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할베 포위망 탈출 4부
우리가 가는 도로가 여러 길로 나뉘어 졌는데 좁은 길은 차량과 사람들로 꽉 막혀 있었다. 교통정리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전차, 반궤도차량, 오토바이와 트럭이 마치 결승선을 향하는 것처럼 마구 앞으로 나갔다. 양쪽의 들판에서는 전투소음이 계속 들렸다. 아군이 퇴로를 지켜내려고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도로 옆 덤불 위에는 온갖 부대표식이 널려 있었는데 장교와 하사관이 포로가 될 경우를 대비해 뜯어내 버린 것들이었다. 대부분 국방군과 공군 표식이었고 간혹 무장친위대의 해골마크가 보였다. 그래봐야 소용없었다. 무장친위대는 고급 위장복만 봐도 바로 구분되었고 상의를 벗기면 왼팔 윗부분에 혈액형문신Blutgruppentätowierung을 찾아낼 수 있었다.
무장친위대는 서쪽으로 탈출하지 못하면 차라리 자살하는 편이 나았다. 동부전선에서 자행한 잔인한 행위 때문에 적군은 이를 갈며 찾아다녔다.
이제 숲 서쪽 끝, 북남 아우토반Autobahn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공군사관생도가 가득 탄 트럭을 강제로 세우고 10km는 더 갈 수 있는 가솔린을 빼앗았다. 우리가 출발하자 뒤에서 온갖 욕설과 저주가 들렸다. 미안하지만 트럭보다는 전차가 더 중요했다.
외곽에 접근하자 갑자기 로켓이 대열 후미에 쏟아졌다. 카츄샤Katyusha 로켓은 커다란 나무를 부러뜨렸고 사람들 머리 위로 불타는 조각들이 떨어졌다. 급히 숲을 벗어나지 않으면 모조리 불타 죽을 것이 분명했다.
2차대전 당시의 아우토반입니다.
선두에서 무장친위대 전차병이 달려오더니 모든 전차와 장갑차는 선두로 이동하라고 소리쳤다. 무장친위대 보병들이 경차와 피난민을 도로 옆으로 밀어내며 전차통로를 만들어주었다. 카포와 내 판터는 아직 비키지 않은 차를 뭉개며 급히 앞으로 나아갔다. 심지어 온전한 88mm 포도 밀어냈는데 그만 구덩이에 처박히고 말았다.
헤처Hetzer가 우리 뒤를 따라왔다. 작고 가볍지만 어떤 전투에서도 유용한 자주포전차였다. 킹 타이거의 포탑보다 가벼운 16톤 무게였다. 독일이 만들어낸 500대의 킹 타이거대신에 헤처를 몇 대나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2천대? 3천대? 전쟁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전차훈련연대의 4호전차도 합류했는데 전차장은 개전초기 폴란드를 침공하던 당시의 검은 전차복을 입고 있었다.
헤처는 이미 퇴물이 된 38t 전차의 차체를 좀 더 늘려서 만든 가성비 최고의 구축전차였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얼마나 작은 체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장갑이 8~60mm에 불과했고 단포신 75mm를 무장한 16톤의 경전차였습니다만, 이렇게 은폐하기 쉬웠고 게 3~4대가 소련군의 중전차를 협공해서 격파했습니다.
우리는 전방의 채석장 끝의 나무들 사이에 산개했다. 채석장은 부상병으로 가득했는데 자신들을 버리지 말아 달라는 애원으로 시끄러웠다.
그물과 나뭇가지로 위장한 킹 타이거도 3대가 은폐해 있었다. 할베를 탈출할 때에는 없었던 제10 무장친위대전차사단 병력으로 거의 전멸 직전이었다.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얼굴에 화상을 입은 소령이 지휘했다. 얼굴은 공포와 피로가 역력했는데 술과 진통제로 마지막 힘을 내고 있는 눈길이었다.
소령은 “저기가 아우토반이다. 저 너머에는 철로가 있고 20군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카포는 “적군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적군이 기다리고 있겠지. 3일 전에 이 길을 지나 베를린으로 갔네. 거의 전 병력이 북쪽으로 향했지만 우리의 탈출을 예상하고 있겠지. 오늘 오전에 적군 장교를 하나 잡았는데 베를린에서 오늘 밤에 기갑부대가 내려온다고 하더군. 아우토반을 막을 계획인데 아우토반은 방어하기 더 없이 좋은 지형이네. 그들이 먼저 왔다면 우리는 절대로 통과할 수 없겠지.”
