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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사상최대의 전차전 - 쿠르스크와 프로호로프카 (11부)

by uesgi2003 2013. 7. 7.


쿠르스크 전투는 독일과 러시아 양쪽이 투입한 전력 그리고 손실을 감안하면 전사에 오래 남을 대단한 전투가 맞습니다만, 전개과정을 보면 단단하게 조여진 방어선을 힘으로 뚫고 들어가고, 러시아군도 힘으로 막아내고, 양쪽이 기진맥진하는 의외로 별 볼일 없는 인파이팅 경기와 같습니다. 


이번 주말에 모두 정리하려고 지금 폭풍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3번 정도 이야기를 올리면 끝나지 않을까 합니다. 10부에서 중앙집단군의 북쪽 공세가 그 힘을 다하는 과정을 설명했고 이번에는 독일군의 주력인 남부 집단군의 공세 편입니다. 


사상최대의 전차전 - 쿠르스크와 프로호로프카 (11부)


바투틴은 호트의 지칠 줄 모르는 전차행진을 막기 위해 하우저의 2 SS 전차군단의 오른쪽에 제1 전차군의 31전차군단 그리고 왼쪽에 2와 5 근위전차군단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SS 전차는 협공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서쪽에서 오보얀 도로를 따라 전진하는 48전차군단은 6전차와 3기계화군단이 맡기로 했다. 

2와 10전차군단 그리고 제5 근위전차군이 보로네즈 전선군을 지원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예비병력이 투입될 때까지 보로네즈 전선군이 버텨주어야 했다. 만약 제 때에 예비병력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바투틴의 계획은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보로네즈 전선군이 무너지면 반격작전은 커녕 거꾸로 포위될 위험이었다. 방어선이 오래 버텨줄수록 예비병력이 도착해서 재보급을 받고 대반격작전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치치아코프의 제6 근위군과 카투코프의 제1 전차군의 기동군단은 페나강, 루하니노와 포크로프카를 따라 강력한 방어선을 펴고 있었다. 그리고 바투틴이 가지고 있던 나머지 전차, 대전차포와 항공기를 모두 투입시켰다. 



7월 7일 독일 제4 전차군은 전체 전선에 걸쳐 공격을 시작했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자 48 전차군단은 앞으로 나아갔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명령을 기다리는 독일군입니다. 해가 밝아오는 것이 얼마나 싫었을까요...


48군단에게 주어진 임무는 2 SS 전차군단의 왼쪽의 적을 일소하고 엄호하라는 것이었지만 북쪽으로의 진격이 빨라지면서 자신의 왼쪽이 노출될 판이었다. 

루프트바페와 포병이 제압포격을 마치자 그로스도이칠란트와 제11 전차사단이 오보얀 도로를 막고 있던 제1 군의 방어진지를 돌파했다. 40대의 판터를 포함한 300대의 전차가 시르체프와 라코블레보 사이로 이동했다. 두브로바가 함락되었다.


... 새로운 병력으로 공격을 거듭한 적이 방어선을 돌파했고 북부와 북서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제1과 3 기계화여단이 후퇴했다. 고지 254.5의 포대는 타이거가 200~300m까지 다가오게 기다렸다가 정확한 조준포격을 했고 몇 분 후에 5대의 타이거전차를 파괴했다. 나머지 전차는 후퇴했다...


제11 전차사단과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의 다음 목표는 언덕이 많은 곳이었다. 마을에 대한 정면돌파는 그로스도이칠란트 전차에게 맡겨졌다. 


... 불행하게도 이 지점에서 판터는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전차 대열이 모르고 지뢰밭으로 들어갔고 더 이상 기동하지 못했다. 전차와 보병 모두에게 집중포화가 쏟아졌고, 기동력을 잃은 전차때문에 피해가 커져갔다. 마침내 1 대대 전차와 나머지 판터 몇 대가 지뢰밭을 빠져나왔고 늦은 오전에 적의 전차와 전차전을 벌였다...

