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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665

우크라이나 역사 - 러시아내전과 우크라이나 민족운동 1. 하바드대학 세르히 플로키Serhii Plokhy교수의 정식 출간물을 인용정리하고 있습니다. 2. 우크라이나어를 모르기때문에 기존의 지명과 인명을 사용합니다. 러시아의 사관을 공유한다고 비난하지 마시길. 3, 워낙 길고 복잡한 이야기이니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 9장면 https://blog.daum.net/uesgi2003/1704 을 먼저 읽어두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1919년 초, 볼세비키가 다시 공세에 나섰고 통일을 축하한 지 2주도 안 되어서 정부가 키이우를 포기했다. 우크라이나군 상황이 무척 안 좋았기 때문에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1918년에 이전 정부를 상대로 봉기했던 100,000명의 농민부대 중 25,000명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고양으로 돌아가거나 더 이상의 참전을 거부.. 2022. 6. 7.
우크라이나 역사 - 1차대전 그리고 우크라이나 공화국 건국 이제 현대 우크라이나 역사에 진입했습니다. 우크라이나어를 모르기때문에 용어와 지명이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표트르부터 로마노프왕정까지 우크라이나 내부의 격동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넘어갔습니다. 1914년 6월 28일 오전, 사라예보Sarajevo에서 2발의 총성이 울렸다. 오스트리아대공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와 아내 소피Sophie가 총상을 입고 몇 시간 후에 죽었다. 21살 대학생이 쏜 권총은 1차대전의 방아쇠도 당겼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정부는 세르비라에게 선전포고하고 슬라브 민족주의운동을 탄압하려고 했지만 러시아가 세르비아 편을,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편을 들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편에 가담했다. 이렇게 시작된 1차대전은 1800만명 사망, 2200만명 이상의 부상이라는 .. 2022. 6. 5.
우크라이나 역사 - 코사크수장국 소멸과 분할 원 자료가 우크라이나 학자이고 우크라이나 역사가 주제이기 때문에 러시아 역사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가볍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복잡하게 얽힌 역사배경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를 제대로 즐긴다면 이런 의문일 들겁니다. '코사크수장국이 사라졌네? 아예 러시아에 합병되었네? 그럼 지금의 우크라이나 넓은 국경선은 누가 그린 것이지? 내전과 격전지인 크림반도와 돈바스는 코사크가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는데???' 우크라이나의 넓은 국경선은 거의 전부 러시아의 역사와 함께 그려졌습니다. 서부 우크라이나는 키이우 루스 - 폴란드 - 리투아니아연방 등의 영토와 역사였으니까 우크라이나의 지분이 상당합니다만... 지금 전쟁의 배경이며 격전지인 지역은 크림칸국의.. 2022. 5. 31.
우크라이나 역사 - 코사크 수장국 (2부) 1595년, 동방정교 주교 2사람이 로마로 먼 길을 떠났고 교황에게 피렌체 공의회Council of Florence와 비슷한 조건으로 자신들을 가톨릭교회 안으로 받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키이우대교구를 로마에게 넘겼다. 1431년, 로마가톨릭이 7번째 공의회를 열고 오스만제국, 동방정교, 교황권위 등을 논의했습니다. 교황, 왕과 주교단은 합의에 만족했지만 콘스탄티 오스트로그스키Kostiantyn Ostrozky공과 같은 이해당사자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왕권에 대항하기 위해 동방정교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사람을 보내 로마로 가는 주교를 납치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었다, 그는 동방정교 귀족과 리투아니아 귀족의 지원을 받아 무장병을 이끌고 브레스트Brest회의로 갔고 왕의 대리인도 무.. 2022. 5. 29.