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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정치

감정 노동자, 그 분들은 노예도 기계도 아닙니다.

by uesgi2003 2012. 9. 9.

 

1인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안사람이 취업을 했는데, 국가자격증 상담업무를 합니다.

제가 MS에 근무할 때에도 콜센터에서 해결 못하는 문의가 들어오면 제가 결정권을 가진 제품이나 프로그램은 직간접적으로 해결해주곤 했는데, 상담문의전화 스트레스가 대단하더군요.

 

일단 3가지 대표적인 민폐형이 있는데, 일단 소리부터 지릅니다. 일단 높은 사람 찾습니다. 일단 말꼬리 물고 늘어집니다.

귀찮게 하는 텔레마케팅 전화라면 '바쁩니다'라고 끊어도 되고 도가 넘으면 화를 내도 됩니다.

그러나 상당문의 전화는 자신이 뭔가 궁금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해결을 문의하는 전화입니다.

 

그런데 어떤 내용인지 어떤 문제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담원에게 일단 소리부터 질러댑니다. '너희가 뭔데!!!' 어떤 내용인지 알아야 상담원이 뭔지 대답을 하죠.

상담원이 진정시키고 차근 차근 물어서 상담내용을 분석하고 해답을 제시하는데, 제품 A/S가 아니고서는 이미 정해져있는 해답입니다.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갱신하려면 이런 저런 과정을 통과했어야 하고 뭐가 빠졌으니까 다음에 다시 지원하라고요.

이제 높은 사람을 찾습니다. 너무나도 흔하고 정말 몹쓸 습관이죠.

국가 자격증인데 높은 사람(기껏해야 담당직원)찾아봐야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해결된다면 그 담당직원은 감사과정을 거쳐 반드시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제 집요하게 전화를 하고 욕설(정말로 욕설을 합니다)을 퍼부으며 상담원이나 담당직원의 말실수를 노립니다. 상담원이 질려서 전화를 끊으면 민원을 넣어 괴롭힙니다.

 

담당직원 괴롭히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수도 있는 국가자격증 상담업무가 이 정도인데 제품 A/S나 다른 분야의 상담원들의 고충은 알만 합니다.

 

물론 그들이 잘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회사 담당부서에서 책상에 앉아 해당 제품 A/S를 기획했으니 당연히 구멍이 많을 수 밖에 없고, 신입상담직원이 착각하는 일도 많고. 원래 그 일을 해서는 안되는 인성이 부족한 상담직원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차를 살 때에 일시불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카드로 사면 포인트나 캐시백으로 꽤 큰 돈을 돌려받기 때문에 신한카드에 일시한도 증액을 문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카드회사에서는 당연히 반길 일이죠.

그런데 제가 문의했던 상담직원(콜센터)은 그 날 기분이 안좋았던지 싸늘하게 '증액안됩니다. 원래 증액이 안됩니다.'라고 딱 자르더군요.

그런데 그 당시 제가 상당히 잘 나갈 때로 신한카드 VIP 등급이어서 말이 안되는 대우였죠 (아무런 소득도 없던 안사람의 삼성카드 한도가 제 3배였습니다). 당연히 '당신은 뭘 모르니 당신말고 본사직원에게 물어보거나 바꿔라'해야 했지만 '그래봐야 신한카드 너희가 아쉬운거지'하고 일시불로 사고 신한카드 사용을 중지했습니다.

몇 개월 후에 본사에서 VIP 담당직원이 전화를 하더군요. '몇 개월 동안 신한카드를 멀리하셨는데 불편하신 점이 있었느냐고요.'

다른 카드회사는 일반고객도 자동차구입을 일부러 권하는데 신한카드는 VIP도 일시증액이 안되어서 못쓰겠다고 했더니 본사직원이 너무 황당해하더군요. 제가 원래 일시증액 '7,000만원'까지 가능했답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죠. 상담직원이 저보다 모르거나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A/S 프로그램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화부터 내거나 인간적인 모욕을 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담원은 고객과의 가장 처음 접점으로 고객의 문의에 따라 미리 정해져있는 데이터베이스(Knowledgbase)를 조회해 해답을 찾거나 담당직원에게 전달해서 해결을 하는 것이 전부인 비정규직 감정 노동자입니다. 상담원의 인성이 정말 잘못되었다면 화를 내도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화부터 내고, 윗사람 찾아대고, 보복하려 해봤자 모두를 해치는 민폐행동입니다. 

