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러일전쟁

러일전쟁 뤼순항 전투 - 일본군의 첫 번째 승리(3부)

by uesgi2003 2016. 1. 25.


혹한에도 불구하고 소녀상 옆을 젊은이들이 지키고 있다는군요. 





러일전쟁 뤼순항 전투 - 일본군의 첫 번째 승리(3부)

 

제물포해전에서 살아남은 러시아군이 제물포에 오르던 28, 도고의 연합함대 중 1, 2, 3 구축함전대가 뤼순항 외곽에 정박한 러시아 함선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러시아 태평양소함대의 주력이 3줄로 외곽에 정박하고 있었는데 (아직 개전에 대해 모르고 있었지만) 일본과의 긴장 때문에 구축함 베스츠라슈니이Besstrashnyyi와 라스토로프니이Rastoropnyy32km 외곽에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항 입구 16km 지점에는 포함 보브르Bobr가 정찰할 예정이었지만 기관고장으로 투입되지 못했다. 그 밖에도 순양함 아스콜드Askol’d와 다이아나Diana가 전투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레트비잔Retvizan과 팔라다Pallada가 탐조등으로 외곽 정박지를 비췄다.

나머지 함선도 소등원칙을 어기고 군데 군데 불을 밝히고 있었고 근처 등대도 항구를 비추고 있어서 뤼순항 부근은 어둡지 않았다. 일본 구축함은 덕분에 방향을 잃지 않고 접근할 수 있었다.

 

뤼순항으로 접근하던 10척의 일본구축함은 멀리 경비 구축함의 조명을 보고 급히 속도를 낮추고 소등했는데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며 대열이 흐트러졌다. 선공을 맡은 1전대 구축함이 600m까지 접근했고 자정무렵에 9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잠시 후에 우스구모Usugumo, 시노노메Shinonome, 이나즈마Inazuma5발을 더 발사했다. 마지막으로 사자나미Sazanami와 오보로Oboro700m 거리에서 한발씩 발사했다.

모두 10척의 구축함이 16발을 발사했고 전함 레트비잔, 체사레비치Tsesarevich와 순양함 팔라다가 한 발씩 맞았다.



프랑스에서 건조한 전함 체사레비치 뤼순항 시절이 아니라 툴롱 정박 당시입니다. 황해전투에서 일본해군의 봉쇄망을 뚫고 탈출해 중립지에서 러일전쟁이 끝날 때까지 억류되었다가 러시아로 다시 반환되었습니다.

러시아 혁명 후에 폐기된 상당히 운이 좋은 전함이었습니다. 

 

갑자기 기습을 당한 러시아군은 5분 정도 영문을 몰라 당황하다가 일제히 포격을 퍼부어 일본구축함의 2차 공격을 막았다. 팔라다는 다행히도 석탄이 가득 벙커에 맞아 가벼운 상처였지만 다른 두 전함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레트비잔은 항구 안으로 들어가던 중에 항구 방어시설에 걸려 좌초되었다. 레트비잔과 팔라다는 한 달 후에야 항구 안으로 들어가 수리를 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러시아군 피해는 15명 전사가 전부였다.

연합함대의 첫 번째 기습은 오히려 실패에 가까웠다. 근거리까지 접근해 무방비상태의 러시아함대를 공격했는데도 한 척의 전함도 침몰시키지 못했고 45전대는 아예 적을 발견하지 못해 제물포로 귀항했다.



구축함 공격과 러시아 함선의 정박 상황입니다.



팔라다가 입은 어뢰폭발 구멍입니다. 

 

원래 계획은 구축함의 야간기습으로 러시아함대에 큰 피해를 입히면 이튿날에 6척의 전함, 5척의 무장순양함, 4척의 순양함으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뤼순항에서 약 70km 떨어진 곳에서 밤을 보낸 연합함대는 순양함 몇 척을 보내 러시아측의 피해를 확인했다.

러시아군도 기습 직후에 순양함 아스콜드, 노비크Novik, 보야린Boyarin과 구축함 6척을 보내 적을 추격하는 동시에 일본 주력의 공격을 정찰하게 했다. 일본순양함의 접근에 놀란 스타르크Stark제독은 서둘러 모든 함선의 탈출을 명령했다.

오전 9시 전후로 러시아함선이 닻을 올리자 마자 알렉세엡Alekseev이 반대명령을 내렸다. 보야린 혼자서 달아나는 일본 순양함을 추격하다가 도고의 주력과 만났고 포성을 울려 적의 접근을 알렸다.


 

러시아함대는 다시 닻을 올리고 해안을 따라 전열을 만들었다. 스타르크는 항구에 올라 알렉세엡과 협의 중이었다.

일본함대도 반대로 나란히 전열을 형성하며 8.3km 거리에서 러시아 순양함에 포격을 집중시켰다. 거리는 6.5km까지 가까워졌는데 2척의 전함과 1척의 순양함이 이탈해 전력이 약해진 러시아함대는 해안 부근에 머무르며 해안포대의 지원을 받았다.

오전 1시간 동안 뤼순항 해안포대는 147발의 포탄을 날리면서 일본해군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도고는 후퇴를 결정하고 제물포로 돌아갔고 러시아함대는 다시 뤼순항 외곽에 닻을 내렸다.

 

양쪽의 최대 전력이 마주친 29일의 해전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일본군은 9명 전사, 55명 부상의 피해를, 러시아군은 22명 전사, 105명 부상의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일본군의 포탄이 도시에 날아들어 10여명의 시민이 다쳤다.