... 그 동안 더 북쪽에 있던 기갑척탄병 연대는 시르체프 방면으로 공격했지만 속도가 붙지 않았다. 적의 근접지원기의 공격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전진은 느려졌고 힘들었다. 백병전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시르체프는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졌고 러시아군은 시르체보, 그레미우치이와 베르호펜에로 물러났다. 


... 달아나던 적에게 아군의 포화가 있었고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아군 전차는 승기를 잡았고 북동쪽으로 진격했다. 


모든 전선이 무너지던 결정적인 순간에 예비병력이 도착했다. 늦은 오후에 제112 전차여단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밤에는 60대의 전차가 그로스도이칠란트의 정찰장갑차와 돌격포 대대에 반격을 시작했다. 독일군은 35대의 전차를 파괴했다고 주장했고 러시아군은 6대의 타이거를 포함해 21대를 격파했다고 주장했다. 


바로 전날에는 독일군이 기습했는데 이번에는 러시아군 차례였다. 3기계화군단의 전차 40대가 시르체보에서 나와 독일군의 진격을 가로 막았지만 불행하게도 상대가 타이거 중대였다. 순식간에 10대의 전차를 잃었다.



... 13:00시까지, 제10 기계화여단, 제1 기계화여단 일부와 제112 전차여단이 2개 보병연대와 70대의 전차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았지만 항공과 포화로 심한 피해를 입었다. 너무 피해가 심해서 13:00시에 6전차군단 군단장이 시르체보에서 페나강 너머로 후퇴하겠다는 요청을 했다...


이번에는 그로스도이칠란트 기갑척탄병이 페나강을 따라 벌인 전투기록이다.


... 베르호펜에 동쪽 끝에서 새로운 러시아 전차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날 밤에 보급을 받은 전차대대가 시르체보에서 나와 베르호펜에 방향으로 향했다. 북남 방향으로 페나를 따라 1km 늘어선 방어선은 돌파하기 힘들었다. 페나의 서쪽 강변에서 쏟아지는 포화때문에 전열이 흐트러졌다...


페나강 다리 중에 전차가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두고 양쪽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 제200 전차여단이 예정된 위치에 제대로 엄폐하지 못해 독일의 공습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날 하루 종일 12번에 걸쳐 다리너머로 오려는 적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저녁에는 페나강 너머로 물러나서 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했다...


7월 7일과 8일의 성공에 힘입어 48전차군단이 바투틴의 방어전 중앙을 열어제칠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오른쪽에 있던 2 SS 전차군단의 상황은 어땠을까?

하우저의 2 SS 전차군단은 작전개시 2일 동안 러시아군의 가장 약한 방어선을 따라 프로호로프카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토텐코프는 2 SS 전차군단의 왼쪽에서 리포프이 도네츠강의 계곡으로 진격했고 라이브스탄다르테의 기갑척탄병 2개 연대는 포호프카와 볼시에 마이아치키를 공격했다. 러시아의 기록을 다시 보자.


... 포그렐로프카와 미하일로프카 지역에서 적이 제1 근위전차여단을 공격해왔다. 하늘에서는 100대가 넘는 항공기가 폭격했다. 여단의 방어선을 뚫으려는 적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동시에 적은 포크로프카를 30대의 전차와 보병 1개 대대로 공격해서 점령했다. 여단의 좌익이 위험해졌다. 제49 전차여단이 급하게 그 지역으로 달려가서 상황을 바로 잡았다. 적을 포크로프카에서 몰아냈지만 곧바로 이어진 전투에서 적에게 다시 내주었다...



라이브스탄다르테의 제1 SS 전차연대와 다스 라이히의 제2 SS 전차연대는 프로호로프카로 향하며 앞에 있던 5 근위전차군단의 일부를 밀어냈다. 그렇지만 측면으로 다가오는 적을 처리하기 위해 2개 기갑척탄병연대를 분리시키면서 전력이 약해졌다. 

