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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러일전쟁

러일전쟁 뤼순항 전투 - 황해전투(6부)

by uesgi2003 2016. 2. 7.


고향이 서울이고 친인척이 모두 서울에 사시니 명절분위기가 안나는군요. 


뤼순항전투까지만 정리할 것인지, 쓰시마(동해)해전까지 정리할 것인지 고민이군요.



러일전쟁 뤼순항 전투 - 황해전투(6부)


5월말부터 수리 중이던 러시아전함이 속속 전열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예전의 전력으로 복귀한 뤼순항함대는 연합함대와 맞설 정도가 되었다. 이제 뤼순항 봉쇄를 뚫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할 시기만 남았다.

총독 알렉세엡은 뤼순항이 본토와 단절되자 봉쇄를 뚫고 이동하라는 명령을 보냈다. 뤼순항함대를 지휘하던 비트게프트Vitgeft도 마음을 굳혔다. 블라디보스토크함대는 612일에 일본 가미무라함대를 상대하기로 했고 뤼순항함대도 620일에 출항하기로 했다가 23일로 연기했다.



전략면에서는 무능했지만 전술운용에서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했던 빌헬름 비프게프트입니다. 하필이면 황해해전 막판에 전사해서 뤼순항함대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622일 밤, 7척의 구축함이 먼저 진로를 확보했다. 23일 새벽, 일본구축함전대가 접근하자 짧은 포격전 끝에 귀항했고 주력이 항구를 나서기 시작했다. 먼저 수뢰제거함, 어뢰포함 2, 구축함 7척이 나섰고 그 뒤를 순양함 디아나와 아스콜드 그리고 세바스토폴, 폴타바, 페레스베트, 바얀, 팔라다, 체사레비치, 레트비잔과 포베다가 이었다.

오전 8시에는 함대전체가 앞바다에 나갔고 유실된 수뢰를 제거하느라 잠시 대기했다가 130분부터 남쪽으로 향했다.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답답한 입지입니다. 북한해군도 이런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구축함전대의 보고를 받은 도고는 며칠 전부터 심상치 않은 러시아함대의 움직임과 뤼순항 내부의 간첩의 보고를 받았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았고 즉시 대응에 나섰다.

어뢰정까지 포함해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함선을 투입했다. 러시아함대가 수뢰를 제거하느라 5시간 동안 지체하는 동안 연합함대는 뤼순항 부근에서 작전 중이던 소함대까지 불러들였다.  

오후 430, 전함 6, 장갑순양함 1, 순양함 4, 어뢰포함 2, 구축함 7척의 뤼순항함대는 남동쪽으로 선수를 돌렸고 초저녁이 되자 앞을 가로막은 연합함대와 일전을 벌일 것처럼 보였다.

 

비트게프트는 갑자기 귀항을 명령했다. 러시아함대의 갑작스런 반전에 당황한 연합함대는그 뒤를 추격했다. 일몰까지 겨우 20분 밖에 안남았기 때문에 구축함 14척과 어뢰정 20척을 보내 러시아함대를 공격하게 했다.

밤새도록 39발의 어뢰를 발사했지만 오히려 아군함선을 맞췄고 6척이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군은 전함 세바스토폴이 경로를 벗어났다가 수뢰를 건드려 큰 피해를 입어 이튿날 견인되어 귀항했다.

24일 오전 8, 모든 함선이 무사히 귀항했다.


 

노기는 9사단이 도착하자 726일에 뤼순항 외곽방어선을 공격했다.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러시아군은 뒤로 물러나 새 방어선을 폈지만 워낙 부실한 상태여서 곧바로 밀려났다. 726~30일의 전투는 일본군의 승리(6,000명 피해, 러시아군 1,850)로 끝났다.

뤼순항 외곽의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양측의 함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적진지에 포격을 퍼부으며 아군을 지원했다. 순양함 디아나가 귀항하지 않고 그대로 머무르자 일본 어뢰정 전대가 공격에 나섰다가 오히려 3척이 피해를 입었다. 75일에는 경순양함 카이몬이 수뢰와 충돌해 침몰했다.




당시의 일본군입니다. 러시아군도 봐야겠죠?



 

일본구축함과 어뢰정 공격이 끊이지 않자, 러시아군은 테헤Tehe만에 3~5척의 구축함을 상시배치해놓기로 했다. 일본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723일 밤에 전함 미카사와 후지의 증기보트 2척에 356mm 어뢰를 2발씩 장착한 후에 몰래 기습했다.

이런 식의 기습을 예상하지 못한 러시아구축함은 200m까지 접근했는데도 알아채지 못했고 부라콥Burakov이 침몰하고 보에보이Boevoy가 큰 피해를 입었다.

