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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러일전쟁

러일전쟁 뤼순항 전투 - 마카롭의 전사(4부)

by uesgi2003 2016. 1. 27.


마케팅에서는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과 주도권을 잃은 채로 대응하기 급급한 사람은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뤼순항전투는 우리의 흔한 오해와 달리 양측의 훈련도나 사기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발트해함대의 도착을 기다리며 주도권을 잃고 단기적인 대응만 한 지휘부가 뤼순항참패의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이후에 벌어질 쓰시마해전의 발트해함대와 비교하면 뤼순항 지휘관은 나폴레옹급이었습니다만.

 


러일전쟁 뤼순항 전투 - 마카롭(프)의 전사(4부)


러시아해군이 육군의 북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뤼순항을 다시 한 번 공격하기로 했다. 전대를 모은 도고는 39일에 뤼순항으로 향했다. 구축함이 선두에 서서 항로에 있는 재수없는 함선을 공격하거나 좌초된 레트비잔을 어뢰로 공격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레트비잔은 이미 항구 내로 들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항로에는 러시아 함선도 없었다. 1구축함전대와 3구축함전대는 양쪽 방향으로 순항을 했고 때마침 러시아군도 2개 구축함전대가 같은 지역에서 정찰을 하고 있었다.

마투세비치Matusevich전대는 해안을 등지고 있어서 잘 안보인 반면에 일본 1전대는 달을 등지고 있어서 러시아군이 유리한 입장이었다.

 

두 전대는 불과 3~400m 거리에서 맞대결을 벌였고 일본전대는 구축함 3척이 모두 손상을 입었지만 곧바로 벌어진 3전대의 전투에서 그 피해를 되갚아주었다.

마투세비치전대보다 일찍 항구를 빠져나왔던 레슈이텔니이Reshitelnyy와 스테레구슈치이Steregushchiy는 다롄만 일대를 정찰하다가 3전대와 마주쳤다. 스테레구슈치이가 기관고장만 일으키지 않았어도 약간의 피해만으로 끝났을 전투였다. 16노트까지 속도가 떨어져서 일본군을 따돌릴 수 없었고 포위된 상태에서 40분 동안 포탄을 두들겨 맞았다. 결국 오전 10시경에 대부분의 수병과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귀환한 구축함의 경보를 받은 순양함 바얀과 노비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일본전대가 물러난 후였고 멀리서 일본 주력함대가 보였기 때문에 급히 귀항해야 했다.

 

도고는 라오티에샨Laotieshan반도 뒤에서 뤼순항을 곡사포격할 생각이었다. 한 번에 전함 3척씩 뤼순항에서 11km 떨어진 지점에서 208mm305mm 포탄을 퍼부었지만 러시아군의 피해는 미미했다.

7발만 뤼순항에 떨어져 4명 전사와 24명 부상이 전부였다. 11명의 시민도 사상당했다. 러시아군은 일본함대의 위치를 몰라 대응사격하지 못해 일방적인 포격을 퍼부었는데 그 효과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도고는 전 함대를 이끌고 진남포로 되돌아갔다.

 

러시아군은 첫 번째 해전의 패배에 대한 문책으로 스타르크를 마카롭Makarov으로 교체했다. 그는 상페테르부르크를 떠나 38일에 뤼순항에 들어왔다. 그는 도착하자 마자 대대적인 훈련을 시작했고 러시아함대의 기동은 무척 기민해졌다. 항구를 벗어나는 시간은 겨우 2.5시간(이전에는 10시간)밖에 안 걸렸다.

손상된 함선의 수리도 박차를 가했고 3 9일의 공격 후에는 반도에 관측병을 배치해서 대응포격으로 반격할 수 있게 했다. 열정적인 신임제독은 뤼순항 전체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



명제독은 아니었어도 당시 전장에 투입할 수 있었던 지휘관 중에는 최고였던 스테판 마카롭입니다. 그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뤼순항전투는 향방이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도고는 심상치 않게 변한 뤼순항의 움직임에 놀라 320일에 1, 2, 3전대와 4, 5구축함전대를 이끌고 뤼순항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어뢰정이 선두에 서서 항로에 있는 함선을 야간공격하려고 했지만 별 성과없이 쫓겨나 되돌아왔다.



마카롭은 일본구축함의 출현을 보고 모든 전함의 이동을 명령했지만 아직 만조가 되지 않아서 전함을 항구에 머문 채로 순양함 바얀, 아스콜드, 디아나, 노비크와 15척의 구축함만 항구 밖으로 나갔다.

전함 푸지Fuji와 야시마Yashima가 떨어져 나와 항구에 있는 러시아전함을 향해 곡사포격을 가했다. 마카롭이 관측병을 배치해 둔 덕분에 러시아해군도 이번에는 일방적으로 숨어있지 않았다. 전함 레트비잔과 포베다가 일부러 선체를 기울여 주포를 더 올린 후에 응사를 했고 일본의 두 전함으로 정확하게 포탄을 날려보냈다.

