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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지옥에서 쓴 일기 - 한스 로스의 동부전선 일기 (6부)

by uesgi2003 2015. 10. 13.


223.

중포세례 다시 시작되어 독일진지와 요새를 두들겼다. 폭격기가 참호를 따라 줄지어 날아들며 폭탄을 투하했고 중장갑전투기는 지상으로 기수를 내리고 기관총으로 우리를 노렸다.

그 후에 첫 번째 볼쉐비키 보병과 전차공격이 밀려들었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공포스러웠지만 더 이상 말해야 소용없다. 용기에 절망을 더해 우리를 지켜야 하고 솜씨좋은 장인처럼 무기를 다뤄야 한다.

 

모든 것이 무용지물처럼 보인다. 진지뿐만 아니라 몸을 밖으로 드러내기만 해도 엄청난 공격이 쏟아진다. 최전방 상공에는 죽음의 새떼처럼 전투기 무리가 기관총을 갈기며 아예 머물고 있다. 보병이나 전차가 너무 많다. 공격 첫 날에만 7개 보병사단과 4개 전차여단이라니!

적은 방어선을 돌파했고 새로운 보병과 전차를 투입했다. 처음 5일 동안 121대의 전차를 부쉈는데도 바로 다음 날에 80대가 새로 나타났다! 악천후 때문에 우리 루프트바페Luftwaffe가 출동하기 힘들다.

피해가 막심하다. 매일같이 새로운 위기가 닥쳐서 초인적인 노력과 피로 견뎌낼 뿐이다.


 

31~6.

남쪽이 격전지가 되고 있어서 3월 초에 이동했다. 적은 쿠르스크와 오렐 사이에 4개군과 1개 비행단을 배치했다. 만신창이가 된 우리 우익을 돌파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계속 공격해오고 있다.

전투는 절정에 달했다. 2월 말 공격이 시작된 후로 35,000명의 적을 죽이고 280대의 전차와 140기의 항공기를 격파했다.

이렇게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도 적의 사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서쪽으로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오렐 남서쪽과 북쪽에서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적은 그 사이를 노리고 기계화사단과 전차로 공격해왔다. 동시에 오렐 남동쪽, 오렐 바로 앞, 북쪽과 서쪽으로도 공세를 강화했다.

그 때마다 무수한 전차는 말할 것도 없고 중포탄이 쏟아진다.

 

37.

90대의 중전차 중에 77대를 격파했다. 310일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전투가 될텐데 양쪽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 상황은 마치 칼날 끝처럼 위태롭다. 탄약과 식량공급도 끊어지고 있다. 주보급로가 위협받거나 공격받고 있다.

이제 끝이라는 비통한 결론을 내렸다. 2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312.

기적이 일어났다. 오늘 아침에는 예상되었던 대규모 공격이 없었다. 상공에는 여전히 많은 전투기가 날고 있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우스운 수준이다. 우리는 기적을 포기한 지가 오래되어서 무슨 수작이 숨어있을 것으로 의심했다.

그런데 밤에도 다음 날에도 여전히 공격이 없었다. 하리코프에서 대대적인 반격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갑자기 전투가 멈춘 이유로 보인다. 이 지역에는 여전히 적이 많지만 상황이 반전되었다. 오렐전투가 끝났다.

 

밝은 해가 떠오르며 끔찍한 두 번째 동부전선 겨울을 끝내고 초봄이 찾아왔다. 우리는 참호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밝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태양은 마치 우리 승리의 상징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이긴다!

봄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잔설이 오래 전에 다 녹았다. 높은 기온에 비가 안 와서 사방을 뒤덮었던 진흙도 며칠 안에 사라질 것이다. 이제 우리 운명은 우리 손에 있다. 전차, 박격포와 중포가 지나가며 일으킨 짙은 흙먼지 사이로 보병이 연이어 지나가고 있다. 대대적인 공격이 느껴진다. 몇 주 안에 공격할 것이다. 우리? 나중에 소집되어 전선에 배치되겠지. 지금 당장은 지켜봐 야지.

 

첫 번째 휴가가 이미 시작되었고 몇 주 후면 내 차례다. 그렇게 꿈꾸던 일에 가까워지니 이상한 느낌이 압도한다. 뭔 일이 터질 것만 같다. 그 동안 앓던 치통, 두통과 설사 등 모든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앓아 눕지 않기만을. 요즘 기분이 몹시 안좋다!