그 이후에도 러시아함대는 아군의 요청에 따라 전진해서 일본군구축함전대를 몰아내고 응원포격을 하다가 적의 전함전대가 출동하며 귀항하는 신경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일본 순양함 치요다와 러시아 중순양함 바얀이 수뢰에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군은 87일부터 120mm 포로 뤼순항의 함선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제 대형선박을 뤼순항에 그대로 둘 수 없었고 알렉세엡도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810, 뤼순항함대는 항구를 나섰다. 수뢰에 큰 피해를 입은 순양함 바얀을 제외한, 전함 6, 순양함 4, 구축함 8, 병원선 몬고릴자Mongolija가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구축함 레시텔니이Reshitelnyy는 체푸Chefoo로 가서 총독에게 함대출발을 알리기로 했다.



아직은 멀리에서 대충 포격을 하는 단계입니다. 뤼순항외곽의 고지를 내주면서 조준포격을 당하게되죠. 

 

일본군은 짙은 안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함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도고는 흩어진 모든 함선에게 집결명령을 내리고 러시아함대의 진로를 막기로 했다.

선봉의 구축함이 도고의 1전대가 북동쪽에서, 3전대, 3구축함전대와 14어뢰정전대가 남서쪽에서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정오가 되자 마츠시마와 하시다테가 북쪽에서 접근했고 친옌Chin Yen 30분 후에 합류했다. 나머지 전대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중일전쟁에서 노획한 친옌입니다. 일본해군은 러일전쟁에서도 상당한 전함을 노획합니다. 

 

러시아함대는 세 방향에서 포위당했고 귀항하는 길만 열렸다. 비트게프트는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기로 했다. 노비크를 아스콜드 옆으로 옮기고 속도를 13노트까지 올리게 했다. 일본함선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주간전투에서는 전함과 장갑순양함만이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전력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러시아전함 6척이 일본전함 5척과 장갑순양함 4척의 대결이었다.

구축함과 어뢰정의 주간공격은 자살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는 북서쪽에서 다가오는 도고의 주력을 상대하기로 했다.



황해전투는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도고는 장갑순양함 아사마의 합류를 기다리며 일부러 시간을 끌었고 근거리 포격전이 벌어지지 않도록 거리를 벌렸다.

일본함대의 기동에 맞서 반대진로를 잡은 러시아함대는 갑자기 나타난 수뢰를 피하느라 잠시 혼란이 일어났지만 곧바로 전열을 가다듬었다.

도고는 러시아함대의 회피기동을 가장 끝 전함을 노리는 공격으로 착각하고 즉시 방향을 바꿔 러시아함대로 향했다. 15km 거리에서 장갑순양함 니신이 선두에 서고 기함 미카사가 가장 뒤에 처졌다.



일본에게는 영광의 상징인 미카사입니다. 



패전후 미군의 놀이터였다가 지금은 복원되어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니신이 먼저 사거리를 측정하는 첫 발을 발사했고 나머지 전함도 포격을 시작했다. 비트게프트는 도고의 생각을 읽고 일본함대와 반대방향으로 선수를 돌려 블라디보스토크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도고는 아스콜드에게 집중포격을 퍼부은 후에 전함을 180도 선회시켜 러시아함대와 나란히 항해했다. 비트게프트는 선회를 해 일본함대와 거리를 9.2km까지 좁혔지만 속도를 14노트로 높이며 일본함대의 추격을 뿌리치고 남진하기 시작했다.

이제 대한해협까지 달리면 탈출성공이었다. 아스콜드가 많은 포탄을 맞았지만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고 전력을 그대로였다. 일본함대도 미카사, 아사히와 니신이 포탄을 맞았다. 워낙 장거리에서 벌어진 포격전이어서 겨우 1~1.5%만 적중했고 그나마도 큰 위력이 없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신형이었던 일본전함은 16~17노트의 속도로 러시아전함을 추격하고 있었고 오후 330분에는 3전대가 아스콜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스콜드는 폴타바의 도움을 받아 공격을 물리쳤지만 점차 뒤처지기 시작했고 러시아함대의 속도는 13노트까지 떨어졌다.

이제 일전을 피할 수 없었다. 비트게프트는 밤까지 어떻게든 버틴 후에 어둠을 틈타 추격을 뿌리치기로 했다.

오후 5, 전함 폴타바가 먼저 전투에 휘말렸다. 다른 전함도 6.5km 거리의 미카사에게 포격을 집중시켰다. 일본함대도 이번에는 하나의 목표물에 포격을 집중시켰지만 러시아함대의 순서가 자주 바뀌면서 혼란이 일었다.


 

시간이 촉박했던 도고는 함대를 접근시켰고 갈수록 포격전이 치열해졌고 명중탄도 많아졌다. 그렇지만 한시간 동안의 전투에서 양측 모두 승기를 잡지 못했다.

