 여러분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재미는 신화쪽으로 기울게 되죠.
전쟁의 동기도 해상지배권 다툼보다는 신의 장난으로 시작된 애정놀이가 더 재미있으니까요.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Helen은 납치된 것으로 묘사되다가 요즘에는 사랑의 도피로 묘사되고 있죠. 시대상을 반영한 해석입니다.
그리스군이 모두 떠나고 시논Sinon만이 초췌한 모습으로 남았다. 그리스어로 질병이나 불운을 뜻하는 시논이 실제 이름인지 아니면 별칭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트로이를 속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는데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그의 뒤에 서 있는 트로이 목마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트로이 북쪽 해안의 이다Ida산 소나무로 만든 목마는 크고 아주 정교했는데 그 안에는 9명의 그리스 전사가 타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그리스군은 병사, 말, 무기와 약탈품을 챙기고 막사에 불을 지른 후에 근처 테네도스Tenedos섬 근처에 배를 타고 기다렸다. 해안에는 탈영병 시논과 트로이 목마만 남겨두었다.
1,700년 후인 5세기의 그림입니다.
트로이군은 갑자기 텅빈 해안을 보고 놀랐다. 그런데 도대체 목마는 뭘 하려던 것이었을까? 격론 벌인 끝에 아테네Athena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성벽 안으로 들여 놓았다. 승전을 축하하는 광란의 밤을 보냈다.
트로이는 그리스군의 계략에 넘어갔다. 목마에서 나온 특공대가 성문을 활짝 열었고 때마침 테네도스에서 돌아온 본대가 아직도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트로이군을 학살했다. 도시 전체를 불태우고 오랜 전투를 끝냈다.
신화는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사학자는 트로이 목마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허구라는 것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로마시대부터 시작해서, 목마가 실제로는 공성탑이었거나 성문의 상징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호메로스Homer도 그리스 함대를 ‘해마’로 불렀고, 지진으로 트로이를 파괴한 포세이돈의 상징일 수도 있고, 이집트 문학이나 히브리 성서에서 나오는 민간신화일 수도 있다.
트로이 목마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장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존재했다는 주장은 거의 없다. 공성탑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데 청동기시대 아시리아Assyria는 공성탑에 말이름을 주로 붙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트로이목마가 존재했고 트로이군이 경계를 푸는 미끼가 되었을 가능성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트로이목마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다양한 그림이 존재하는데, 실제로 이렇게 거대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어떻게 그냥 반입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모두가 트로이목마에만 신경쓰고 있지만 우리는 훨씬 큰 역할을 하고 현실적인 시논에 대해 생각해보자.
전사에 있어서 기만은 흔한 전략전술이었고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예를 들어 히타이트Hittite왕은 겨울이 다가오자 공성진을 풀고 물러났다가 요새의 경계가 느슨해지자 장군을 보내 급습했다. 이 장군은 미리 공작원을 적에게 투항시켜 경계를 풀게 했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공성전에서는 밤에 잠입해서 신의 뜻이라며 성문을 열게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한 적도 있었다.
트로이목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청동기시대 전투로 돌아가 트로이전쟁을 재구성해보자. 그리스군은 자신들이 완전히 물러갔다고 믿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트로이군의 경계가 느슨해진 때를 놓치지 않고 알려줄 공작원이 필요했다.
마라톤전쟁에서는 방패로 페르시아군에게 신호를 준 배반자가 있었지만 밤이어서 빛을 반사시키는 신호대신에 횃불신호를 사용했을 것이다. 산 정상에서 불을 피우면 320km 떨어진 산정상에서 신호를 받을 수 있었다.
신호를 받은 그리스군은 트로이로 바로 되돌아왔고 미리 열린 성문으로 밀고 들어갔을 것이다. 성문은 트로이 배반자나 미리 잠입했던 공작원이 열어주었을 것이다. 트로이목마가 있던 없던 상관없이 트로이 성문의 경계는 허술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테네도스섬은 12km도 안되는 거리였고 노 32개 갤리선이 5노트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으니까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신호를 받고 2시간 안에 다시 되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해안에서 성벽까지 8km 거리였으니까 3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했을 것이다. 테네도스섬에서 저녁 9시에 출발했다고 해도 해가 밝기 전까지 3시간의 여유는 있었다.
트로이군을 속이는 문제 다음으로 성문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였다. 미리 병사를 미리 잠입시켜 성문을 열어두어야 했는데 사실 거추장스러운 트로이목마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오디세우스Odysseus는 이미 2번이나 도시 안에 잠입한 적이 있었다.
트로이전쟁은 10년 동안이나 계속 되었고 트로이 주변의 도시국가와의 통행이 계속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 특공대도 쉽게 숨어들 수 있었다. 비무장 상태로 잠입한 특공대는 경계를 푼 트로이병사에게서 무기를 빼앗고 성문을 확보했을 것이다.
그리고 트로이 내부에도 변절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오랜 전쟁으로 지쳤거나 반대세력이 그리스군과 내통해 특공대를 도왔거나 스스로 문을 열었을 수 있다.
트로이전쟁이라고 불러서 도시 국가 하나를 두고 10년씩이나 전쟁을 하다니?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실제로는 지역패권을 둘러싼 도시국가 연합간의 큰 전쟁이었습니다. 실제로 있어난 일이라면 말이죠.
신화에 따르면 목마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트로이 신관 라오콘Laocoon이 목마를 불태우자고 주장하다가 두 아들과 함께 포세이돈이 보낸 뱀에게 졸려 죽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트로이 반대세력에게 살해된 것을 기록한 것일 수 있다.
밤인데다가 트로이군이 술취해있었다고 해도 일방적인 전투는 아니었다. 역전의 용사였던 트로이군은 초반 기습충격에서 벗어나 대항하기 시작했고 시가전은 날이 밝은 후에도 계속 되었다. 격렬한 시가전은 신화에서도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스군은 도시를 약탈하고 완전히 불태웠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전부다.
트로이목마의 존재를 거부했기 때문에, 트로이전쟁 자체를 신화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트로이전쟁은 실제로 존재했다. 1871년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은 깊숙이 숨어 있는 트로이의 건물잔해와 숯덩어리를 발굴해냈다. 기원전 1230~118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었다.
집 현관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남성의 유골 일부가, 요새에서는 2개의 청동 창끕, 3개의 청동 화살촉, 2개의 청동칼 일부가 발견되었다. 남쪽 성문 옆의 무기고 또는 경비막사 건물터에서는 수 십개의 돌팔매용 둥근 돌이 발견되었다.
몇 년 전부터 소재가 딸린 헐리웃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손을 다시 대기 시작했는데 모두 망작이었고 '트로이' 정도만 지금도 볼만합니다.
트로이목마 패러디 만화입니다.
그리스군이 물러났습니다! 잘 되었군!
오디세우스 이 계획은 멍청했어. 닥쳐!
배송오류...
그리스와 트로이의 선물교환. 20달러 한도라니깐!
잘 만들었는데 출입구를 다른 곳에 만들면 안될까?
트로이 피냐타. 멕시코 등에서는 장난감 말을 두들겨서 깨트리고 안의 사탕을 줍는 풍속이 있습니다.
트로이 병사가 "우와, 나무개Wood Dog이당"하니까 촉새 그리스병사가 안에서 "목마라니깐"이라고 대답하는 만화도 있더군요.
너무 크게 만들어서 성밖에 그대로 두고 들어가는 만화는 못 찾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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