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뉴스의 팩트체크는 여러 면에서 많은 귀감이 됩니다. 보통 마케팅에서도 결론을 도출하고도 다시 한 번 크로스체크를 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의외로 중요한 팩트가
발견되어서 결론이 뒤집어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지식이 크게 모자라는 기자들이 마구 휘갈긴 기사는 두말 할 필요도 없죠.
어제의 지진으로 구마모토성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연히 이 성에 대해 각종 커뮤니티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무척 위험한 왜곡(국뽕이라고 하죠?)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더군요.
구마모토성은 조선의 울산성을 모방했고 임진왜란에서 끌고 간 조선기술자들의 기술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조선의 축성기술을 차용했다는 것이죠. 중국 만물창조설만큼이나 국제적인 비웃음거리가 될 주장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시 일본의 축성기술은 우리보다 훨씬 앞섰고 그 중에서도 당대최고라는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의 경험을 바탕으로 심혈을 기울여 축성한 것이 구마모토성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으로는 조선의 기와문양 정도만 차용한 것으로 압니다.
조선기술자를 대거 동원한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 조선인 포로를 대거 동원한 것입니다.
왜 이런 황당한 주장이 퍼졌을까요? 어설픈 가이드를 따라다니던 기자들이 기본 중의 기본인 팩트체크를 안하고 기사로 뿌린 것이 발단으로 보입니다.
찾아보니 하나 둘이 아니더군요. 일본 구마모토여행 기사에서는 거의 울산성을 모방했고 조선기술자를 동원했다고 썼더군요.
상당히 신뢰도 높았던 모 매체의 여행기입니다. 실제로 몰랐던 설명부족이던 상관없이 이 내용만 보면 조선의 축성기술을 차용해서 지은 것처럼 오해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에도 아예 축성 기본기술까지 조선의 것이라는 국뽕이 심어진 것이고
계속 퍼져 나가서 이제는 그게 마치 사실인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가장 쉽게 확인할 방법은 울산성을 가보는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성곽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결국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는 수 밖에 없는데, 정식 명칭은 울산왜성입니다.
가토 기요마사를 잡을 뻔 했던 너무나도 아쉬운 조명연합군의 울산성(왜성)전투입니다.
울산왜성이라고 했죠? 울산학성으로도 불리다가 고려시대의 성과 혼동한 것으로 수정되어 울산왜성이 정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학성공원이 조성되면서 울산왜성의 그나마 부실한 성터가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울산 지역에 일본군이 축성한 성이기 때문에, 울산왜성이라 불린다. 축성 당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은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도산성(島山城)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조선 후기에는 모습이 시루와 같다고 하여 증성(甑城)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었으며, 이에 따라 주변 마을도 증성리라고 불렸다.
요즘 정리하는 임진왜란 비화에서 아직 정리하지 못했지만 함경도에서 철수한 가토 기요마사는 다른 다이묘와 함께 남해안 일대로 대대적인 철수를 했고 거기에 성을 쌓고 조명연합군의 반격에 대비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가토 기요마사가 설계했고 다른 다이묘가 완공하자 거기에 들어가 최전방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울산왜성전투 그림에도 일본(왜)성의 독특한 모습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형적인 일본성입니다. 그래서 복원도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울산왜성 소개자료에도 일본식 축성인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왜성에서 유서를 쓸 정도로 죽음직전까지 몰렸기 때문에 구마모토성은 장기농성을 벌일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심지어 다다미조차도 고구마줄기로 엮어서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죠. 우물도 120개를 팠을 정도입니다.
정작 우리의 원흉 가토 기요마사는 다행히도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구마모토성에서 짧은 입주생활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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