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병사의 눈으로 본 D-Day (2부)
ROA는 전쟁초반 소련과 폴란드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국방군에 자원했다. 탈영우려 때문에 노르망디에 배치되었는데 연합군에 다시 포로가 되면 보복이 두려워 최후까지 싸웠다고 들었다.
가끔씩 전투기가 다가와 기총소사를 하거나 그냥 지나갔다. 하늘에는 독일공군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마음대로 였다. 총탄을 맞은 사람은 그냥 길 옆에 두고 떠났다. ROA 한 명이 배에 여러 발을 맞고 두 동강이 났는데 달아나느라 시체를 짓밟고 지나갔다.
갑자기 앞에서 총격이 있었고 한 명이 죽었는데 아군 토브룩이었다. 우리를 알아본 병사는 다른 병사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경고했다. 내 다리로는 달릴 수 없어서 혼자 뒤처져 있었는데 러시아 병사가 나를 도와주었다.
두 번째 벙커 라인에 들어섰다. 100m 간격으로 땅위에 약간 올라온 콘크리트 구조물로 도로가 아주 잘 보였다. 이곳에도 폭격이 있었지만 벙커는 무사했다. 주변에 반궤도트럭, 큐벨바겐, 오토바이와 마차가 뒤엉켜 있었다.
75mm 대전차포와 기관총 여러 정이 있었고 참호와 벙커에는 해변에서 후퇴한 병사가 가득했다. 벙커 뒤에는 20mm 대공포도 있었다.
사방이 저지대이고 트여 있어서 상당한 방어거점으로 보였다. 의무병이 모르핀과 암페타민(각성제)를 섞은 음료를 주었다. 벙커 하나에 들어갔더니 내 MG34를 보고는 무척 반겼다.
75mm도 있고 여러 개가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 이런 식의 벙커라인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벙커에 있던 병사는 미친듯이 질문을 해댔다. 전차가 있어? 화염방사기는? 등등. 거점에서 탈출한 병사들끼리 서로 본 것을 주장 해댔고 공포분위기가 맴돌았다. 하사 한 명이 꾸짖자 조용해졌다.
하사는 남동쪽에서 증원군이 오고 있기 때문에 전차가 올 때까지만 버티면 상륙한 적을 바다에 다시 몰아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쪽에 기갑사단이 배치된 것을 알고 있어서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시계가 부숴져서 몇 시인지 모르겠지만 벙커에서 버티면 그만이었다. 벙커 안은 습기가 많았고 더워서 땀이 눈가로 흘러내렸다. 다들 무기를 들고 연합군의 공격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연합군은 우리가 기다리는 대로 공격하지 않았다.
야보Jabo(전폭기)! 라는 외침이 들렸다. 콘크리트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3대가 엄청난 속도로 급강하하고 있었다. 커다란 원통형 엔진을 가지고 있어서 썬더볼트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도색이 거의 되지 않은 금속 그대로라 놀랐다.
대공포를 돕기 위해 기관총을 급하게 쐈지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20mm 대공포탄은 매우 밝은 색으로 하늘을 향해 꾸불거리며 날아갔다. 몇 발이 전폭기 한대의 날개를 정확하게 맞춰 멀리 쫓았지만 다른 두 대가 다가와 100m 정도 높이에서 폭탄을 떨어트렸다.
정식명칭은 Republic P-47 Thunderbolt입니다.
1.13톤의 폭탄을 장착하고 12.7mm 기관총 8정(3,400발)으로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대부분의 항공기가 날개가 반쯤 날아가도 무사히 귀환할 수 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이 기억에 영원히 각인되었는지 자세히 기억난다. 한 대가 2개씩 작고 검은 폭탄을 떨어트리자 우리 앞에서 튕겼다. 한 개는 바로 머리 위로 넘어가 벙커 사이로 갔고 다른 하나는 벙커 지붕을 맞고 꺾여서 다른 곳에서 터졌다. 우측의 토치카가 폭탄에 맞아 연기가 났지만 아직 그대로 서 있었다.
