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게티스버그라는 초장편 영화 덕분에 여러분이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 장면을 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에 동영상을 보여드렸지만, 이번에는 각 장면을 이야기에 맞춰 보여드려 어느 때보다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7월 2일 전투에서도 북군은 매순간 패전의 위기에 몰렸지만 그 때마다 지휘관들의 뛰어난 용기와 리더십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반대로 리는 북쪽의 컬프스에서 세메터리 언덕까지, 남쪽으로는 세메터리 산등성이부터 작은 산봉우리까지 북군의 방어선 곳곳을 두들겼지만 돌파직전에 물러나야만 했다.
세번째 전투에서도 공세를 취하기로 결정한 리는 북군에 대해 두 방향에서 협공하기로 했다. 왼쪽에서는 이웰(Ewell) 군단이 컬프스(Culp's) 언덕을 점령하고, 피켓(Pickett) 사단이 도착해 병력이 보강된 롱스트리트(Longstreet)는 세메터리(Cemetary) 산등성이의 북군 중앙을 공격하기로 했다.
컬스프 언덕의 북군은 참호를 파고 툴어박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웰의 공격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미드는 병력을 이동시켜서 다른 방어선이 약해지게 된다. 그리고 전날 전투에서 세메터리 산등성이를 방어하던 북군의 피해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만약 이곳의 병력을 조금만 다른 곳으로 빼낸다면 롱스트리트가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날과 마찬가지로 전투가 시작되자 마자 리의 작전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요란한 총성과 포성때문에 남군 지휘관들은 컬프스 언덕을 이미 공격하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북군의 제12 군단 일부가 전날 내줬던 지역을 탈환하려고 공격에 나섰고 그렇게 전투가 가열되면서 리가 노렸던 동시 협공은 아예 불가능해졌다.
정오가 되면서 컬프스 언덕 전투는 대치상태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었고, 남군이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세메터리 산등성이의 북군 중앙을 돌파하는 수 밖에 없었다.
리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롱스트리트에게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롱스트리트는 북군 중앙을 공격한다면 막대한 피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성공할 수도 없다고 거듭 반대했다. 리의 종용을 받은 롱스트리트는 오전 내내 병력을 배치하며 시단을 보냈고 결국 컬프스 언덕 전투가 모두 끝난 다음인 오후 1시에 전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세메터리 산등성이의 북군 진지를 170문의 대포가 두들기면서 마지막 승부가 시작되었다. 북군의 제2 군단도 대응포격에 나서면서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포격전이 2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남군의 포격으로 북군 포대는 거의 궤멸되었지만 대부분의 포탄은 북군 머리 위로 넘어갔고 핸콕(Hancock)은 병사들의 대열을 천천히 오가며 사기를 높였다.
오후 3시, 포격이 점차 잦아들자 약 12,500명의 남군 3개 사단이 세미너리(Seminary) 산등성이의 출발점에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우에스기 왈: 영화 게티스버그의 바로 이 장면입니다. 이야기를 계속 하기 전에 천천히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해상도가 낮지만 그래도 최대한 높이고 소리도 키워서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