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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정치

안철수 교수님 많이 답답했겠군요.

by uesgi2003 2011. 8. 27.

안철수 교수님의 인터뷰를 오늘 신문에서 읽었는데... 아래 문장을 읽는 순간 제 답답한 경험이 떠오르더군요. 


“얼마 전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인터넷 서비스로 분류해 IT 업계 트렌드를 설명했더니 대기업 전자회사 최고기술책임자 한 분이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구동시키는 하나의 부분이므로 분류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더라”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262140105&code=930301


부디 그 임원의 반응이 구글과 모토로라의 인수합병 이전이었기만을 바랍니다.  


저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했었지만,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소프트웨어 마케팅,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 마케팅 경력이 아닐까 합니다. 

Borland C++부터 시작된 개발자와의 만남이, Delphi, PowerBuilder, Visual Studio를 통한 지원으로 이어지다가, .NET에서는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까지 하게 되었었죠. 개발자를 좋아해서 회사 업무와 상관없이 DevPia를 만들게 된 창립멤버(금전과 상관없는 순수참여) 5인 중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개발자에게 MS의 힘을 빌어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Visual Studio 6.0은 전세계에서 가장 구성물이 많은 사상초유의 패키지로 국내에 제공되었고(본사 PM과 실갱이하다가 빌 게이츠에게 누가 잘 하는 것인지 물어보자고 해서 이겼습니다),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었던 무료 주말세미나 러시를 3년 넘게 진행했었습니다. 


MS에서의 과도한 업무와 제 특유의 승부욕때문에 몸이 완전히 망가져서 모든 것을 잊고 지내려고 할 때에 소프트웨어 진흥원에서 개발자 지원에 대한 업무를 부탁해왔습니다. 외국계 회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던 저로서는 공공기관은 감옥과 같은 곳이라 달갑지 않았지만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국내 개발자(리눅스 개발자)를 지원할 수 있다는 기대에 수락을 했었죠.


그런데... 멀게는 국회부터 시작해서 가깝게는 정통부와 소프트웨어 진흥원의 실무담당자까지 소프트웨어에 대해 무지에 가까운 분들을 겪고 나니 하루 종일 책상지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제 직책이 그래도 높은 편이었고 소프트웨어 진흥원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국회의원의 무뇌아 스타의식, 정통부 사무관의 복지부동과 군대정신, 관련기관의 혈세낭비를 일일이 되짚어보기 시작하면 피눈물이 흐를 겁니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그냥 "피눈물"이라는 말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소프트웨어 진흥원장님의 만류를 무릅쓰고 소프트웨어 진흥원을 그만 두게 된 계기는 안철수 교수님과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진흥원장님에게는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정통부의 차세대 IT 10대 과제 회의에 불려가서 (일체의 발언도 못하고 답변만 하는 ) 참고인 역할을 했습니다.


교수와 정통부 관료 무리들이 엄청 떠들어대더군요. 맞는 말도 있고 완전히 틀린 말도 있었지만 제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그냥 창 밖의 하늘만 쳐다봤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저런 애들이 우리나라 IT 정책을 결정하는구나... 


며칠 간의 회의 중에 소프트웨어 관련 회의는 딱 1시간이었습니다. 온라인 게임에 대한 별도 회의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온라인 게임일뿐 소프트웨어는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제게도 질문이 한 건 들어오더군요.


"진흥원에서 추진하는 한국형 OS-리눅스-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봐요."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OS보다 더 시급한 것은 개발자 지원입니다. 외국 리눅스를 가져다가 짜깁기해도 개발자와 지원 애플리케이션이 없으면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개발자들을 먼저 지원해야 합니다."

....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무려 정통부와 전산학과 교수 무리라는 것들이 하는 말이.... 우리나라 IT 정책을 수립한다는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소프트웨어는 안돼요. 다 말아먹었어"

"그렇지. 하드웨어 잘 만들고 하드웨어 돌릴 소프트웨어 정도만 지원하면 돼"


MS에 재직할 때에 그런 말을 들었다면 고객이건 MS 임원이건 뒤집어버렸겠지만, 그냥 참고인 신분이었던 저는 소프트웨어 진흥원 부서 동료들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제가 그들을 가르치려고 했다가는 동료들이 피해를 입을테니까요.


참고인 신분에서 해제된 저는, 화장실에서 창 밖을 한참을 쳐다보다가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했던지, 그 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아침에 신문읽고 "일기는 블로그에"라는 네티즌의 말처럼 일기를 써봅니다. 


P.S. 그래도 저 때는 우리나라 IT에 희망이라도 있지 않았나 합니다. 소프트웨어는 무시되었어도 하드웨어에 대한 지원은 확실했으니까요. IT는 일자리를 줄인다고 정부출범과 함께 정통부 공중분해로 그 희망조차 끊어버린 이 명박씨... 이제 와서 닌텐도가 어쩌고, IT 생태시스템이 어쩌고 떠드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저렇게 무식하고 용감할까"라는 생각만 하게 됩니다. 

요란하게 소프트웨어 개발지원한다고 떠드는 요즘도 컨버전스(융합, Convergence)가 기술이 아닌 서비스 융합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서비스가 하드웨어의 기능이 아닌 소프트웨어의 연결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요? 머리가 이미 하드웨어인데요. 


불과 2~3년 전에 아이폰 정도는 시장점유율이 너무 적고 사용자들의 변덕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모 최고경영자 분의 일화가 있었죠. 그 회사가 이제는 초비상이 걸려서 소프트웨어 개발자 모은다고 온나라가 떠들썩 합니다. 앞에 나온 최고임원이 안철수 교수님의 가르침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100가지 핵심지적재산권 중 99가지는 다른 국가의 손에 넘어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소니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