썬더볼트는 다시 다가왔다. 이번에는 6~8대였다. 한 대씩 차례로 폭탄을 퍼부었다. 대공포가 다시 한 대를 맞췄고 긴 연기 자국을 남기다가 벙커 왼쪽에 박히면서 터졌다.
대공포도 조용해졌고 폭탄은 연달아 떨어졌다. 그 중에 하나는 병사로 가득 찬 참호로 들어갔다. 폭발과 함께 신체, 무기와 군복조각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닥에 엎드려 귀를 막고 것뿐이었다
벙커가 여러 번 흔들렸고 콘크리트 창으로 파편과 잔해가 쏟아져 들어와 요란한 소리를 냈다. 포병 한 명이 비명을 질러댔고 전우들이 바닥에 눕히고 두들겨 팼다. 다른 병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동안 계속 숨죽여 흐느꼈다.
다른 사람은 십자성호를 긋거나 기도를 드렸고 욕을 퍼붓기도 했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다들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폭격은 겨우 1~2분에 불과했는데 영원처럼 느껴졌다. 벙커지붕이 크게 흔들리며 돌조각이 떨어져 나와 팔다리를 부러트렸다. 폭격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도울 수 없었다.
폭격이 멈췄고 밖을 내다 보았다. 우측 토치카는 한쪽이 완전히 날아갔고 폭탄을 맞은 참호는 팔다리가 잘린 몸통이 연기를 내거나 검게 타버려 끔찍했다.
철제 토브룩을 대량생산해서 쉽게 설치했는데, 이건 너무 심하게 두들겨 맞았군요.
‘또 야보다!”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미군은 항공기가 끝없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썬더볼트였지만 날개 아래에서 흰색 빛이 연기를 내며 내려오는 것을 로켓이었다. 한 번도 가까이에서 로켓폭발을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알지 못했다.
로켓은 어떤 면에서는 폭탄보다 더 악랄했다. 탄두는 쉬이 하는 소음과 함께 백색 빛을 내며 폭발하는 인화물질이 있었다. 첫 번째 로켓탄이 다른 벙커에서 폭발했다. 백색 화염이 벙커를 뒤덮었고 마치 동물의 숨소리나 신음 같은 소리를 냈다.
다른 로켓탄이 순식간에 우리 벙커라인을 덮쳤다. 한 발이 대전차포 창 밖에서 터졌고 인화물질이 쏟아져 들어와 포를 뒤덮었다. 불은 꺼지지 않았고 포병을 덮친 후에 탄약더미로 옮겨 붙었다. 포 부근에 있던 사람은 백색화염에 불탔는데 바닥에서 울던 병사도 근처에 쓰러져 있던 부상병도 모두 불탔다. 군복이 먼저 불타 벗겨지고 맨살이 불붙었다.
75mm 포탄 한 발이 화염에 폭발했고 벙커 안을 이리 저리 부딪치며 사람을 토막냈다.
영상을 보면 별 것 아니게 보이지만 127mm 로켓으로 10발을 장착했습니다.
누군가 벙커 철문을 열어제쳤고 나도 몸을 던졌다. 지옥에서 먼저 빠져나가려고 서로를 밀고 당겼다. 머리에 불이 붙어 쓰러진 누군가를 밟고 밖으로 나가 몇 발자국 달리다가 그만 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했다. 나는 실제로 지옥을 봤다.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광경이었다.
백색 인화물질은 여전히 폭발하며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을 산채로 태우고 있었다. 맨몸뚱이가 불을 덮인 채로 기어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대전차포와 기관총탄이 터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찢어 놓았다.
몇 사람이 등과 다리에 불이 붙은 채로 밖으로 나왔고 나는 다시 뒤로 물러났다. 비명과 신음소리만 들렸다.
우측 벙커도 비슷한 상태였다. 한쪽 구멍에서 백색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세번째 벙커 철문은 닫혀 있었지만 창에서 화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연달아 폭발하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트럭과 반궤도트럭도 옆으로 뒤집혀 조각나 있었다. 뒤에 있던 20mm 대공포는 폭격에 맞아 큰 구덩이가 나 있었다. 나와 몇 사람만 살아남았다.
