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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706

드레드노트부터 항공모함까지 - 잠수함과 항공모함의 탄생 1909년, 프랑스정부는 프랑스해군이 세계 5위권으로 추락한 것을 알고 급히 함대재건에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해군전력은 1907년, 전드레드노트 전함 레나Lena(그림 참조)가 툴롱Toulon 드라이 도크에서 탄약고가 폭발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전드레드노트 리베흐트Liberte가 1911년 9월에 폭발을 일으켰다. 두 건의 사고에서 모두 322명이 죽었다. 프랑스는 재건프로그램으로 첫번째 드레드노트 4척 쿠르베Courbet, 프랑스, 장 바르Jean Bart, 파리를 1910~1911년에 건조하기 시작했다. 3개의 포탑에 305mm 12문을 장착하고 선체 양쪽에 포탑을 하나씩 더 배치했다. 2척을 간신히 완성했을 때에 1차대전이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첫번째 드레드노트는 배.. 2021. 1. 11.
드레드노트부터 항공모함까지 - 드레드노트의 탄생 이것 저것 들추기 불편하고 언젠가는 (상대적으로 지식이 부족한) 해군쪽도 정리해야겠다 싶었기에 해군의 역사를 연재합니다. 원자료를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에 선박 명칭이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급 또는 초노급이라는 일본식 용어는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해군 경쟁시대 1900~1913년 19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먼 바다는 대영제국Great Britain이 지배했다. 혁명적인 아이디어와 발명이 워낙 빠르게 일어나서 건조 중인 선박이 구형으로 변할 정도였다. 영국이 이중전력 표준Two Power Standard 정책을 실시하면서 상황이 더 급박하게 돌아갔다. 영국해군은 외국 2개국과 맞먹는 숫자를 보유한다는 정책이었다. 최신 기술을 적용한 전함을 많이 건조하기 시작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건조 중인.. 2021. 1. 9.
믿거나 말거나 토막전사 (13부) 이제 토막전사는 끝내고 다른 이야기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아직 주제를 결정하지 못해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운이 나쁜 날 AP 사진가 조 로젠탈Joe Rosenthal에게는 고생스러운 날이었다. 이오지마Iwo Jima전투를 촬영하려고 상륙정에 타다가 사다리에서 미끄러져서 바다로 떨어졌다. 해변에 내리자 수리바치Suribachi산에 깃발을 꽂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진에 반드시 담아야 할 결정적인 순간이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산에 오르는 병사들과 합류했다. 총탄세례가 쏟아졌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에, 산에서 내려오던 병사들이 이미 깃발을 올렸다는 실망스러운 말을 했다. 그는 되돌아가려 다가 계속 올라가기로 했다. 좋은 결정이었다. 그는 정상에서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 2021. 1. 2.
믿거나 말거나 토막전사 (12부) 승리아닌 승리 1942년, 일본군이 애투Attu와 키스카Kiska의 알류샨Aleutian열도를 침공해 점령했다. 1812년 영미전쟁 이후에 외국에게 영토를 처음으로 점령당했다. 당연히 미국은 단호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미국은 1943년 5월에 애투섬을 탈환하면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8월, 다시 키스카섬을 탈환할 차례였다. 애투섬에서는 양측이 모두 6,000명이 사상당하는 격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미군의 오해도 당연했습니다. 미국-캐나다연합군 35,000명이 해안에 상륙했고 그 뒤에는 함대가 지원하고 있었다. 무저항으로 상륙했지만 일본군 특유의 전술이 갑자기 달려드는 것이어서 병사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예상대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중화기가 불을 뿜었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적이 보이지 않았다. 사상자.. 2020.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