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상황 그리고 하렘 이야기이다 보니 지금의 기준과 많이 다릅니다. 표현도 그 당시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일부 불쾌할 수 있는 표현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칼로 세상을 정복한 오스만Ottoman제국은 3개 대륙에 걸쳐 있었다. 술탄의 영토는 로마황제보다 더 방대했는데 남동유럽 전체, 서쪽으로는 아프리카해안 전체에서 모로코국경까지, 카스피Caspi해, 홍해와 페르시아만Persian Gulf 일대까지 연결되었다. 흑해는 오스만의 호수였다. 알제리, 카이로, 바그다드, 예루살렘, 아테네와 벨그라드(베오그라드) 등 현대 21개국이 콘스탄티노플Constatinople의 통치를 받았다.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인구인 2,500만명이 있었고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전체인구의 2배 정도였다.
메카Mecca와 메디나Medina를 중심으로 술탄은 성지를 보호하는 칼리프Caliph였다. 지배계층인 오스만 투르크Turk인은 소수였고 무슬림으로는 아랍인, 쿠르드인, 크림 타타르인, 키르카스인, 보스니아인, 알바니아인이 다수였다. 기독교인으로는 그리스, 세르비아, 헝가리, 불가리, 왈라치아Walachia와 몰다비아인 수백만 명이 있었다.
워낙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얽혀있다 보니 제국은 유연하고 느슨했다. 술탄은 콘스탄티노플에서 통치했지만 지역에서는 파샤, 공, 재상, 족장, 칸과 에미르가 자치권을 행사했다. 다뉴브강과 카르파티아Carpathian산맥 사이에 있는 부유한 왈라치아와 몰다비아(현재의 루마니아)의 경우, 술탄이 직접 기독교 공을 임명했지만 연공만 제대로 납부하면 간섭이 없었다. 매년 북부를 출발한 금은보화를 실은 마차가 콘스탄티노플 숭고한 문Sublime Porte 앞에 줄지어 섰다.
크림반도의 타타르 칸은 수도 바흐친사라이Bakhchisarai(지도 참조)에서 독재를 행사하는 대신에 술탄이 전쟁을 선포하면 기병 2~3만명을 지원했다.
서쪽 2,000km 떨어진 트리폴리, 튀니지와 알제리의 바르바리Barbary(베르베르인)영지는 유사시에 사략선을 해군으로 지원하고 평상시에는 베니스와 제노바같은 기독교해양국함대를 상대하거나 마음대로 해적질을 했다.
몸값을 지불하고 바르바리의 기독교인 노예를 석방하는 그림입니다.
장엄왕 술레이만Suleiman the Magnificent(1520~1566) 시대가 오스만제국의 절정기였다. 콘스탄티노플의 황금기로 엄청난 부가 쏟아져 들어왔고 보스포러스Bosphorus와 마스마라Masmara해안 전체에 아름다운 모스크와 휴양시설이 계속 생겼다.
술레이만은 문학, 미술과 과학을 후원하고 음악, 시와 철학을 사랑했지만 전사왕이기도 했다. 벨그라드와 부다Buda(부다페스트)를 관통한 군사도로는 빈까지 이르렀고 그들이 행군한 발칸반도의 언덕과 계곡에는 수많은 모스크와 사원이 남겨졌다.
기독교왕국은 오스만제국을 그리스와 기독교민족의 압제자라고 비난했지만 사실은 그 어떤 기독교왕국보다 관대했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술탄은 그리스교회를 공식적으로 승인했고 교구와 대주교를 인정했으며 동방정교Orthodox수도원은 재산을 그대로 유지했다. 기독교영지는 연공을 납부하고 자치정부와 귀족신분을 가질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오스만제국은 기독교인 신하를 극찬했다. 기독교인을 중앙정부 요직에 채용했고 예니체리Janissary라는 술탄의 특별근위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재능있는 기독교 어린이를 강제로 무슬림학교로 보내 개종시키고 가족의 기억을 완전히 없앴다. 코란Koran과 술탄에 대한 충성심만 남겨두어 두려움을 모르는 추종집단으로 만들었다.
재능있는 기독교인은 궁정시종이나 공공업무 견습생으로 채용했고 중앙정부의 최상위까지 승진하기도 했다. 강력한 오스만제국의 안을 들여다보면 기독교인 출신이 행정을 지휘한 경우가 많다.
소년병으로 입대해서 나중에는 예니체리연대병이 되는 기독교출신은 막사에만 머물고 결혼이나 자식을 가질 수 없었고 오로지 술탄에게만 충성해야 했다. 예니체리는 노예병이었고 막사가 집이었고 코란이 종교였고 술탄이 주인이었고 전투가 직업이었다.
