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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독일병사의 눈으로 본 D-Day (1부)

by uesgi2003 2016. 2. 22.


요즘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각종 커뮤니티에서 전쟁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는데 세대간 인식이 너무 다르더군요. 고령자가 많은 사이트에서는 북한에 대한 공포감이 극에 달해 있고 중년층 사이트에서는 가족의 안녕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강하고 젊은 사이트에서는 (특히 군미필이) 미군을 믿고 철부지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F-22 4대가 왔다고 북한은 끝났다는 소리까지 하더군요.

 

그래서 (있어서는 안될) 전쟁이 터지면 대부분의 철부지가 겪게 될 땅개의 비극을 알려주려고 D-Day 당시의 참혹한 기억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스테판 하이네베츠Stefan Heinevez 사병으로 프랑스 코탕탱Cotentin 반도의 709보병사단 919척탄병연대 소속으로 유타Utah해변에서 D-Day를 맞이합니다. 





오마하 해변의 독일군 방어시설입니다. 


꽤 공들여 구축한 시설이지만 연합군의 물량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죠.


그는 1943년 시실리에서 부상당한 후 다리를 절게 되었고 대서양 장벽 토브룩Tobruk 벙커에 배치되었습니다. 토브룩은 한 두 명이 배치된 원형 콘크리트 벙커로 덮개가 있거나 없는 다양한 형태의 방어시설입니다. 적 보병이 대형방어시설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거점으로 노획한 프랑스나 체코전차 포탑을 올려 둔 형태도 있습니다.



대서양 장벽에는 주로 부상병이나 외국군(탈영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도록)이 배치되었지만 흔한 오해와 달리 전투력이나 사기가 떨어지는 2급전력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이베네츠와 함께 배치된 제프Sepp도 벨기에인으로 자원입대했습니다.


 


전투경험을 가지고 있는데다 연합군의 침공을 예상했기 때문에 느슨한 경비가 아니라 긴장감이 높았습니다. 아직까지는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남아 있었고 프랑스를 내주면 고향의 가족이 위험해진다는 위기의식으로 사기가 높았습니다.

D-Day 후 연합군의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직접 경험한 후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절감했고 그 후부터 대대적인 탈영과 항복이 이어집니다.

 

일반 병사의 지옥에서 생환한 생생한 경험으로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독일병사의 눈으로 본 D-Day (1부)

 

장교가 자정 넘어 오토바이를 타고 토브룩으로 오더니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동의했다. 남쪽에 공수부대가 투하되었으며 연대장이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둠 속에서 항공기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탐조등과 대공포가 서쪽을 향했는데 탐조등 전력이 부족해서 소용이 없었다. 북쪽 하늘 여러 곳에서 화염이 일어났는데 분명히 불타는 항공기였다. 제프와 나는 큰 걱정을 하며 새벽을 기다렸다.

 

남동쪽에서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해서 장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자리에 없었다.

새벽 동이 트면서 어렴풋이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쪽으로 향하는 쌍발항공기가 질서없이 줄을 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검백색 줄무늬가 있었지만 항공기식별훈련에서 배운 C47형으로 공수부대 수송용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남쪽에 낙하산병 투하가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이탈리아 참전 때와 같이 목이 마르고 손가락이 떨렸지만 장애에도 불구하고 연합군보다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투경험이 없는 제프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쌍안경을 사방을 둘러보고는 남쪽에서 섬광이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갑자기 강력한 포격이 시작되었다. 낮은 비명소리를 낸 첫 번째 포탄이 우리와 방어거점 사이에 떨어졌다. 비명소리로 보아 포격이었는데 이탈리아에서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위력이었다.

우리는 바닥에 머리에 손을 올리고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20분 정도의 포격 후에 저공비행 소음이 들렸다. 지휘소에 전화를 걸 수 없었다.

 

그 때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남을 것이다. 남쪽의 해변 안쪽의 목장의 소떼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거나 불이 붙어 날뛰고 있었다. 발에 불이 붙은 한 마리가 우리를 향해 돌진해오기에 기관총으로 쓰러트렸다. 황당하게도 66, 첫 번째 사격이었다.

방어거점쪽은 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았는데 머스탱 전폭기가 땅에 처박혀 불이 나고 있었다. 대공포에 맞았는지 아니면 저공비행 중에 포탄을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캐노피 안에는 조종사가 움직이고 있었다. 엔진쪽에서 불이 크게 번지더니 불꽃을 날리며 폭발했다. 탄약이 터지며 사방으로 날아 다녔고 조종사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는 다시 흑백색 밴드를 두른 항공기가 남쪽으로 저공비행하고 있었다. 독일공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다른 병사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쪽에서의 공격에 대비해 기관총을 큐폴라링에 걸고 제프에게 뭐가 보이는 지를 물었다. 제프가 돌아보며 대답하려는 순간에 목이 뚫렸다. 목뒤로 총알이 뚫고 나가며 피와 피부가 뿌려지는 것이 보였다. 다시 한 발이 가슴을 뚫고 등으로 나왔다.