옆이 취약하게 노출되어 더 많은 기갑척탄병을 옆으로 돌려야 했는데 전격전에서는 측면엄호가 상당히 중요했다. 기록에 따르면 라이브스탄다르테  7월 7일에 이 지역에서 75대의 전차, 12대의 항공기, 23문의 대포, 244명의 포로를 잡았다. 

저녁에 2 SS 전차군단은 라인스탄다르트와 다스 라이히 사단의 전차를 모아서 다음 날의 작전에 대비했다. 


그러나 러시아군도 나름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5전차군단의 전차와 자주포 185대는 독일 48전차군단의 왼쪽을 공격하는 아군과 동시에 2 SS 전차군단의 오른쪽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토텐코프와 다스 라이히 사단이 정면에서 진격해오자 오전 내내 조금씩 병력을 투입해 막다가 심각한 피해만 있었다. 

늦은 오후에 2전차군단이 도착했지만 5전차군단을 지원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마찬가지로 피해만 입었다. 5근위전차군단의 전차 100대가 파괴되었고 이제 2근위전차군단이 독일군의 공격에 맞서야했다. 



밤을 숲에서 지낸 러시아 전차가 독일 항공기에 포착되었다. 곧바로 헨셀 근접지원기 4개 편대가 날아와서 30mm 기관포로 T-34의 제일약한 엔진커버를 노렸다. 1시간도 안되어서 약 50대의 전차가 불붙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항공기만으로 기갑전력을 궤멸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FW190은 확산탄을 보병의 대열 사이에 떨어뜨려, 하우저의 배후에서 포위해 전멸시키려던 바투틴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2 SS 전차군단은 7월 8일에만 121대의 전차를 격파했다고 주장했다. 군단은 계속 전진했고 수호-솔로티노에서 48전차군단과 연결되었다. 그렇지만 하우저는 3전차군단이 도착해서 엄호할 때까지 다스 라이히를 오른쪽 방어로 돌려야했다. 

켐프 특수군은 마슬로바 프리찬 근처에서 러시아군이 맹렬한 반격을 해오면서 측면방어에 전력을 다했고 그러면서 제7전차사단의 발이 묶였다. 그래도 7월 7일에는 제7 전차사단이 공세에 나섰다. 제503 중전차특수대의 타이거 45대를 선봉에 세우고 제6 전차사단과 제7 전차사단의 일부가 미아소에도보를 향해 전진할 수 있었다. 그 날 밤에 러시아군은 35근위보병군단의 2개 사단을 투입해 무너지는 방어선을 지탱하게 했다. 


7월 8일, 타이거를 선도에 세운 제6 전차사단이 8km를 올라가 멜리호보의 중요한 교통요충지를 점령했다. 그렇지만 제19와 7 전차사단은 그만큼 전진하지 못했다. 3 전차군단이 북부 도네츠강의 첫 번째 방어선을 돌파했지만 리포비이 도네츠강까지 돌파해 벨고로드 동쪽의 러시아군 배후로 도는데는 실패했다. 

러시아 제7 근위군의 반격은 유효적절해서 켐프 특수군의 우측을 공격하는 동시에 방어선을 보강했다. 


7월 7~8일동안, 바투틴의 보로네즈 전선군은 버텼지만 피해가 없을 수 없었다. 거의 모든 예비병력이 투입되었고 다른 곳의 병력을 급히 차출했다. 7월 7일 저녁에 있었던 회의에서 제6 근위군 앞에 선 흐루슈체프는 다음과 같은 말로 어떤 실패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이제 앞으로 2~3일은 끔찍할 겁니다. 우리가 지켜내던지 적이 쿠르스크를 점령하던 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걸고 있고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적의 목이 부러질 때까지 버텨야 합니다...


적나라한 표현이지만 사실이었다. 그리고 스텝 전선군의 전차가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와 있었다. 


전투에 지친 병사의 얼굴입니다. 특히 최전위에서 지뢰밭이나 철조망을 제거해야 했던 전투공병들의 피로는 극에 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