소령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씩 웃었다. “미군 담배네. 아르덴느Ardennes에서 담배트럭을 잡았지. 한 모금씩 하게.”
적군 전투기가 외곽을 돌며 우측에 로켓탄을 쏘아 댔지만 우리는 모두 담배를 한 모금씩 빨았다. 처음으로 담배를 피던 그 향긋한 내음이 떠올랐다. 해처 전차병이 “정말 좋은 담배군요”라고 말했다.
“미국인의 생활수준이겠지. 미국인이 이 나라를 재건하려면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할걸세.” 적군의 기총소사가 가까워지자 더 이상 담배를 피지 않았다.
4호전차가 “아우토반은 어떻게 돌파할 겁니까? 중전차가 선두에 서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물었다. 소령은 우리 모두를 보며 “그렇지. 해가 저물 때에 돌파한다. 킹 타이거 3대가 선두에 서서 길목을 유지하면 나머지 모두 아우토반을 건넌다. 다른 전차는 돌파지점의 북과 남으로 산개해 경계한다. 적군이 다가오면 막아내도록. 헤처 3대와 판터 1개는 남쪽으로, 4호 전차와 다른 판터 1대는 북쪽을 경계한다”고 지시했다.
“내 무장친위대 장갑척탄병이 자네들을 지원할걸세. 다른 보병부대가 더 있을거야. 민간인 일부도 무장시키면 될테고… 이런 식으로 길목을 확보한 후에 어둠을 틈타 전원 전속력으로 통과하도록. 그 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서쪽으로 달린다. 뒤처지면 러시아 놈들 차지야.”
또 다시 씩 웃더니 “성공하면 자네들을 엘베Elbe강에서 보게 되겠지. 우리는 포로가 될테고 담배를 많이 받을거야”라고 말했다.
파코는 채석장 외곽에 서 있었다. 담요 위에 누운 부상병들은 자신의 신세를 직감하고 있었다. 카포는 “아우토반과 철로에서 두 번 더 전투가 있겠군. 선택의 여지가 없지. 적군에게 포로가 될 수는 없어. 서쪽에 가족이 있네. 시베리아 감옥에서 10년, 20년을 보낼 수 없어”라고 말했다.
“우리가 부상당하면요?” “그런 위험은 감수해야지. 뒤에 남아 다른 사람과 아우토반을 넘겠다면 이해할 수 있어. 전쟁은 이제 끝난 셈이니까 자네보고 싸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주위를 보게.”
그는 채석장 외곽의 한 나무를 가리켰다. 수백개의 표식과 계급장이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독수리장도 있었는데 마치 불운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 인생을 여기서 끝낼 수 없네.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자네는 다르겠지. 가족이 없지 않나?”
“중위님과 서쪽으로 가겠습니다”라며 포위되었던 곳에서 받았던 미지의 소녀사진을 꺼내 보였다. “자네는 이상한 친구구먼. 반은 전사이고 반은 로맨티스트야.”
나는 마지막 몰핀을 입에 털어 넣고 삼켰다. 몇 초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포탑에 뛰어 올라 헤드폰으로 지휘를 시작했다. 이제 바닥에서 애원하는 부상병은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전차엔진이 기동하기 전에 한 발씩 울리는 총성이 들렸다. 부상병 일부가 자살하고 있었다. 옆에서 건네 받은 권총을 입에 넣고 쏘았다.
나는 헤처 3대 그리고 20mm 대공포 4문을 실은 파모Famo 반궤도트럭과 함께 아우토반 남쪽을 막기로 했다. 2대의 무장친위대 하노마그 장갑차가 지원했기 때문에 상당히 강력한 전력이었다. 무장친위대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국방군이 합류했다. 밤이 되면 후미의 병력이 합류할 테니 당분간을 버틸 자신이 있었다.
해가 지자 아우토반으로 이동했다. 우리의 모든 희망이 걸린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 로도 주변은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향하면서 흘린 쓰레기가 흩뿌려져 있었다. T-34와 4호 전차가 서로 엉켜서 전소되어 있었다. 공군 정찰기는 뒤집혀 있었고 조종사 2명의 시체는 조종석에 그대로 있었다.
도로에 올라 먼지가 피어 오르자 머리 위에 러시아 정찰기가 나타났다. 대공포가 회색 예광탄을 뿌리며 쫓았는데 정찰기는 도망가기 전에 우리의 위치를 알리는 조명탄을 떨어트렸다.