 

상담전화를 하려고 하면 화가 이미 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1.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리 저리 전화하면 다른 전화를 알려주기 마련입니다. -> 당연한 일입니다. 화를 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서너 번은 전화를 할 것으로 미리 예상하고 있어야 합니다.

 

2. 5분 이상 대기해야 합니다. 심지어 대기가 길어져서 끊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 당연한 일입니다. 화를 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카드사의 경우에는 지급일 전후, A/S의 경우에는 특정 계절과 시간에 몰리게 됩니다. 화를 내서는 안됩니다. 그 시간과 기간을 피해야 합니다. 특히 상담원에게 화를 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격렬한 항의를 하려면 그 회사의 고객센터 임원을 찾아 화를 내야죠. 그 임원에게 욕을 하고 인원과 회선을 늘리라고 화를 내세요.

 

3.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합니다. -> 당연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화를 내도 되고 내서는 안되기도 합니다. 기껏 5분 정도 설명했더니 그 내용은 여기서 담당하지 않는다고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화를 내서는 안됩니다. 처음부터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서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는 회사를 하나의 무기체로 보고 전화하지만, 회사는 복잡한 유기체로 심장이 하는 일을 신장이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제도 같은 문의를 했고 오늘도 같은 문의를 했는데 내일도 같은 문의를 해야 한다면 그건 그 회사가 중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격렬한 항의를 해도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의를 받았던 직원부서와 이름을 정확하게 기록해두었다가 어제 문의받았던 직원을 찾아, 오늘 문의를 받았던 직원을 찾아 정확하게 항의를 해야 합니다. 내일 전화를 받을 그 어떤 직원에게 어제와 오늘 일에 대해 격렬한 항의를 해봤자 화는 좀 풀리겠지만 내일모레 다시 같은 말을 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4. 제 과실로 돌리는데 인정 못하겠습니다. -> 실제로 제 과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침착하게 생각하고 제 과실이 맞다면 어떻게 하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지를 상담해야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됩니다.

제 과실도 있지만 그 회사의 정책에 분명한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른 외부기관을 찾아야 합니다. 상담원과 담당직원을 괴롭혀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철저하게 사실만 추려내서 소비자보호원, 지자체, 인터넷 소비자 코너 등에 의뢰를 해야 합니다.

회사의 과실이 100%인데 인정을 하지 않는 경우, 법을 이용해 소송을 하면 됩니다.

 

리복 운동화를 구입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동안 신었던 리복 운동화가 워낙 좋아서 가장 고가의 것을 샀더니 며칠 후에 한쪽 바닥만 볼록하고 올라오는 감촉이 들었습니다. 에어가 내장되어 있던 것인데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죠.

문의를 했더니 일단 운동화를 가지고 오면 본사로 보내 감정을 받은 후에 다시 받으러 와야 한다더군요. 제 잘못이 아닌데 왜 내가 두 번이나 가야하는지 화가 나서 본사 직원을 찾아 불량여부를 설득하고 '1주일도 안된 제품이고 같은 제품으로 교환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불량은 매장 직원이 확인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했는데 리복 본사직원의 태도가 상당히 당당하더군요. 설전 끝에 그럼 소비자보호원에 제소하겠다고 했더니 그러랍니다.

알고보니 소비자보호원에 제소해봤자 조치는 제품교환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리복이고 '에어가 펑펑터져대는' 나이키가 그렇게 당당한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리복 운동화는 절대로 구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워낙 기업친화적인 법구조이기 때문에 외부기관에 제소를 해도 그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만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계를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상담원에게 전화할 때에는 심호흡 3번을 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잠시만요. 화가 나려고 하네요.'하고 잠시 말을 멈춰서 상담원에게 주의를 주고 자신도 수위를 조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상담원을 회사라는 거대한 무기체로 확대해석하지 말고 유기체의 최초 접점으로 아주 간단한 일만 해결해 줄 수 있다는 한계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잘 가는 사이트에 '어떤 성질을 참지 못하던 노인의 비극'에 대한 글이 올라왔었습니다.

 

한 편의점에서 상품가격이 올랐는데 미처 모두 변경하지 못해서 냉장고 앞에 안내문을 붙여놓았고 그걸 못본 노인이 거듭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약 550원의 오차를 참지 못하고 온갖 욕설을 퍼붓고 장식대를 두들기다가 졸도를 해서 병원에 실려갔다는 내용입니다.

그 아들은 어떤 일인지 CCTV 확인하러 왔다가 장식대까지 배상해야 할 상황이 되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