나중에 백린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합군이 처음 사용한 화학폭탄으로 액체처럼 불타 흐르며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참호에 있던 시체는 새까맣게 그을린 뼈만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불타 없어졌다.
충격 때문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총도 없고 군복은 누더기가 되었고 모르핀 칵테일 약효도 떨어져서 몹시 떨렸다. 연기와 먼지로 뒤덮여서 주변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국방군 두 명이 다가왔고 우리는 주저 앉아 잠시 기다렸다. 장교는 나타나지 않았고 연기속에서 나타난 다른 사람은 남동쪽으로 달아났다. 한 명이 판처슈렉Panzerschrek과 탄 두 발을 들고 나타났다.
판처슈렉은 88mm로 160mm 장갑을 관통했고 시가전에서 보병엄호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였습니다.
도로 쪽에서 전차소리가 들려다 안들렸다 했다. 다른 두 명은 벙커가 파괴되었으니 후퇴하자고 했고 판처슈렉은 가지고 있는 두 발을 쏘고 도망가자고 고집부렸다. 200m 거리에서 연합군 전차를 부술 수 있고 아군전차가 도착하면 훈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든 것을 놓아버린 상태였다. 두 명은 벙커 뒤로 사라졌고 내가 장전수가 되기로 했다. MP40과 탄창 두 개를 집어 들었다.
도로가 잘 보이는 잔해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판처슈렉은 장전방법을 알려주고는 후폭풍을 피해 옆으로 가라고 말했다. 바닥에 엎드려 도로를 보니 불타는 나무연기 속에서 전차외곽이 보였다.
차체가 높은데다가 커다란 별이 그려져 있어서 목표물로 그만이었다. 거리는 200m 정도 되었고 “셔먼이야. 저 놈은 이제 끝났어”라고 말하고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발사했다.
발사관 뒤로 엄청난 스파크와 화염이 나와 얼굴이 화끈거렸다. 탄이 셔면으로 날아가 차체 아래부분을 때렸다. 폭발은 크지 않았지만 차체에서 철조각이 많이 떨어져 나왔고 트랙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전차는 심하게 요동을 쳤지만 차체기관총이 움직이지 않아 놀랐다. 장전수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포탑기관총이 사격을 퍼부었다.
셔면은 불타는 소리가 들리더니 더 이상 사격을 하지 않았다. 해치에서 승무원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MP40으로 기관단총을 든 병사를 먼저 쏘아 쓰러트렸고 나머지는 달아났다.
MP40 최대사거리가 200m라 증언이 과장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옆으로 돌던 두 번째 셔먼은 구동휠 옆을 맞아 트랙이 벗겨졌다. 백발백중의 엄청난 전과였다. 두 번째 셔먼은 대인탄을 쏘기 시작했다. 우리는 콘크리트 잔해 뒤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다른 전차의 트랙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까지의 승리감은 죽음의 공포로 바뀌었다. 판처슈렉은 파편을 등과 목에 맞아 많은 피를 흘리고있었다. 판처슈렉을 버리고 부츠에서 수류탄을 꺼내더니 내게 주었다. ‘전차에 수류탄을 던지라고?’하며 당황했는데 포로가 되느니 자폭하자고 말했다.
더없이 훌륭한 병사이거나 미친 놈이 분명했다.
'현대 > 2차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련전차병의 눈으로 본 T-34 (1부) (0) | 2016.03.03 |
---|---|
독일병사의 눈으로 본 D-Day (3부) (0) | 2016.02.24 |
독일병사의 눈으로 본 D-Day (1부) (0) | 2016.02.22 |
히틀러 자살은 조작..아르헨티나서 천수 누렸다? (0) | 2016.01.10 |
히틀러의 마지막 기회, 모스크바 전투 (7부) - 태풍작전 종료 (0) | 2016.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