나는 카포와 구형 4호전차에게 인사를 나누고 헤처와 함께 남쪽으로 향했다. 아우토반에 접근하자 멀리서 포격이 시작되었다. 나무 사이에서 붉은 섬광이 날아오더니 바로 옆의 헤처를 맞췄다. 1km도 안되는 거리였는데 헤처 차체의 윗부분이 하늘로 치솟았다.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되어 승무원이 모두 불타는데도 앞으로 계속 굴러갔다.
포수가 고폭탄으로 적이 있는 곳에 보복공격을 했다. 거대한 포신이 있는 네모난 전차가 보였다. SU 구축전차였다. 이 거대한 전차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강철요새였고 전함급 포는 어떤 전차도 격파할 수 있었다.
북쪽에 있던 킹 타이거 2대가 멈춰서 약 1.5km 거리에서 SU 전차와 교전했다. SU는 한 방 얻어맞고는 포방패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연기를 뿜어냈다.
덕분에 내 판터와 헤처 2대가 아우토반에 올라설 수 있었다. 나는 좌측에 헤처는 우측에 멈춰섰다. 하노마그의 무장친위대는 하차해서 중기관총과 판저파우스트와 함께 도로 양편에 자리잡았다. 머리 위에는 여전히 조명탄이 기분 나쁜 빛을 떨구고 있었는데 다행히 강한 바람이 불어와 남서쪽으로 날려보냈다.
SU 전차로만 나와 있어서 85mm, 100mm, 122mm, 152mm 어느 것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괴물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100mm나 152mm로 보입니다.
돌파를 책임진 킹 타이거는 소련군 전차와 포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쪽은 아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쪽을 지켜볼 수 있었다. 탁트인 들판에서 킹 타이거 한 대가 궤도가 풀리고 구동 휠이 빠졌는데도 접근하는 몇 대의 SU와 계속 교전했다.
주저앉은 킹 타이거는 탄약을 남김없이 소진하려는 듯 계속 속사했고 한발 한발 발사할 때마다 거대한 전차의 실루엣이 어둠속에서 빛났다.
들판 건너로 날아간 한 발이 SU 전차 한 대를 맞춰 해치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SU는 짙은 연기를 뿜으며 돌다가 측면을 드러냈다. 타이거는 다시 측면을 꿰뚫었고 SU의 엔진그릴이 하늘로 수백 미터는 치솟았다. SU 승무원이 밖으로 기어 나왔지만 우리 대공포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냈다.
킹 타이거는 나머지 SU 2대와 대결했다. 적군은 킹 타이거를 천천히 박살냈다. 처음에는 런닝 기어를 맞춰서 휠이 사방으로 튀더니 다음에는 포탑을 맞춰 큐폴라가 하늘도 튀었다. 킹 타이거는 여전히 포격했고 다른 타이거도 서쪽으로 향하며 다른 방어선을 돌파했다.
만신창이가 된 킹 타이거는 고폭탄으로 SU 전면장갑 아래를 쏘아 주저 앉혔다. SU 구동 휠은 동작했지만 궤도가 부숴져서 움직일 수 없었다.
다른 한 대가 우리 킹 타이거를 천천히 포격했다. 한 발은 전면장갑을 맞고 튀어 나갔고 다른 한 발은 포방패를 맞춰 금속 부스러기와 함께 차체에 떨어졌다. SU는 측면을 노렸고 킹 타이거도 포탑을 선회했다. SU는 두 발을 쏘아 엔진커버를 날려 불을 지르고 포탑 측면에 선명한 구멍을 냈다.
킹 타이거의 해치가 불꽃을 내며 날아갔다. 한 명이 밖으로 빠져 나오려고 했지만 전차가 전부 화염에 휩싸인 데다가 곧바로 탄약과 연료가 터졌다.
제가 타이거 다음으로 좋아하는 킹 타이거입니다. 헨셀 포탑과 포르쉐 포탑형이 있었는데, 전장에 투입되었을 때에는 이미 제공권을 상실한데다가 생산량도 겨우 492대 밖에 되지 않아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군 보병이 무리지어 SU에게 덤벼들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서 SU도 어쩔 수 없었고 아마 폭탄이나 판저파우스트로 끝났을 것이다.
“전면에 적입니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킹 타이거의 전투에 정신이 팔려 아우토반 남쪽을 경계하지 못했다. 큰 실수였다.
서쪽으로 흘러가는 조명탄 불빛에 비춰진 실루엣으로 보아 85mm를 장착한 T-34 여러 대였다. 1km 정도 거리였는데 배기연까지 보였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대를 부수기로 했다. 헤처 2대도 양쪽 옆으로 빠져 75mm를 적에게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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