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세/러시아

코사크의 역사 - 예르마크의 시베리아 탐험(2부)

by uesgi2003 2016. 8. 20.


코사크의 역사 - 예르마크의 시베리아 탐험(2부)


양쪽이 벼르고 있던 전투는 재미있는 사건 덕분에 코사크족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코사크족의 대포가 전투 중에 가장 용맹스로운 부족의 손에 들어갔다. 그들은 대포를 끌고 다니다가 전진하는 코사크족에게 날벼락을 날릴 생각이었는데 무당이 대포에 불을 붙여도 터지지 않았다.

장전법을 몰라 안 터진 것인데 마법의 힘이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믿고는 깊은 숲속으로 달아났고 타타르족이 코사크족을 상대하게 되었다. 코사크족도 숫자가 크게 줄어 겨우 300명 밖에 안되었지만 타타르족도 동맹군이 달아나면서 비슷한 숫자로 줄어들었다.

 

시베리아 제국의 운명은 숲에서 벌어진 작은 전투에서 결정되었다. 우랄 일대와 엄청난 귀중품을 노획한 예르마크는 이제 이반뇌제에게 지난 과오에 대해 용서를 빌고 사면을 청하기로 했다. 예르마크가 모스크바공국에 바치겠다는 영토는 한 국가와 맞먹었다.

마찬가지로 머리에 현상금이 걸린 부관을 보내 이반뇌제에게 코사크족의 업적과 방대한 영토를 알렸다.


 

이반뇌제는 보고를 받고 예르마크 일행을 용서했다. 예르마크가 헌상한 고급 털가죽 60자루를 반갑게 받아들이며 시베리아를 합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반은 부관에게 자신이 걸치고 있던 망토를 주고 예르마크에게는 화려한 흉갑을 선물했다.

병력이 크게 줄어든 예르마크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신식군대에서 500명을 볼코우스키공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 병력은 황궁특사가 아닌 코사크군의 지휘를 받게 해서 예르마크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지만 예르마크의 전설적인 모험도 그 끝이 보였다. 이반뇌제가 예르마크를 위해 파견한 병력이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겨울이 오자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식량이 곧바로 바닥났다.

보굴과 오스티아크족은 한 겨울에 사냥을 하고 두터운 얼음을 깨고 낚시는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코사크족의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주변 부족마을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면서 이들이 모두 달아났다.

황궁특사가 가장 먼저 쓰러져 죽었다.

 

코사크족의 곤란을 알게 된 원주민이 집결해 대담하게 코사크 진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를 다녀왔던 부관이 식량을 찾으러 나갔다가 매복에 걸려 죽었다.

진영 안에서 굶주려 죽거나 얼어 죽을 날을 기다리던 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한 보하리오트Bokhariot 상인이 모스크바공국의 새로운 교역경로를 찾아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보하이오트 카라반은 타타르족이 겁나 바가이 강변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코사크족은 카라반을 마중나가 호위하기로 했다.



 

타타르족이 코사크족을 진영 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술책이었다. 예르마크는 숲지대에서 포위되어 공격을 당하다가 이르티시Irthish의 섬으로 도망쳤다. 여기에서도 탈진해 잠들었다가 기습을 받았다.

예르마크는 몇 명을 이끌고 탈출로를 만들었고 그를 두려워했던 원주민은 그대로 길을 열어주었다. 그렇지만 예르마크는 발을 헛디뎌 급류에 빠졌고 이반뇌제에게서 받은 두터운 흉갑이 바위에 걸려 그대로 빠져 죽었다.

예르마크를 기리는 무훈시는 그의 최후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타타르족은 갑옷에 새겨진 거대한 금장 독수리로 족장의 시체를 알아보고 장대 끝에 시체를 걸어 두고 6주 동안 화살표적으로 삼았다. 영웅의 머리 위에 떼를 지어 떠돌던 청소부 새들도 그의 시체를 건드리지 않았다.

타타르족에게는 그가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끔찍한 증거였다. 밤에는 그의 머리 주변에 신성한 불빛이 반짝였다. 그의 사체에서는 어떤 악취도 나지 않았다.”


 

이런 징조가 두려워진 타타르족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 장사를 지냈고 그의 무덤은 몇 세대에 걸쳐서 타타르 요술사나 무당의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지도자를 잃은 코사크족은 안전지대로 달아났고 예르마크가 탐험하고 점령한 오지는 그대로 버려졌다가 코사크족이 이후 200년 동안 예르마크의 전례를 좇아 탐험하고 이주하면서 러시아의 땅이 되었다.

알라스카 역사를 연구하는 골더 교수에 따르면 코사크족이 동부 시베리아와 미국 서부해안을 탐험했다고 한다.

 

표트르대제Peter the Great는 죽어가면서도 아시아와 미국대륙이 이어지는 경로가 있는 지를 궁금해했다.  그는 코사크족에게 직접 탐험명령을 내렸었다.

명령한 대로 캄차카Kamchtka까지 나아가서 아시아와 미국이 연결되어 있는 지를 확인하라. 남북방향과 동서방향 모두를 확인하고 네가 본 것을 기록하라.”

 

베링Behring해협의 거친 물결만 아니었다면 코사크 탐험대는 영국탐험가보다 훨씬 빨리 북미서부해안을 발견하고 러시아제국에 편입시켰을 수도 있었다. 코사크 장교는 알라스카에 발을 디딘 첫 번째 백인이었고 알라스카를 정복해 러시아에 합병시켰다.

시베리아 관구수도 옴스크Omsk에서는 예르마크의 기념일을 정하고 퍼레이드로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알라스카를 1741년에 합병한 러시아는 크림전쟁으로 인한 재정악화 때문에 1867년에 평방km1달러, 720만 달러를 받고 미국에 매각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냉장고를 사들였다고 온갖 비난이 들끓었지만 금, , 석유 등이 발굴되면서 제정러시아가 미국에 헌납한 것이나 다름없는 역사상 최악의 삽질로 판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