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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남북전쟁

세계사를 바꾼 미국남북전쟁 (4) - 챈스러스빌 전투 (2부)

by uesgi2003 2012. 12. 23.


대선 후에 허전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시는 분은 레미제라블을 한가한 시간에 혼자서 보시거나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구석자리를 예매하시기 바랍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많이들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마지막 장면은 아예 못 봤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예전의 남북전쟁 영화가 보고 싶어져서 아마존에서 블루레이로 '게티스버그'와 '신과 장군들(God and Generals)'를 주문해서 보고 있습니다. '봤다가 맞지 보고 있다니? 왠 진행형?'하는 분이 계실텐데, 이 영화는 체력 좋은 날 잡아서 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한 두 번에 보기 힘든 영화입니다. 


신과 장군들의 경우 2003년에 무려 56,000,000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전투장면을 원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지루해서 한 번에 못보는 것이 아니라 감독판 상영시간이 무려 280분이기 때문입니다. 

길다고 하는 반지의제왕 감독판보다 30분이 긴데다가 한글 자막이 없기 때문에 영문자막으로 즐겨야 합니다.  


남군의 가장 유명한 장군이고 지금 정리하고 있는 이야기의 주역인 '돌벽' 잭슨 장군이 참전한 주요 전투들을 재현하고 있는데, 280분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담느라 잭슨 중심으로만 진행됩니다. 


영화자체로는 잘만든 영화가 아니고 다른 나라에 수출되기 힘든 미국 남북전쟁이라 예산의 20% 정도만 벌어들인 쫄딱 망한 영화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국내에 출시되었던 DVD를 구해서 보시면, 제가 연재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떠오르면서 아주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오래 전에 봤을 때에는 그냥 '북군이 삽질하는구나', '잭슨이라는 사람이 대단했네'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아! 앤티텀 전투를 저렇게 짧게 끝내네?'라던가 '맥클레란이 저기서 삽질하는구나'와 같이, 영화의 한 장면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사를 바꾼 미국남북전쟁 (4) - 챈스러스빌 전투 (2부)


 

켈리 여울목에서 기병전이 벌어지고 약 3주 후인 성 패트릭 데이에 링컨이 포토맥 강을 내려와 후커를 방문하면서 역사상 가장 큰 소동이 벌어지게 된다. 전쟁에 대해 온갖 비난을 받고 있던 링컨은 모든 준비가 되었다는 후커에게 공세에 나설 것을 종용할 생각이었다. 

링컨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고 싶었던 후커는 스톤장군의 기병군단 15,000명을 전부 동원해 링컨 앞에서 행진하게 했고 며칠 후에는 85,000명의 보병을 소집시켜 부대깃발을 흔들며 행진하는 장관을 연출했다(그림참조. 모든 그림은 클릭하면 상당히 커집니다.

그리고는 링컨이 가장 듣고 싶었던 보고를 했다. 스톤맨의 병력 중 10,000명 기병대가 레퍼핸녹(Rappahannock) 강을 건너 리의 배후를 끊어 보급과 통신망을 마비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폭우가 쏟아지면서 거의 2주 동안 지연되면서, 후커는 훨씬 더 대담한 작전을 시도하기로 했다. 3개 군단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병대를 뒤좇아 바로 강을 건넌 다음 다시 내려와 챈슬러스빌이라는 시골 교차로를 장악해 남군의 좌익을 둘러쌀 생각이었다. 나머지 군단은 프레데릭스버그 근처에 머물면서 남군의 우익으로 신경이 집중되게 만들고 상황에 따라 투입한다는 계획이었다. 

후커는 대통령에게 이번 계획은 도저히 실패할 수 없다고 장담했다. 리가 전멸을 피하기 위해 후퇴할까봐 걱정된다는 자신감까지 보였다. 

그러나 리는 단 한 번도 공포에 질려 허둥지둥 도망친 적이 없고 반대로 전력을 다해 저항했었다는 것을 링컨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후커의 자신감이 오히려 불안해졌다. 