초창기 예니체리는 광적인 기사단과 같아서 알라와 술탄의 적을 토벌하겠다고 맹세했다. 루이14세의 프랑스군 이전까지 어떤 유럽군대보다 전력이 뛰어난 정예병이었다.
예니체리중대는 시각적으로 매우 화려했다. 금으로 수놓은 모자, 흰 블라우스, 풍성한 판탈롱Pantaloon바지와 노란 신발을 착용했다. 술탄개인근위대는 붉은색 신발을 신었다.
평소에는 시미타르Scimitar 칼만 소지하다가 전시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창, 찰, 화승총, 수발총 등을 자유롭게 선택했다.
14세기 12,000명이던 예니체리는 1653년 51,647명으로 늘어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노쇠한 예니체리는 퇴역해서 결혼과 가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예니체리의 신분이 상승하자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아들을 자진해서 내놓았고 나중에는 예니체리출신의 아들만 입대하는 특혜가 주어졌다.
평시에는 러시아 스트렐치Streltsy처럼 상거래를 할 수 있었고 황궁근위대연대는 심지어 술탄의 가장 큰 적으로 변신했다. 예니체리가 술탄과 재상을 시해하거나 전복시키다가 1826년에 해산되었다.
고지대에서 콘스틴티노플을 내려다보면 톱카프Topkapi궁이 보이고 그 안에는 술탄만의 세라글리오Seraglio가 있다. 토카프궁의 높은 벽 뒤에 막사, 부엌, 모스크, 정원, 분수대와 긴 가로수길 등이 있다. 도시 안의 도시인 이 궁전은 단 한 사람의 쾌락을 위해 조성되었다. 매년 제국각지에서 온갖 농수산물이 들어오는데 그 중에는 마차 780대 분의 눈도 있다.
5천명의 시종이 술탄의 시중을 들었다. 냅킨시종장Chief Attendant of the Napkin이 접시시종, 과일선임시종, 피클선임시종, 샤베트선임시종, 커피선임시종, 식수선임시종과 함께 술탄의 식탁을 준비했다. 술탄의 의복에도 온갖 시종장과 선임시종이 시중을 들이었다. 술탄이 비밀스러운 회합을 가질 때에는 벙어리가 시중을 들었다.
궁전 더 깊숙한 공간에는 종복이 접근할 수 없는 하렘Harem이 있었다. 아랍어 하림Harim은 금지라는 뜻으로 술탄, 술탄의 손님, 하렘여성과 거세경비병만 출입이 허용되었다. 하렘은 격리구역을 거쳐 외길을 따라 강철문 2개와 청동문 2개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문마다 거세경비병이 24시간 지키고 있었고 한 개의 열쇠로만 열 수 있었다.
모든 문을 통과하면 사치스러운 방, 복도, 계단, 비밀문, 정원, 목욕탕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방은 사방이 다른 방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높은 돔과 유리창으로만 빛이 들어왔다. 황실전용방은 호화롭게 치장되어 있었고 분수대에서 물이 흘러내려서 비밀대화를 엿들을 수 없었다.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하렘은 흑막, 가십, 음모와 섹스의 세상이었다. 그렇지만 규칙과 신분체계가 엄격하게 지켜진 세상이기도 했다. 장엄왕 술레이만시대까지는 결혼했고 무슬림은 4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었다.
술레이만은 록셀라나Roxelana(그림 참조)라는 빨간머리의 러시아여성과 결혼했는데, 그녀가 국정에 너무 심하게 개입했고 그 후부터 술탄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술탄의 어머니가 하렘을 다스렸다. 투르크인은 어머니의 발밑에 천국이 있다고 믿었는데, 아내와 첩이 아무리 많아도 어머니는 한 명일 수 밖에 없었고 가장 확실한 위치를 차지했다.
술탄이 병약하거나 너무 어리면 어머니가 술탄의 이름으로 대재상에게 지시했다. 술탄 어머니, 술탄 후계자의 어머니, 술탄의 남자아이를 출산한 다른 어머니, 그리고 첩의 순서로 신분체계가 정해졌다.
하렘의 여성은 모두 노예신분이었는데, 무슬림여성을 노예로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러시아, 체르케스, 베네치아, 그리스출신의 여성이 하렘에 들어왔다. 푸른 눈의 여성을 선호했기 때문에 16세기말부터는 대부분이 코카서스출신이었다.
하렘의 문을 통과하면 평생 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절대로 예외가 없었다.
10~11살에 하렘에 들어가면, 경험많은 여성이 여성의 매력에 대해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술탄은 예비심사에서 마음에 드는 소녀의 발에 손수건을 떨어트려 통과시켰다. 술탄의 눈에 들었다고 해서 모두 침실로 호출되는 것은 아니었다. 술탄과 동침한 여성은 자신의 방, 하인, 보석, 의복과 용돈을 받았다.