도고의 속전속결의 대회전은 물 건너갔고 이제 뤼순항을 체계적으로 봉쇄하는 다음 작전이 시작되었다. 구축함 등이 뤼순요새를 계속 경계하는 동안 나머지 주력은 부근에 대기하고 있다가 급히 출동하기로 했다.



첫 번째 해전의 결과입니다. 워낙 장거리였기 때문에 포탄을 맞아도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당시 뤼순항은 약 1,500개의 수뢰(기뢰)를 보유하고 있었고 일본군의 상륙이 염려되는 다롄만 일대에 수뢰를 뿌리기로 했다. 해전이 벌어진 직후부터 예니세이Yenisey 수뢰함이 400개의 수뢰를 뿌렸는데 이틀 후에 유실된 이전의 수뢰와 부딪쳐 만 입구에서 침몰했다.

불행은 계속 이어졌다. 예니세이가 일본해군에게 격침된 것으로 의심해 순양함 보야린이 다시 다롄만에 들어섰다가 유실된 수뢰에 다시 큰 피해를 입었다. 213일에 배를 비웠는데 몰아 닥친 태풍에 밀려 다시 수뢰에 부딪치고 침몰했다.



초기의 수뢰설치 방법입니다. 

 

아무르Amur 수뢰함이 다시 300개의 수뢰를 뿌렸다. 2주 만에 뤼순항이 가지고 있던 수뢰의 절반을 뿌려 일본해군의 접근을 막았다. 그렇지만 당시의 수뢰기술은 원시적이어서 한 번만 태풍이 불어도 상당량이 유실되었고 1개월 후에는 겨우 절반만 남아서 큰 효과는 없었다.



수뢰함 아무르입니다. 일본해군은 나중에 러시아함선보다 수뢰에 훨씬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일본 1군이 조선 남서부에 상륙할 예정이었고 러시아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212/13일에 구축함이 야간공격에 나섰다가 기상악화로 전열을 유지할 수 없어서 실패했고 그 다음 날 밤에 4 구축함전대가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2척이 간신히 어뢰를 발사했지만 성과가 없었고 이후의 야간공격은 연기되었다.

계속되는 기상악화로 무장순양함의 항구봉쇄도 여의치 않자, 도고는 223/4일에 상선을 항구 입구에 침몰시켜 뤼순항을 봉쇄하기로 했다. 텐신마루(2,943), 호코쿠마루(2,698), 진센마루(2,312), 부요마루(1,162), 부슈마루(1,249)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아울러 좌초한 레트비잔도 어뢰공격으로 침몰시키기로 했다.

 

5 구축함전대가 좌초한 레트비잔, 경계순항 중이던 순양함 바얀과 아스콜드를 공격했지만 러시아군은 이미 일본군의 접근을 알고 있었다. 구축함은 유효거리에 접근하기도 전에 어뢰를 발사했고 모두 빗나갔다. 914전대의 어뢰정도 접근했다가 어뢰를 한 발도 발사하지 못하고 포격에 쫓겨갔다.

새벽 4, 상선단이 남쪽에서 해안을 따라 뤼순항에 접근했다. 선두의 텐신마루는 포격을 맞고 항구에서 5km 지점에 침몰했고 부요마루와 부슈마루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호코쿠마루와 진센마루가 항구입구에 도착했지만 이미 좌초해있던 레트비잔의 포격에 큰 피해를 입고 물결에 밀려 다니다가 해안포를 맞고 침몰했다.

뤼순항 봉쇄작전은 아무런 성과없이 5척의 상선만 잃고 끝났다.



상선자침으로 뤼순항을 봉쇄했다는 오해가 있는데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도고는 이튿날 1 2전대의 전함을 보내 러시아 바얀, 아스콜드, 노비크와 해안포대에 한 시간 정도 맹포격을 가했다.

러시아 순양함 3척은 모두 가벼운 피해를 입었고 해안포대도 큰 피해는 없었다. 러시아군은 4명 전사에 81명 부상의 피해가 전부였다. 하필이면 이 때에 귀항하던 구축함 브누슈이텔니이Vnushitelnyy는 오갈 데가 없어지자 부근에 숨어 있다가 좌초되었고 40분 후에 순양함 요시노Yoshino에게 격침당했다.

 

일본육군의 12사단 일부가 28일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제물포항에 상륙했고 29일에는 서울에 입성했다. 나머지 병력이 16~27일 상륙하면서 총 18,000명의 완전무장 병력이 조선을 장악했다. 23일에는 평양에 입성했다.

러시아군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2사단과 황실근위사단은 아예 대동강 하구에 상륙시키기로 했다. 3월 말까지 2개 사단은 모두 조선의 북서부에 진입했다. 그리고 해군도 진남포(지도 참조)를 기지로 삼았다.



무인지경인 것을 발견한 일본군은 제물포에 상륙했던 12시단을 아예 압록강으로 하루 만에 수송했다. 423일이 되자 근위사단과 2사단도 압록강에 도착했다.



제물포와 서울에 입성하는 일본군입니다. 



압록강 건너편에는 전력이 부실한 러시아군 2개 보병사단과 코사크 기병여단(23,000명과 62)이 있었고 일본군의 도강을 막으려고 애썼다. 일본 3개사단과 128(보조병력 포함 60,000)은 러시아군을 묶어 두고 51일에 강을 건너 배후를 공격했고 러시아군은 황급히 후퇴했다.

성공적으로 압록강을 건넌 일본군은 증원병력을 기다리며 한 달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군은 겨우 1,000명의 피해로 첫 번째 난관을 쉽게 점령했고 러시아군은 2,200명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