이제 한 두 시간 후면 어두워지고 기함 미카사가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도고는 더 이상의 추격을 단념하려고 했다. 하필이면 바로 이 때에 러시아기함 체사레비치의 함교에 포탄이 작렬했다. 비트게프트와 참모는 장갑지휘소에 머무르지 않고 전투를 지휘하다가 포탄에 목숨을 잃었다. 참모장 마투세비치Matusevich와 다른 참모장교는 중상을 입었다.

잠시 후에 또 한 발이 장갑지휘소에 작렬해 산산조각을 냈고 조향장치에 큰 피해를 입혔다. 비트게프트 대신에 지휘를 맡았던 이바놉이 중상을 입었고 체사레비치는 제 자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러시아함대는 대혼란을 일으켰고 도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허둥지둥대는 러시아전함에 포격을 집중시켰다.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함대는 위기에 몰렸다. 저녁 7, 전함 레트비잔의 함장 슈체스노비치Shchesnovich는 자신의 배를 일본함대로 돌격시켜 일본함대의 전열을 흩어 놓았다.

겨우 15분에 불과한 시간 동안 러시아함대의 혼란은 수습되었고 심지어 체사레비치도 조향장치를 수리해 방향을 잡았다. 그렇지만 새로 지휘를 넘겨받은 우크톰스키이Ukhtomskiy는 뤼순항 귀항을 결정했다. 포베다와 체사레비치가 그 뒤를 따랐고 레트비잔 함장도 귀항을 결정하자 세바스토폴과 폴타바도 선수를 돌렸다.

 

아스콜드 함장 레이첸슈테인Reytsenshteyn은 블라디보스토크로 계속 가기로 결정했고 구축함 부르니이, 베스스트라슈니이, 베스포슈차드니예과 베스슘니이가 그 결정에 동참했다.



아스콜드는 탈출 후에 상하이에서 억류되었습니다. 그 후에 러시아로 다시 인도되어 1차대전에 참전했습니다. 


3전대의 순양함과 5구축함전대가 그 앞을 가로 막으려 했지만 아스콜드와 노비크는 20노트로 속도를 높여 봉쇄를 뚫고 탈출했다. 속도가 느린 팔라다와 디아나는 멈칫거리다가 저녁 9시에 페레스베트와 합류해 뤼순항으로 선수를 돌렸다.

도고는 적의 주력이 뤼순항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 구축함 18척과 어뢰정 31척에게 야간공격을 명령했다. 그렇지만 서로 손발이 맞지 않은데다가 너무 어두워진 상태라 겨우 11척만 어뢰를 발사했고 49발 중 어느 것도 러시아함선을 맞추지 못했다. 오히려 어뢰정 38호가 피해를 입었다.


* 후반전만 참전

** 기록에 따라 더 많은 피탄

 

흔한 오해처럼 러시아수병의 훈련이나 사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러시아군은 겨우 1%의 명중률을 보여 일본군의 2.4%와 큰 차이를 보였지만, 일본군의 명중률은 조향장치에 문제가 생긴 체사레비치에 집중된 덕분이었다.

양쪽 모두 장거리 포격전에 익숙하지 않았고 훈련상태도 비슷했다. 러시아함대의 전술도 훌륭했다. 기동전으로 일차 봉쇄를 돌파했을 뿐만 아니라 전투가 벌어졌을 때에도 적의 기함 미카사에 포격을 집중시켰다.

황해전투는 전함의 속도와 운이었다. 일본함대는 속도가 훨씬 빨랐고 곧바로 추격해서 러시아함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비트게프트가 전사하지 않았더라도 일본함대의 추격을 뿌리치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갈 수 있었을 지는 의문이다.

 

황해전투에서 러시아군은 한 척의 배도 잃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전력이 급감했다. 3척의 순양함과 4척의 구축함이 봉쇄를 뚫고 전력에서 이탈했고 마카롭에 이어 비트게프트를 잃어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뤼순항에는 이제 반전을 이끌어낼 지휘관이 없었다.

뤼순항 지휘관회의에서 더 이상의 탈출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해군을 뤼순항 방어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수병을 해병대로 편입하고 전함의 경포와 중포를 모두 육지포대로 옮겼다. 해상활동은 소함선의 정찰, 수뢰설치와 제거작업으로 국한했다.

 

810일 이후 뤼순항함대는 존재가치를 잃었다



뤼순항함대의 기함 체사레비치의 위용입니다. 



선체의 두터운 장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칭타오로 피신한 후의 처참한 모습입니다. 



연합함대 미카사가 25발을 맞고도 거뜬했듯이 장거리 포격전은 큰 위력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