하렘의 모든 여성은 술탄의 만족도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술탄과 동침할 기회를 기다렸고 운좋게 그런 기회를 잡았다면 술탄을 즐겁게 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술탄은 하렘에서도 반신반인의 대접을 받았고 술탄이 호출한 여성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나타나면 모든 여성이 몸을 숨겼는데 술탄의 접근을 경고하기 위해 복도와 부딪쳐 소리를 내는 신발을 신었다.
술탄만 기다리는 미녀가 가득 찬 공간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탐욕스러운 생활을 보낸 술탄은 국정과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남성도 하렘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태양도 여성이 아니면 하렘을 비출 수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거세경비병이 철저한 봉쇄를 맡았다. 원래 거세경비병은 하렘여성처럼 코카서스출신의 백인이었다.
17세기 초부터 하렘을 지키는 경비병 200명은 모두 흑인으로 바뀌었다. 나일강 상류에서 노노예로 끌고오다가 아스완Aswan부근에서 거세를 했다. 무슬림종교는 거세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그 지역에 사는 기독교 콥트Copt인이 거세수술을 했다. 이집트남부의 총독이나 재상이 거세소년을 술탄에게 선물로 바쳤다.
거세경비병은 노예인 동시에 노예인 하렘여성의 시종으로 낮은 신분이었지만 술탄을 근거리에서 모시면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기 시작했다. 온갖 음모가 오스만제국의 궁정을 어지럽혔고, 하렘여성과 거세경기병은 서로 결탁해서 술탄을 조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흑인거세병대장Chief of the Black Eunuchs(그림 참조)과 하렘최고위여성이 하렘을 완전히 장악하고 국정에 개입하면서 술탄과 대재상 다음의 권력을 누리게 되었다. 흑인거세병대장은 막대한 특혜와 사병을 거느렸고 심지어 자신의 노예여성까지 가졌다.
오스만제국은 철저한 전사국가였고 술탄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술탄이 강력하고 영특하면 제국이 번성했고 병약하면 제국이 무너졌다.
재미있게도 하렘은 관용의 산물이었다.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술탄의 많은 아들 중 하나가 황위에 오르면 나머지 형제를 모조리 죽여 후환을 없앴다. 무라드Murad 3세(1574~1595)는 100명의 자식을 낳았고 그 중에 아들 20명이 살아있었다. 장손이 메흐메트Mehmet 3세로 즉위하자 형제 19명을 목졸라 죽이고 미래의 어떠한 위험도 남기지 않으려고 아버지의 첩 중에 임신한 7명을 더 죽였다.
그렇지만 1603년, 아흐메드Ahmed 1세가 즉위하면서 끔찍한 관행을 취소하고 형제들을 살려두었다. 대신에 외부와 단절된 특별공간에 가두었다. 그 후부터 오스만의 모든 왕자는 그 공간에서 첩과 거세병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 임신가능연령을 지난 여성만 있었는데 만약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죽였다.
술탄이 후계자없이 급사하거나 축출당하면 갇혔던 형제 중 한 명이 황위를 물려받았다. 이 경우, 후계자교육을 받지 못하고 나약한 왕자가 술탄에 올랐기 때문에 제국을 제대로 통치할 지식이나 의지가 없었다.
술탄이 나약한 시기에는 대재상Grand vizier이 오스만제국을 통치했다. 1654년에 세라글리오 부근에 거대한 건물이 세워졌고 유럽이 숭고한 문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세라글리오를 제외한 제국전체의 행정과 군대를 통치했다.
대재상은 술탄의 종복이었고 임명되면 옥쇄가 새겨진 반지를 받았고 해고될 때에는 반지를 반납했다. 실제로는 오스만제국은 술탄이 아니라 대재상이 통치했다. 평시에는 행정수반이자 검찰총장이었다. 전시에는 총사령관으로 예니체리사령관과 해군제독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재상은 막대한 권력으로 술탄을 축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제 수명을 다하지 못했다. 패전을 하면 대재상이 책임을 지고 해고되거나 추방당했는데 사형되기도 했다.
권모술수의 대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1683~1702년 기간동안, 무려 12명의 대재상이 교체되었다.
17세기 초반,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술탄은 하렘에서 나태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동안 대재상이 제국을 구해냈다. 베니스선박이 다르다넬레스Dardanelles 앞바다를 항해하고 코사크 해적선이 드니에페르Dnieper강을 내려와 보스포러스를 약탈했는데도 부패와 혼란으로 무너지는 제국은 대응하지 못했다.