 

지난 며칠 동안 루프트바페와 적 공군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24시간 내내 수십 대의 폭격기와 전투기가 하늘을 날았다. 죽음의 새가 떠돌아다니면 우리던 적이던 뭔가를 벌이기 직전이라는 표시다. 최전방 병사에게는 극장이나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나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56.

오늘은 많은 일이 있었다. 동트자 마자 적 폭격기 편대가 전방 위로 날아들었다. 갑자기 급선회를 하더니 급강하하면서 우리 진지로 날아들었다. 경험으로 볼 때, 폭탄창을 열고 우리 위로 죽음을 쏟아 붓기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다. 대신에 친숙한 우리 전투기 엔진소리가 들렸다. 참호 벽에 바짝 붙어서 맑은 아침 하늘에서 생사를 걸고 싸우는 생생한 현장을 지켜보았다.

급선회, 회피기동과 사격이 시작되었다. 우리 전투기가 느린 폭격기에 내려 꽂혔고 적 포수는 격추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관총과 기수 기관포탄이 하늘을 수놓았다. 우리 전투기가 공격하고는 엔진소음을 내며 다시 급상승해서 폭격기 위로 올라갔다. 폭격기 한 대가 요동을 치더니 우익쪽으로 뱅뱅돌면서 떨어지다가 지상에서 화염과 함께 터졌다.

3분 만에 4대가 더 떨어졌다. 오늘 우리 지역에서만 74대가 격추되었다.



첫 번째 사진은 런던 상공, 두 번째 사진은 태평양 상공의 공중전 모습입니다. 

 

어제 첫 번째 타이거가 도착해 넓은 대형으로 포진했다. 적군도 반대편에 전차를 집결시키고 있기 때문에 타이거의 존재는 안도감을 주었다. 최전방은 모든 구경의 대공화기가 불을 뿜고 있다. 겨울이 끝났기 때문에 다행이다. 태양은 우리 편이다.



2차대전 중전차가 주는 인상은 압도적입니다. 저는 실제로 4호전차와 킹타이거에 올라가봐서 아는데... 강철괴물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차체나 포탑이 높기 때문에 더욱 위압감을 줍니다. 

특히 타이거처럼 막강한 중장갑으로 최전방에서 포탄을 맞아가며 돌파하기 때문에 아군의 신뢰는 절대적이었을 겁니다. 

 

한스 로스의 일기는 휴가를 떠나기 몇 주 전까지만 남아 있는데 75일에 벌어진 쿠르스크전투에 참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쿠르스크전투에서는 역사상 최대의 전차전이 벌어졌고 2백만 명이나 투입된 동부전선 최대의 도박이었습니다.

독일은 히틀러가 고집을 피운 이 작전에서 가용전력을 모두 소진했고 이후부터는 소련이 전쟁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연합군이 유럽에 상륙하면서 그 동안 동부전선을 지켜주었던 공군과 전차전력 상당수를 서부전선으로 이동시켰고 소련의 압도적인 병력투입과 기동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쿠르스크 공세의 계획은 남과북 협공으로 그 안에 100만 명의 소련군을 잡아 넣어서 궤멸시키는 것이었는데, 계획이 이미 노출된데다가 개시도 너무 지연되어서 소련군이 오히려 충분한 병력으로 덫을 놓고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쿠르스크전투를 대표하는 2장의 사진입니다. 

 

한스 로스는 1년 후인 1944625일에 실종되었다고 아내 로젤에게 통보되는데 아마도 그 때까지 계속 일기를 썼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그 당시에 비테브스크Vitebsk 남동쪽 중앙군집단의 제299 보병사단에 있었는데 622, 독일의 소련침공 3주년에 벌어진 바그라티온Bagration작전이 시작됩니다. 말 그대로 중앙군집단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는데 250만 명의 소련군에 50만 명이 맞서다가 (히틀러의 광기 어린 제자리 고수 때문에) 35만 명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299사단은 소련군의 진격로에 있었고 바로 전멸했습니다. 한스 로스의 평소 신념을 보면 포로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가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포로명단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쿠르스크전투와 바그라티온공세에 대해 이미 자세하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워낙 자세하게 정리해두어서 시간여유를 가지고 아래 링크부터 천천히 즐기시면 됩니다. 


쿠르스크에 대해서는 http://blog.daum.net/uesgi2003/335

바그라티온에 대해서는 http://blog.daum.net/uesgi2003/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