 

포탄을 맞은 후지와 야시마는 급히 선회기동을 하며 피했다. 결국 일본 연합함대는 지난 포격보다 약간 더 먼 거리에서 98발을 날렸지만 시민까지 포함해서 겨우 6명 전사, 8명 부상의 전과만 올렸다. 러시아해군은 29발만 발사했는데도 후지의 선수 포탑을 맞췄다.

사기가 떨어진 일본함대는 정오를 넘겨 진남포로 되돌아갔다.


(혹시나 싶어서 설명하면10km 밖에서 쏜 포탄은 전함의 중장갑을 절대로 뚫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함이 장거리에서 수십 발의 포탄을 맞는다고 해도 탄약고나 기관부와 같은 결정적인 곳만 피한다면 무사히 귀항할 수 있었습니다.

어뢰나 수뢰는 포탄과 달리 물에 잠기는 흘수선 아래에 구멍을 내기 때문에 아무리 전함이라고 해도 침몰하거나 몇 개월 동안 전력이탈하게 됩니다.)

 

포격이 별 소용이 없자 도고는 상선자침을 다시 한 번 시도하기로 했다. 치요마루(2,708), 푸쿠이마루(2,944), 야히코마루(2,692), 요네야마마루(2,693) 4척을 선택했다.

326일 자정, 어뢰정 6척의 호위를 받은 상선이 지난 번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해안을 따라가지 않고 바로 항구로 향했고 당연히 러시아군에게 발각되었다. 해안포대와 함께 포함 보브르와 오트바즈니이Otvazhnyy, 순찰 중이던 구축함 실니이Silnyy와 레슈이텔니이가 포문을 열었다.

푸쿠이마루와 요네야마마루는 어뢰를 맞고 침몰했고 치요마루와 요히코마루는 포격을 맞고 엉뚱한 위치에서 침몰했다.

구축함 실니이가 일본 어뢰정 아오타카와 추바메의 공격을 받아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일부러 좌초시켜 침몰을 피했다. 일본해군은 이 전과로 만족해야 했다.


 

도고는 47일부터 수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는데 악천후 때문에 일주일 후에야 작업이 시작되었다. 서쪽 만에 60개의 수뢰를 설치해놓고 새벽에 순양함전대가 뤼순항의 러시아함대를 수뢰지역으로 유인해내고 그 동안 본대가 순양함을 구원한다는 계획이었다. 최소한 몇 척의 전함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수뢰함이 작업을 하는 동안, 8척의 러시아 구축함전대가 뤼순항을 떠나 정찰을 했고 그 중에 구축함 스트라슈니이와 스멜리이Smelyy가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미확인 전대를 본대로 알고 합류했다.

새벽이 되어 날이 밝자 적인 것을 안 스트라슈니이가 달아나려고 했지만 귀항 직전에 침몰했다.

 

마카롭은 순양함에게 즉시 앞바다로 나가 일본군의 접근을 막게 하고 전함의 출동을 명령했다. 순양함 바얀이 가장 먼저 전장에 도착해 5명을 구조했다. 순양함 아스콜드, 디아나, 노비크, 전함 페트로파블롭스크Petropavlosk(마카롭의 기함)와 폴타바Poltava가 달려와 접근하던 일본 3전대와 맞섰다.

데와Dewa는 작전대로 짧은 교전 후에 남쪽으로 내려가며 러시아함대를 유인했다.



건조 직후의 페트로파블롭스크입니다. 배수량 12,000, 길이 110m, 305mm 4문을 갖춘 핵심전력이었습니다. 전쟁 초반, 일본은 러시아함대 기함과 제독을 동시에 잡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마카롭은 전함 페레스베트Peresvet와 포베다가 합세하자 일본 순양함전대를 추격하다가 도고의 전함전대가 보이자 유인책인 것을 알아챘다. 귀항을 명령했지만 그의 기함은 전날 펼쳐놓은 수뢰지역에 들어가 큰 폭발을 일으키며 2분 만에 침몰했다. 마카롭제독과 모든 수병이 모두 전사했다. 전함 포베다도 수뢰를 건들였지만 간신히 부력을 유지하며 귀항했다.




일본은 겨우 수뢰 60개로 로또당첨과 같은 행운을 잡았습니다.  


기세가 오른 도고는 415일에 뤼순항을 포격했다. 새로 합류한 장갑순양함 니신Nisshin과 가스가Kasuga가 그 임무를 맡아 12km 지점에서 254mm 185발을 발사했다. 시민을 포함해 22명이 사상당한 대신에 러시아군도 항구에 정박 중이던 레트비잔, 포베다와 세바스토폴Sevastopol이 관측병의 유도에 따라 니신을 맞춰 물러나게 만들었다.



러시아가 1989년 발행한 마카롭제독 기념우표입니다. 

 

페트로파블롭스크가 침몰하고 포베다가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일본해군은 2개월 동안 바다를 완전히 지배했고 일본육군 2군은 손쉽게 만주에 상륙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