 

리가 이끄는 남군은, 롱스트리트가 2개 사단을 데리고 빠져나갔기 때문에 130,000명의 북군의 절반도 안되는 60,000명에 불과했다. 압도적으로 많은 병력을 가진 후커는 원하는 곳으로 병력을 보내 마음껏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3개 군단이 예정대로 강을 건너 챈스러스빌 교차로에서 다리우스 카우치(Couch)의 2군단과 연결된다면 남군 전체보다 많은 70,000명이 남군의 좌측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북군의 우회기동을 숨기기 위해 존 세지윅(Sedgwick)의 6군단과 존 레이놀즈(Reynolds)의 1군단이 프레데릭스버그 바로 아래로 강을 건너 마치 남군의 우익을 공격하는 것처럼 기만하고, 다니엘 시클스(Sickles)의 3군단과 존 기본(Gibbon)의 2군단은 강 건너에서 대기하면서 위협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림 설명: 강에 임시가교를 설치한 제15 뉴욕 공병대가 스튜가 끓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북군의 대기동은 4월 27일 시작되었다. 겨울동안 잘 먹으면서 훈련받은 병사들은 마치 또 다른 훈련을 가는 것처럼 활기찼다. 선두에는 올리버 하워드의 11군단이 섰는데, 32살의 나이로 군단을 지휘하게 된 하워드는 독일계 이민자로 구성된 병사들의 조롱을 받고 있었다. 그는 힘든 훈련 뒤에 맥주를 즐기는 독일인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뒤는 헨리 슬로컴(Slocum)의 12군단이 있었고 마지막은 조지 미드(Meade)의 5군단이 섰다. 미드도 병사들이 늙은 늑대거북이(Snapping Turtle)이라고 부를 정도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난 12월의 프레데릭스버그 전투에서 유일하게 남군 방어선을 돌파한 지휘관이었다. 

 

후커의 계획은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강을 건너 챈스러스빌가지 내려 오는 동안 남군이라고는 고작 정찰병 정도만 보였고 프레데릭스로 향하는 길이 완벽하게 열려 있었다. 미드는 "이거 정말 대단하군요. 슬로컴. 우리가 리를 우회했는데도 모르고 있군요"라고 감탄을 하며 즉시 리를 압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슬로컴의 반응은 차가웠다. "내가 받은 명령은 여기에서 전열을 펼치는 것입니다. 명령없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후커는 카우치의 2군단과 시클스의 3군단이 래퍼한녹 강을 건널 때까지 기다리라는 명령을 내렸었고 4월 30일 저녁 "지난 3일 동안의 작전으로 적의 운명은 결정되었다"라고 단언했다. 

리는 4월 16일부터 후커의 병력에 뭔가 불안한 움직임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지금의 병력으로는 북군을 상대할 수 없다고 걱정을 했다. 시간이 지나도 후커의 공격로가 파악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였다. 4월 28일, 스튜어트는 "적의 보병과 야포 강 상류를 건넜습니다"라고 보고했지만 병력의 규모와 진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4월 29일, 세지윅의 6군단과 레이놀드의 1군단이 프레데릭스 남쪽을 건너오자, 리는 여기부터 대응하기로 했다. 마침 1년 동안 보지못했던 부인과 처음으로 만난 6개월된 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잭슨은 서둘러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세지윅의 부대는 더 이상 전진하지 않는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하워드의 11군단 14,000명이 래퍼한녹 강을 건넜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저녁에는 더 많은 북군 병력이 강을 건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렇다면 챈스러스빌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29일 저녁까지 리는 북군의 주공격로가 어디인지 확신하지 못했고 리차드 앤더슨 사단을 보내 서쪽에서 프레데릭스버그로 들어오는 도로를 차단하게 했다. 