말 그대로 눈앞에서 조각나 버렸다. 나는 적이 안보였지만 남쪽으로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 나무 한쪽에서 작은 물체가 보였는데 이탈리아에서 봤던 연합군의 수류탄이었다. 못 미쳐서 터졌고 얼굴과 어깨에 작은 파편이 튀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즉시 50m 밖의 나무를 쏘아 산산조각냈다. 내 왼쪽에 뭔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다친 소라고 생각했는데 그물망을 씌운 녹색 철모가 보였다. 미군이었다. 그를 향해 쐈고 철모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적의 손이 보이자 다시 기관총탄을 퍼부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포위된 상태였고 다른 위험을 찾느라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포격의 충격으로 귀가 들리지 않아 걱정했다.

 

방어거점이 어렴풋이 보였다. 콘크리트 지붕이 내려 앉아 부숴졌고 그 너머로 바다가 약간 보였다. 처음 보는 녹색 빛의 선박이 보였다.

한참 후에야 그날이 사상최대의 상륙작전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내가 본 것이라고는 모래 언덕 사이의 바다 한 부분뿐이었다.

탄창을 좀 더 가져온 후에 나무에 몇 차례 퍼부었더니 적 총탄이 기관총 방패로 날아들었다.

 

귀가 먹은 상태라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갑자기 내 옆에 사람이 쓰러졌다. 그는 거점에서 달려온 병사로 가슴에 몇 발을 맞아 괴로워했다. 몇 명이 해변쪽에서 벙커로 달려오고 있었지만 한 명씩 차례로 총에 맞아 쓰러졌다. 한 명은 머리에 맞아 뇌가 날아갔고 다른 한 명은 배를 맞은 후에 피를 토하며 다리를 끌었다.

한 명은 목을 맞고 목 위가 거의 잘려나갔다. 나는 앞에 오랜 동안 사격을 했고 그 덕분에 한 명이 내 뒤까지 다가왔다. 처음 보는 중위였는데 그가 가진 MP40로 장교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소리친 덕분에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적의 상륙전차가 해변에 올라와서 거점을 태웠다.” 상륙전차라니? 차를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어거점이 사라졌다. 총을 가지고 나가자.”

토브룩을 떠나라는 명령입니까?”

병력을 데리고 다음 벙커로 가서 합류하지.”

 

남쪽 2km에 또 다른 벙커 라인이 있었다. 해변에서 아군이 속속 나타났고 탄창을 비우며 엄호사격을 했다. 몇 명이 쓰러졌지만 나도 톰슨기관단총을 든 미군 3명을 쏘았다. 중위가 몸을 일으켜 일부러 목표물이 되었는데 아무도 쏘지 않았다. 그는 이동하자고 소리질렀다.

땅에 쓰러진 3명의 미군을 지날 때에 갑자기 한 명이 움직였다. 중위는 재빨리 기관단총으로 머리를 쏘았고 다른 두 시체도 확인사살했다.

 

한 명이 톰슨총과 여분의 탄창을 집었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 적의 무기를 든 채로 포로가 된다면 우리나 연합군이나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동부전선이라면 현장사살감이었다.

그렇지만 톰슨은 대단한 무기였고 1930년대부터 갱 무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럴 만도 했다.

온전치 않은 다리를 끌며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데 중위가 큰 소리로 저주를 했다. 주변을 보니 2명이 사라졌다.

탈영했군. 포로가 되고 싶었겠지. 거점에서 봤는데 연합군은 오늘 포로를 잡지 않을 생각이야. 놈들은 화염방사기로 모두 태워버렸어.”

 

중위가 물을 주었는데 놀랍게도 술이 많이 섞여 있었다. 중위는 여러 면에서 상반된 사람이었는데 이름은 결국 알지 못했다.

노동포로가 섞인 한 무리의 시민이 지나갔다. 중위는 프랑스어로 지하에 숨으라고 말했다. 수십만 명의 러시아와 폴란드 남녀가 프랑스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는데 농장 노동자로 보였다. 그 중 한 명이 뭐라고 말대답을 했고 중위가 갑자기 가슴에 총을 쏴 죽였다.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해 둑을 무너트려 저지대가 넘쳤다. 2km 너비가 1m 넘게 물이 찼는데 한쪽에 파모Famo반궤도 트럭이 약간의 기름이 남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모두 올라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버려진 이유가 있었다. 파모는 전폭기의 좋은 사냥감이었다. 나무가 양쪽으로 우거진 긴 길을 몇 초 가기도 전에 전투기 한 대가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총탄을 퍼부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총탄이 엔진과 운전석을 꿰뚫었다. 옆으로 떨어져나간 병사는 파모의 궤도에 깔려 완전히 으스러졌다.

엔진이 불타면서 확실한 표적이 되었고 우리는 모두 뛰어내려 길 옆으로 뛰어갔다. 전투기가 돌아와 파모를 완전히 박살냈다.



전투기 공습은 아주 가벼운 예고편에 불과했고 끔찍한 공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던 길에 다른 무리를 만났고 이제 20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해군, 보병과 러시아의용군ROA(사진 참조)였다.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이 장면 기억하시나요? 두 병사가 항복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도 미군은 빈정거리며 사살합니다. 그들은 체코인이니 살려달라고 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