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검증을 할 필요없는 수준이라 그냥 재미로 보시면 됩니다.
국내 모 인터넷 매체가 '히틀러 자살은 조작..아르헨티나서 천수 누렸다'는 기사를 뿌리면서 각종 음모론과 서프라이즈 광팬이 흥분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인데 클릭수에 집착하는 매체다 보니...
그러나 이와는 달리 히틀러가 스스로의 죽음을 조작한 뒤 북아프리카 스페인령인 카나리아제도의 테네리페섬으로 도망을
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대중지인 ‘더 선’과 ‘익스프레스’ 등은
최근 기밀 해제된 700쪽짜리 미 연방수사국(FBI) 자료를
미국의 전문가가 검토한 결과 히틀러의 죽음은 자작극임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센시치는 또 영국군과 미군이 히틀러의 벙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의 시신이 사라진 뒤였기 때문에 히틀러의 죽음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영국 선이 보도한 원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재미삼아 더 선과 선데이 익스프레스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매체의 현재 메인기사입니다.
영어독해가 쉽지 않은 분도 연예가 가십이 주종인 매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히틀러가 아돌프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으로 95세까지 살았다는 기사도 실었습니다.
12,000명이나 사는 도시에서 사진도 찍으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주장입니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재미삼아 보도내용의 일부를 검증해보겠습니다.
센시치는 또 영국군과 미군이 히틀러의 벙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의 시신이 사라진 뒤였기 때문에 히틀러의 죽음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영국군과 미군이 히틀러 벙커에 도착했을 때에는 시신이 있을 수가 없죠. 히틀러 자살 당시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Their bodies were carried up the stairs and through the bunker's emergency exit to the bombed-out garden behind the Reich Chancellery, where they were placed in a bomb crater and doused with petrol. The corpses were set on fire as the Red Army shelling continued.
히틀러의 시신은 벙커 밖의 구덩이로 옮겨져 불탔습니다.
소련군이 연합군과 종군기자에게 시신이 불탄 구덩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소련군이 보여주고 연합군은 구경꾼이었을까요?
소련군이 베를린에 더 가까이 접근했고 아이젠하워는 불필요한 희생을 막고 소련군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미군을 남부로 돌렸습니다.
베를린 수비군의 희망과 달리 미군이 남부로 돌면서 베를린의 참극이 벌어졌죠. 어쨌든 히틀러는 4월 30일에 자살했고 베를린은 5월 2일에 함락되었지만 독일은 5월 8일에 항복했고 그 때까지도 전투는 계속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미 연합군 대표단은 아무리 서둘러도 최소한 9일 후에야 베를린에 들어갔을 테니 벙커에 히틀러의 시신이 있을 수가 없죠.
저도 도시괴담이나 음모론에 끌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렇다고 강변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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