그러나 앤더슨의 앞에 나타난 북군은 엄청난 대군이었고, 북군의 주공격로가 좌측이라고 판단하고 모든 승부를 걸기로 했다. 잭슨의 3개 사단을 서쪽으로 즉시 보냈고 강을 건너온 세지윅의 6군단은 1개 사단으로 대치하게 했다. 라파예트 맥로스(McLaws)의 병력도 1개 여단만 남겨두고 모두 잭슨의 뒤를 따르게 했다. 

모든 병력이 서쪽에 도착해도 40,000명에 불과했고 북군은 보급을 잘 받은 70,000명의 대병력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일반 지휘관이라면 신속한 후퇴를 결정했을테지만 리는 달랐다. 그는 맥로스에게 "승리하거나 죽는 것 뿐입니다. 패배는 없습니다"라며 단 한 번도 후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리의 결정에 따라 잭슨은 5월 1일 자정에 일어나 병사들을 조용히 깨워 리차드 앤더슨이 참호를 파고 있는 테버너클 교회로 향했다. 오전 8시, 참호를 파고 있던 앤더슨 부대에게 삽대신 총을 들게 하고 공격준비를 시켰다. 잭슨은 적이 얼마나 많은 숫자이던 상관없이 항상 공격을 선호하는 지휘관이었다. 앤더슨의 우측에 맥로스 사단이 합류해서 14,000명 정도의 병력이 갖춰지자 무려 70,000명의 북군을 공격하러 나섰다. 

 

북군도 후커의 명령에 따라 3개 군단이 모두 같은 도로로 진격하던 중이었다. 북군 선봉대는 맥로스와 앤더슨의 선봉대와 부딪혔고 곧바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후커는 윈필드 스코트 핸콕(Hancock)에게 병력을 보내라고 명령했고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북군은 점차 공세로 나설 수 있었다.

오후 2시, 놀랍게도 후커는 모든 병력에게 즉시 전투를 멈추고 전날에 점령했던 챈스러스빌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드와 슬로컴은 몹시 화를 냈다. "미친놈이나 그런 명령을 내리지. 이기고 있는데 후퇴라니!"

후커는 북군의 압도적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공세로 나선 남군의 맹렬한 기세를 염려해 수비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었다.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후커가 술에 취했을 것이라는 논쟁이 붙었지만 후커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카우치는 "차라리 후커가 좋아하는 술을 마셨다면" 훨씬 나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후커는 옆구리가 노출된 리가 후퇴할 것으로 기대했었지만 리도 공세를 선호하는 지휘관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후커는 상황판단이 어려워졌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자신감을 잃었다"라고 고백했다. 

북군이 후퇴하자, 리와 잭슨은 다음에는 어떤 행동에 나설 것인지 의논했다. 북군에게 결정타를 먹여야 한다는 의견일치를 본 리는 직접 전방에서 정찰을 했다. 늪지대와 덤불 투성이를 지나 후커가 쳐놓은 방어선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두 사람이 고민하고 있을 때에, 스튜어트가 다가와 북군의 우익에 있는 올리버 하워드의 6군단 옆에 빈 틈이 있다고 알려왔다. 여기는 늪이나 덤불과 같은 장애물이 없는데도 북군이 비워놓은 곳이었다.

리와 잭슨은 우회해서 북군의 뒤에서 공격하기로 결정했지만 병력을 어떻게 서쪽 가장자리로 이동시킬 수 있을까?

 

그림 설명: 마지막으로 회의를 하고 있는 리와 잭슨입니다. 리는 다시는 잭슨을 만나지 못하게 되고, 결정적인 전투 게티스버그에서 "잭슨이 있었다면"이라는 한탄을 하게 됩니다.


 

잭슨이 대령에서 장군으로 승진하면서 자신이 지휘하던 제1 여단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뭘하던, 여러분이 어디에 편입되던 제1 여단이며 북군의 압제에 맞서서 독립을 쟁취하자는 내용의 연설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