광왕 이브라힘Ibrahim the Mad(1640~1648, 그림 참조)은 수염을 다이아몬드로 치장해 보관했고 보스포러스의 물고기에게 금화를 던지며 놀았다. 털가죽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특별세를 징수해 러시아에서 담비털을 대량으로 수입해 방의 벽을 덮었다.
체구가 큰 여성을 즐겨서 전국에서 비만한 여성을 수색했다. 거구의 아르메니아여성이 궁에 들어오자 부와 명예를 안겨주었고 나중에는 다마스쿠스Damascus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1648년, 예니체리가 반란을 일으켜 6살이던 아들 아흐메드를 옹립하고 이브라힘을 처형했다.
1656년, 오스만제국이 붕괴직전까지 몰리자 하렘권력은 마지못해 71세의 강경파 알바니아인 메메드 코프룰루Memmed Koprulu를 임명했다. 그는 무자비한 처벌로 문제를 해결했다. 횡령과 부패혐의로 5~6만명을 처형했다.
그는 5년 후에 죽었지만 제국의 붕괴를 막아냈다. 아들 아흐메드 코프룰루와 조카 카라 무스타파Kara Mustapha가 대재상으로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되찾았다. 오스트리아, 베니스, 폴란드의 육해군을 몰아냈고 1683년, 신성로마제국 레오폴트Leopold황제가 헝가리를 침공하자 카라 무스타파는 빈을 점령하기로 했다.
말갈기 깃발을 앞세운 20만명이 다뉴브강을 거슬러 올라가 헝가리 전역을 점령하고 역사상 2번째로 빈을 포위했다. 유럽전체가 대응에 나섰다. 독일영주국이 황제의 군대에 합류했고 신성로마제국의 적이며 오스만의 비밀동맹이었던 루이 14세도 지원에 나섰다.
1683년 9월 12일, 유럽연합군이 오스만군 포위망을 배후에서 공격했고 오스만군은 참패당했다. 술탄은 카라 무스타파를 처형했다.
신성로마제국은 반격에 나서 부다와 벨그라드를 함락시키고 아드리아노플Adrianople(현재 터키의 에디른Edirne까지 진격했다. 베니스의 대제독 프란체스코 모로시니Francesco Morosini가 펠로폰네수스Peloponnesus반도를 점령하고 코린트Corinth를 건너 아테네를 포위했다.
공성전을 벌이다가 포탄 한 발이 파르테논Parthenon신전을 명중시켰는데 오스만군이 화약창고로 사용 중이었다. 1687년 9월 26일, 대폭발을 일으켰고 현재 상태가 되었다.
1703년, 예니체리는 무스타파Mustapha 3세를 축출하고 31세의 동생 아흐메드 3세를 하렘에서 불러내 황위에 앉혔다. 그는 27년간이나 외부와 단절되어 살았었다. 내성적이고 어머니의 뜻을 그대로 옮겼고 여성, 시와 그림을 좋아했다. 그리고 중국풍 그림자인형연극을 좋아해서 공연 후에 보석, 사탕과 의복을 하사했다.
여름에는 가상해전과 불꽃놀이를 벌였다. 튤립전문가가 대거 채용되었고 봄에는 저녁에 등불을 켜두고 음악가의 연주를 즐기며 정원을 거닐었고 등껍질에 촛대를 붙인 거북이 수백 마리가 튤립과 풀밭을 기어 다녔다.
1730년, 오스만제국은 다시 격동의 시기였고 아흐메드는 사촌인 대재상을 처형하고 군중에게 시체를 넘겨주어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아흐메드는 축출당한 후에 독살되었고 조카가 황위에 올랐다.
PS. 오스만제국은 1711년 7월 19일, 프루트Pruth강 전투에서 세계역사를 바꿀 (빈 공성전 2차례) 3번째 기회를 잡았습니다. 러시아 표트르대제는 동유럽 최강국 스웨덴의 침공을 막아낸 후에 기세를 올리며 감히(?) 오스만제국의 기독교 변방국의 독립을 지원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와 코사크의 공세에 시달리던 오스만제국은 20만 명을 동원해 러시아군과 일전을 치렀고 러시아황제와 정규군을 포위하는데 성공합니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예니체리가 더 이상의 전투를 거부했다고 해도 러시아군은 전멸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는데, 총사령관이었던 대재상 메흐메트가 러시아황후의 보석뇌물에 넘어가 너무나도 쉽게 러시아황제와 군의 퇴각을 허락합니다.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패전해 오스만제국으로 피신했던 스웨덴전사왕 카를12세는 황당한 휴전에 한탄했고, 세계역사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흘러갔습니다. 만약 전투를 계속 이어가서 러시아황제를 사로잡고 러시아군을 전멸시켰다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계사를 배우고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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