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재는 워낙 간략하기 때문에 재미로만 볼 것을 권했습니다만 아뮤전투는 너무 심하게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영문 위키 등을 참조해서 추가설명하려고 했는데... 위키도 횡설수설이어서 정리 중에 포기했습니다.
3일 동안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애썼지만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포기하고 그냥 연재내용로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뮤전투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2차대전의 7대 전차전 - 아뮤전투
벨기에에서 벌어진 아뮤Hannut전투는 바르바로사Barbarossa작전 이전까지 세계최대 전차전이었다. 독일군은 1940년 5월 15일로 예정된 아르덴느Ardennes를 관통하는 주공을 기만하기 위해 이 전투를 시작했다.
연합군이 독일의 주공을 벨기에 통과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한 아뮤전투는 5월 12~14일에 벌어졌다.
벨기에 원정 연합군은 아뮤와 장블루Gembloux에서 반격을 받았고 프랑스 1군의 측면이 노출되면서 독일군이 영국해협English Channel까지 진격할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프랑스군은 아뮤 서쪽으로 30km 떨어진 장블루를 최대한 방어한다는 계획이었다.
프랑스군은 아뮤에 겨우 기갑사단 2개만 보내면서 전투 후에 장블루로 다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기갑사단은 독일군과 격전을 벌이며 최대한 지연전을 편 후에 장블루로 퇴각했기 때문에 명령을 완수했다.
그렇지만 독일군은 연합군이 아르덴느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전략적 승리를 거뒀다. 독일군은 아뮤와 장블루를 점령하지 못했고 프랑스군은 릴Lille로 퇴각해 나중에 덩케르크에서 탈출할 연합군을 엄호했다.
붉은 색 지역이 아뮤이고 장블루는 그보다 남서쪽에 있습니다. 왼쪽은 프랑스국경, 오른쪽은 독일국경입니다.
프랑스군은 1차대전 당시의 체계적 전투Methodical Battle을 그대로 채택해서 독일군의 전격전에 대해 미리 정한 지역에 병력을 투입했다. 프리우Prioux장군은 병력을 얇게 그리고 넓게 분산시켰기 때문에 집중공격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프랑스군은 병력과 전차가 훨씬 많았는데도 현대적인 전략을 적용하지 못했고 부대가 서로 제대로 긴밀하게 협조하지도 못했다.
프랑스군은 아뮤전투 첫날, 독일군을 대등하게 상대하며 1호와 2호전차에 큰 피해를 입혔지만 독일은 결국 방어선을 약간 밀어냈다. 전투는 밤새 계속되었고 독일군이 방어선에 구멍을 낼 때마다 프랑스군은 재집결했다.
이튿날은 상황이 달라졌다. 프랑스군이 보병사단에 전차를 분산배치시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독일기갑사단은 숫자로 극복할 수 있었다. 보병사단도 프랑스 방어선의 취약지점을 찾아내 돌파했다.
만약 프랑스기갑사단 전체가 바로 대응했다면 독일군보병사단의 과감한 돌파는 오히려 포위망에 갇히는 실수가 될 수도 있었다.
오후가 되자 프랑스사령부는 후퇴를 결정했고 독일군은 보병사단만으로 추격할 수 없어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다. 프리우는 계속 명령체계를 무시하고 부대를 혼란에 빠트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했다. 심지어 기갑사단은 서로 교신도 하지 않았다. 독일군은 기계화보병으로 프랑스기갑부대를 묶어 두고 아뮤 서쪽을 노리기 시작했다.
양측 각각 600대 이상의 전차가 투입된 아뮤전투에서, 3과 4전차사단은 이미 150대의 전차를 잃었고 다시 장블루전투에서 40%에 가까운 전력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독일군은 이제 장블루점령 수준이 아니라 아예 프랑스군을 서쪽으로 추격하기로 작전목표를 변경했다. 회프너Hoepner는 전차사단전력을 모두 모아 500대의 전차로 아뮤 서쪽 12km 지역을 강습했다.
독일국방군 소속으로 나치가 아닌 조국을 위해 싸웠던 에리히 회프너는 히틀러 암살시도에 연루되어 1944년에 처형당했습니다.
프랑스군은 필사적으로 포격을 퍼부었지만 독일군이 결국 돌파하는데 성공했고 개울 너머로 프랑스군을 추격했다. 프랑스군은 호치키스Hotchkiss사단을 투입해 독일기갑사단을 밀어냈다.
호치키스전차가 프랑스군의 전력핵심으로 독일 2호전차와 맞상대할 수 있었다. 큰 피해를 무릅쓰며 독일군을 밀어냈지만 프랑스군이 17km에 걸쳐서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귀중한 기회가 그대로 흘러갔다.
프랑스군 소뮤아-35Somua-35전차는 독일군에게 매우 위협적이었다. 독일군은 서로 긴밀히 교신하며 신속하게 기동해서 격파했다. 독일군전차는 전차장이 지휘에 전념할 수 있었던 반면에 프랑스전차는 전차장이 포수역할을 하거나 포수를 지원하는 단점이 있었다.
1940년 개전 당시의 호치키스 H35전차는 경전차였지만 그래도 37mm 포를 장착하고 있어서 독일군의 경전차보다 훨씬 공격력이 좋았습니다. 체코를 합병하면서 얻은 38t 전차가 주력전차였을 정도로, 전차전력이 부족했던 독일은 동구권 등에서 프랑스전차를 대거 사용했습니다.
프랑스군은 숫자로 밀어붙이며 독일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퇴각했다. 대신에 프랑스 1군은 와해되었다.
프랑스군은 1차대전의 체계적전투교리에 집착해서 독일군의 합동작전에 대응할 수 없었던 반면에 독일군은 유연하고 기민한 기동으로 상대적으로 우월했던 프랑스군의 숫자와 전력을 극복했다.
연합군은 아뮤전투에서 전술적승리를 거뒀지만 독일군은 연합군이 아르덴느돌파를 눈치채지 못하게 기만하는 전략적 대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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